“게(蟹), 삼척에서 나는 그 다리는 큰 대(竹)와 비슷하고 맛이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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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蟹), 삼척에서 나는 그 다리는 큰 대(竹)와 비슷하고 맛이 달다”

    [김풍기 교수의 도문대작 읽기] ⑱ 강아지만큼이나 큰 삼척의 대게

    • 입력 2024.03.23 00:02
    • 수정 2024.03.25 00:14
    • 기자명 김풍기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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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도문대작’(屠門大嚼)은 푸줏간 앞을 지나면서 입맛을 쩍쩍 크게 다신다는 뜻이다. 이 책은 허균의 방대한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저술된 일종의 음식 관련 저술이다. 다시 분류하자면 음식문화를 기록한 책으로 보아야 한다. 허균의 고단한 유배지 식탁은 과거 풍성한 식탁 귀퉁이조차도 구경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를 극복한 것이 바로 상상력이었다. 그런 궁핍한 현실 속에서 허균의 미각적 상상력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김풍기 교수와 함께 걸작 도문대작을 탐닉한다. <편집자 주>

     겨울이면 대게가 생각난다. 워낙 비싸서 자주 먹기는 어렵다 해도, 강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대게를 먹으러 동해안으로 달려간다. 요즘은 영덕대게가 하나의 브랜드 이름처럼 지목되지만, 대게는 동해안 일대에 서식하는 한류성 어종이다. 11월이 되면 대게잡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이듬해 5월까지는 꾸준히 어로행위가 이루어진다. 아주 작은 게라든지 산란 철 같은 시기에는 금어기로 지정되어 대게를 잡을 수 없지만, 연근해에서 조업하는 배들은 새벽 3시쯤 출항해서 저녁에 들어오곤 한다. 바다가 보이는 지역에서 자랐지만 내가 자라면서 보았던 게들은 바닷가 바위 사이에서 빠르게 오가는 꽃게와 같은 작은 게가 전부였다. 

     저장 시설이 변변치 않았던 시절에는 해산물을 보관하는 방법이 중요했다. 내륙 지역으로 해산물이 유통하는 과정에서 부패를 방지하려고 소금을 듬뿍 뿌렸던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거니와 대체로 염장(鹽藏) 방식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게 역시 오래 보관하기 위해 게장 형태로 조리해 두었다. 조선 시대에 이미 게장은 민간에 널리 알려진 조리 방식이었다.

     어찌 간장게장뿐이랴. 얼큰하고 단맛이 혀끝에 감도는 꽃게탕이며, 갖은양념을 넣어서 만드는 꽃게찜, 꽃게 무침, 꽃게 소금구이 등 다양하게 먹을 수 있는 꽃게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음식이다. 게를 넣어서 깊은 맛을 낸 라면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지 오래다. 해물탕을 끓일 때 게를 넣어서 시원한 국물을 내지 않는다면 맛은 반감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은 꽃게 튀김이다. 바짝 튀긴 꽃게를 씹을 때의 아삭한 식감과 고소한 풍미는 언제 먹어도 즐겁다. 게는 크기도 다양하고 모양도 조금씩 달라서 거기에 맞는 레시피가 지역마다 전승되고 있다.

     

    해물탕을 끓일 때 게를 넣어서 시원한 국물을 내지 않는다면 맛은 반감될 것이다. .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해물탕을 끓일 때 게를 넣어서 시원한 국물을 내지 않는다면 맛은 반감될 것이다. . 사진=클립아트코리아

     그렇지만 게는 역시 대게가 인상적이다. 계절마다 한 번쯤은 먹어줘야 그 계절을 잘 보낸다는 느낌이 드는 음식이 있다. 나는 한겨울에 대게를 먹어야 겨울을 잘 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쩌다 잊기라도 하면 화들짝 놀라서 동해안으로 대게를 먹으러 가는 것이다. 허균 역시 게 요리 중에서도 대게가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도문대작’에서 이렇게 기록하였다. “게(蟹). 삼척에서 나는 것은 크기가 강아지만 하고 그 다리는 큰 대(竹)와 비슷하다. 맛이 달며, 포(脯)를 만들어 먹어도 좋다.” 요즘은 대게를 대부분 찜으로 먹는다. 대게찜이 맛없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대게는 살이 풍성할 뿐 아니라 단맛이 도는 쫀득함이 일품이다. 울진 인근에서 잡혀서 흔히 영덕대게로 통칭하는 대게가 전국적으로 이름이 높지만, 허균의 기록에는 삼척의 대게가 최고로 꼽혔다. 대게의 ‘대’는 크다는 뜻의 ‘대(大)’가 아니라 대나무의 ‘대’다. 크기 때문에 대게가 아니라 게의 다리가 대나무처럼 마디가 이어져 있다고 해서 대게다. 그래서 한자로는 죽해(竹蟹)로 표기되었다. 기후 변화와 함께 이제는 동해안 연근해에서 잡히는 대게가 예전만 못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삼척 인근에서는 대게가 잡힌다.

