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기 교수의 도문대작 읽기] ⓷부드럽고 뭉글거리던 장의문 밖 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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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풍기 교수의 도문대작 읽기] ⓷부드럽고 뭉글거리던 장의문 밖 두부

    • 입력 2023.12.07 00:00
    • 수정 2023.12.09 00:29
    • 기자명 김풍기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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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도문대작(屠門大嚼)'은 푸줏간 앞을 지나면서 입맛을 쩍쩍 크게 다신다는 뜻이다. 이 책은 허균의 방대한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저술된 일종의 음식 관련 저술이다. 다시 분류하자면 음식문화를 기록한 책으로 보아야 한다. 허균의 고단한 유배지 식탁은 과거 풍성한 식탁 귀퉁이조차도 구경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를 극복한 것이 바로 상상력이었다. 그런 궁핍한 현실 속에서 허균의 미각적 상상력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김풍기 교수와 함께 걸작 도문대작을 탐닉한다. <편집자 주>

    1960~70년대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겠지만, 겨울이 되면 내게도 몇 가지 인상적인 추억이 있다. 새해가 가까워지면 엿을 곱고 두부를 쑨다. 이제는 집에서 김치를 직접 하는 가구도 현저히 줄어든 마당이니 엿과 두부를 만든다는 것은 언감생심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렇지만 그 당시 시골에서는 대부분 엿과 두부를 만들었다. 그런 날이면 우리같이 어린아이들은 너무도 흐뭇했다. 먹을 것 부족한 시골에서 적어도 며칠 동안은 먹을 것이 늘 있었을 뿐 아니라 엿과 두부를 만드느라 아궁이에 계속 불을 땐 탓에 방은 절절 끓었다. 추운 겨울 시골 마을에 먹을 것 넘치고 방바닥 따뜻하면 그것을 족할 일이었다.

    두부를 만들 때가 되었다는 걸 알아차리는 건 큰 대야에 물을 담고 거기에 콩을 넣어 불리는 걸 볼 때다. 그러면 우리는 어김없이 큰 물통을 손수레에 싣고 바닷가로 간다. 통에 가득 바닷물을 넣으면 어린아이들에게는 너무 무겁다. 손수레에 통을 싣고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서 바닷물을 담아오면 집에서는 불린 콩을 맷돌에 넣어서 간다. 이렇게 만들어진 콩물이 두부를 만드는 원료가 되고, 이것을 큰 가마솥에 넣어서 끓이고 적절한 타이밍에 우리가 떠온 바닷물을 넣는다. 이 바닷물을 간수라고 부른다. 자욱한 김이 피어오르는 사이로 하얀 두부가 몽글거리면서 엉기는 걸 보면 우리 마음도 따라서 몽글거렸다. 처음으로 만들어진 몽글거리는 두부를 큰 대접에 퍼서 후후 불며 먹으면 그거야말로 천상의 맛이다. 이 두부를 우리 동네에서는 ‘초두부’라고 불렀거니와, 우리가 말하는 순두부가 만들어지기 직전의 단계라 하겠다.

     

    순두부.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순두부.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지금도 두부는 내게 사랑해 마지않는 음식이다. 두부를 먹을 때마다 나는 이 음식을 누가 만들어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곤 한다. 콩을 갈아서 콩물을 가지고 끓일 때 염분이 있는 간수를 넣으면 굳어진다는 걸 어떻게 발견했을까. 그걸 단단하게 뭉쳐서 두부로 만들고 다양한 음식을 만들 생각을 어떻게 한 것일까. 물론 기록상으로는 한나라 때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 B.C.179~B.C.122)이 만들었다는 기록이 중국에 널리 퍼져있기는 하다. 한국 역시 중국의 기록을 인용하면서 유안을 그 창시자로 언급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전설일 뿐이다. 이와마 가즈히로(岩間一弘)에 의하면 하남성 밀현(密縣)에서 발굴된 후한 시대 화상석(畫像石)에 등장하는 그림이 초기 원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오히려 두부 제조법은 한족이 북방 유목 민족의 우유나 양유 제품을 제조하는 방식을 모방했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고려 시대 이래 우리 문헌에도 두부가 자주 등장한다. 고려 후기 문인 이색(李穡, 1328~1396)의 시에서도 보이고, 조선 시대 김시습이 어릴 때 두부 만드는 할머니를 보고 지은 시도 전한다. 또한, 조선 전기 관료이자 기인이었던 홍일동(洪逸童, ?~1464)은 진관사(眞觀寺)에서 노닐 때 떡 한 그릇, 국수 세 그릇, 두부 국수 아홉 그릇을 한꺼번에 먹어치웠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그만큼 두부는 흔히 접할 수 있는 음식이었다. 허균과 같은 미식가의 기억에 두부가 없을 리 없다. 우리나라에서 두부는 절에서 많이 만들어졌다. 육식하지 않는 스님들은 늘 단백질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을 보충해주는 가장 훌륭한 음식이 바로 두부였다. 오죽하면 지금까지도 스님들 사이에서 두부를 일컫는 말이 ‘절에서 먹는 소고기’겠는가.

    허균 역시 여러 지역에서 두부를 맛보았을 것이다. 그는 ‘도문대작’에서 두부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기록하였다. “장의문(藏義門) 밖 사람들이 잘 만든다. 부드럽고 매끄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두부에 대한 짧은 기록이기는 하지만, 이 문장 이면에 들어있는 두부 사랑은 충분히 느껴진다. 혹독한 겨울을 지내면서 제대로 먹지 못하고 지내던 유배지에서 떠올리는 두부의 부드러움 식감과 고소한 향미는 그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했을 것이다. 그런데 허균이 장의문 밖이라고 특정한 까닭은 무엇일까. 어떤 기록에도 장의문 밖에서 두부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장의문이라는 표현도 조선 초기에 잠시 사용되던 명칭이어서 대략적인 위치만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대체로 장의문은 창의문(彰義門)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경복궁 앞 광화문을 보면서 왼쪽으로 돌아들면 인왕산으로 올라가는 계곡과 만난다. 그 입구에 해당하는 문이 창의문이었으므로, 장의문 역시 이쪽에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조선 중기 이래 탕춘대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이곳은 허균에게 연하고 맛있는 두부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던 곳으로 기억된다. 사실 이쪽은 장의사(藏義寺)라는 절이 있었다. 연산군이 이 절을 허물고 놀이터로 만든 것이 바로 탕춘대다. 조선 후기 문인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별집 권16의 기록에 의하면 인왕산 백운동은 장의문 안에 있다고 했다. 또한, 도성 밖에서 놀기 좋은 곳으로 장의사 앞 시냇가를 꼽았는데, 절 앞으로는 마치 누각과 정자처럼 바위가 층층이 쌓여있고 남쪽으로는 조선 전기 안평대군이 놀던 무이정사 터가 있으며 아래쪽으로는 차일암(遮日巖)이 있다고 했다. 차일암은 현재 세검정이 자리하고 있는 시냇가 넓은 바위를 말한다.

    조선 시대 들어오면서 절 뿐만 아니라 왕릉과 같은 능원(陵園)에서 제사를 지낼 때 두부는 반드시 제사상에 올렸다. 그러나 능원에서는 두부를 제조할 수 없었으므로 주변에 있는 절에 명을 내려서 제조했다. 그런 절을 조포사(造泡寺)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포(泡)’가 바로 두부를 치징한다. 예를 들면 강원도 영월에 있는 장릉(莊陵)의 조포사는 보덕사(報德寺)와 금몽암(禁夢庵)이고 경기도 여주의 영릉(英陵)은 신륵사(神勒寺)다. 이런 방식으로 모든 능원에는 인근의 절에서 노역과 함께 두부를 만들어서 바치게 되어 있다. 허균이 언제 이곳에서 두부를 먹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중앙 부처에 근무할 당시 경복궁 인근에 있던 장의문 밖 두부를 맛보았을 것이다. 이곳은 궁궐에서 가까운 데다 인왕산 아름다운 계곡이 있어서 많은 풍류 문인들이 오가던 곳이기도 했다. 여러 사람과 어울려서 두부가 문득 떠오른 것은 그의 귀양 생활에서 오는 곤고함과 외로움 때문이었으리라. 몽글하고 부드러운 두부의 기억으로 힘든 귀양지를 견디려 했을 것이다.

    <김풍기 교수 약력>

    강원자치도 강릉에서 출생했다.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문학박사)했다. 현재,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 전기 문학론 연구’, ‘한국 고전시가의 역사적 지평’. ‘옛 시 읽기의 즐거움’, ‘선물의 문화사’, ‘한국 고전소설의 매혹’, ‘시힘, 시의 정원을 채우는 창작정신’, ‘김풍기 교수와 함께 읽는 오언당음’, ‘선가귀감, 조선 불교의 탄생’,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마음’, ‘한시의 품격’, ‘독서광 허균’,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 ‘삼라만상을 열치다’, ‘누추한 내 방’ 등이 있다. 주요 번역서로 ‘옥루몽(전 3권)’, ‘열하일기’(공역, 전 2권), ‘강원도지’(공역), ‘강원여성시문집’(공역) 등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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