     

    크기가 강아지만 하다고 허균이 표현했지만, 그것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비유한 말일 것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크기가 강아지만 하다고 허균이 표현했지만, 그것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비유한 말일 것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크기가 강아지만 하다고 허균이 표현했지만, 그것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비유한 말일 것이다. 조선 시대 강아지가 아무리 작다 해도 대게에 비교하면 얼마나 큰지를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다리는 큰 대나무와 비슷하다는 표현 역시 ‘대게’라는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허균이 말한 포(脯)는 지금도 만들어진다. 해각포(蟹脚脯)라고도 불리는 대게 다릿살로 만든 포는 붉은빛을 띠는데, 부드럽고 단맛이 나서 간식거리로는 그만이다.

     게는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식재료다. 어느 지역에서나 게를 좋아해서 많은 일화를 남긴 사람들이 있겠지만, 우리나라 고전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중국 진(晉)나라 때 이부랑(吏部郞)을 지낸 필탁(畢卓)일 것이다. 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공무를 팽개칠 정도였다. 심지어 옆집에 술이 익은 걸 알고 한밤중에 몰래 들어가 훔쳐 마시다가 사로잡혔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도둑이 필탁인 것을 알게 된 주인이 그를 풀어준 뒤 함께 술을 마셨다는 일화도 전한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이렇게 말을 하곤 했다. “수백 섬의 술을 가득 실은 배에 사시사철 맛있는 음식을 양쪽에 차려놓는다. 오른손에는 술잔을 들고 왼손에는 게 다리를 잡고 술을 실은 배를 띄우고 지낸다면 한 생애가 만족스러울 것이다.” 술을 잡고 게 다리를 들고 있다는 뜻의 ‘파주지해(把酒持蟹)’라는 사자성어는 필탁 때문에 생긴 말이다.

     

    대게의 ‘대’는 크다는 뜻의 ‘대(大)’가 아니라 대나무의 ‘대’다. 게의 다리가 대나무처럼 마디가 이어져 있다고 해서 대게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대게의 ‘대’는 크다는 뜻의 ‘대(大)’가 아니라 대나무의 ‘대’다. 게의 다리가 대나무처럼 마디가 이어져 있다고 해서 대게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허균과 같은 시기를 살았던 김시양(金時讓, 1581~1643)의 저서 ‘부계기문(涪溪記聞)’에는 조선 전기 뛰어난 문인 신광한(申光漢, 1484~1555)의 일화가 수록되어 있다. 신광한은 세조 때 학문과 권력을 모두 누렸던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손자다. 그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나이가 많은 여자 종의 손에서 자랐다. 그런 탓인지 조부가 그렇게 대단한 문장가요 학자인데도 열여덟 살이 되도록 글을 몰랐다고 한다. 하루는 이웃 아이와 시냇가에서 장난을 치다가 그 아이의 발에 차여서 물속에 엎어졌다. 신광한이 화가 나서, “너는 종인데 어찌 감히 양반집 자제를 업신여기느냐?” 하고 꾸짖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이렇게 대꾸한다. “그대처럼 글을 모르는 사람도 양반이란 말인가? 그대는 아마도 무장공자일 것이다.”

     여기서 ‘무장공자’란 게의 별칭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속없는 한심한 사람이라는 의미니 신광한으로서는 너무도 부끄러웠을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마음을 고쳐먹고 열심히 공부해서 이듬해 과거 시험에서 장원급제했고, 종국에는 조선의 문장을 관장하는 문형(文衡)을 잡았다. 어찌 되었든 무장공자라는 표현은 험난하고 드라마틱한 세상에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속없이 살아가야 하는 지식인의 처지를 은근히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런 맥락을 감안할 때 독서량이 많았던 허균 역시 무장공자의 관련 기록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오장육부가 없는 듯이, 특출난 재주도 없는 듯이 살아가야 생명을 보전할 수 있는데, 허균은 자신의 재주를 한껏 뽐내다가 끝내는 귀양을 가서 고초를 겪는 처지니 게를 생각할 때마다 감회가 남다르지 않았을까. 요즘 시절도 하수상하니, 무장공자의 처세가 새삼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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