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기 교수의 도문대작 읽기] ⓾가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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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풍기 교수의 도문대작 읽기] ⓾가자미

    • 입력 2024.01.27 00:01
    • 수정 2024.01.30 17:48
    • 기자명 김풍기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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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문대작’(屠門大嚼)은 푸줏간 앞을 지나면서 입맛을 쩍쩍 크게 다신다는 뜻이다. 이 책은 허균의 방대한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저술된 일종의 음식 관련 저술이다. 다시 분류하자면 음식문화를 기록한 책으로 보아야 한다. 허균의 고단한 유배지 식탁은 과거 풍성한 식탁 귀퉁이조차도 구경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를 극복한 것이 바로 상상력이었다. 그런 궁핍한 현실 속에서 허균의 미각적 상상력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김풍기 교수와 함께 걸작 도문대작을 탐닉한다. <편집자 주>

    영조 때 대사간(大司諫)을 지낸 적이 있는 신위(申暐, 1707~?)가 함경도 종성(鍾城)에 귀양을 갔다가 풀려났을 때의 일이다. 많은 사람의 환송을 받으면서 종성을 출발한 신위가 경성부(鏡城府) 경계에 도착하자, 당시 경성부사로 있던 유관현(柳觀鉉, 1692~1764)이 관청의 하인을 시켜서 말을 전하는 길에 쌀 몇 되와 가자미 몇 마리를 함께 보냈다.

    약간의 예물을 들고 경성부 하인이 신위가 머무는 곳으로 들어섰을 때 마침 신위를 수행하고 있던 군관의 눈에 띄었다. 군관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하인을 끌어냈다. 신위가 그 사실을 전해 듣고는 재빨리 군관을 불러서 쌀과 가자미를 받도록 했다. 다음 날 그는 경성부 관아에 들러서 감사 인사를 전한 뒤 떠났다고 한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이 일화는 유관현의 아들인 유장원(柳長源, 1724~1796)이 아버지의 일화를 모아놓은 글에 등장한다(동암집 권13). 아들은 왜 특별할 것 없는 이 일화를 기록한 것일까?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의하면 함경도 길성현(吉成縣)의 토산품으로 가자미가 기록되어 있다. 길성현은 바로 경성도호부의 속현인데, 가자미는 이 지역의 특산품이었던 셈이다. 죄를 지어서 귀양을 간다 해도 그의 이력이나 집안, 정치적 입장이 어떠냐에 따라 귀양지에서의 대우는 천차만별이다. 신위는 중앙에서 벼슬을 하다 왔을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돌아가리라는 기대를 받았으니 그에 대한 대우가 혹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던 차에 귀양에서 풀려나 한양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그와 정치적 인연을 맺으려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그를 수행하던 군관 입장에서는 무언가 예물을 들고 오는 사람을 엄하게 차단해야 했을 터이니 유관현이 보낸 하인을 끌어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자미의 한자어는 접어(鰈魚)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가자미의 한자어는 접어(鰈魚)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그러나 사정을 알아챈 신위는 즉시 하인을 불러서 그가 가지고 온 예물을 받았다. 그것은 예물이 가지고 있는 내용물, 즉 쌀 몇 되와 가자미 몇 마리가 뇌물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일상적이고 적은 양이라는 점이다. 귀양에서 풀려나 한양으로 가는 처지였으므로 돌아가는 길에 필요한 양식을 일부 보내준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거기에 예물을 보낸 유관현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훌륭한 인품의 관리인지 알고 있었으므로, 그것에 부정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서로 알고 있었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러니 작고 평범한 일화기는 하지만 아들 입장에서는 아버지의 인품과 함께 사회적 평판을 드러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 기록으로 남겼다.

    허균이 함경도 지역을 다녀온 기억은 그의 문집에 다양한 방식으로 남아있다. 그중의 하나가 이 지역의 음식을 오래도록 기억하면서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가자미 역시 그렇게 남은 기록 중의 하나다. 그는 ‘도문대작’에서 이렇게 썼다. “가자미[鰈魚]. 동해에서 많이 난다. 옛날 ‘비목(比目)’이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허균의 기록도 특별할 것은 없다. 그렇지만 수많은 생선 중에서 이렇게 무심한 듯 툭 던지는 것 같은 문장 속에서 가자미에 대한 맛을 떠올리며 자신의 화려했던 시절을 함께 상상했을 것이다. 가자미는 세계적으로 많은 종이 분포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동해에서 캄차카반도에 이르는 해역에서 주로 잡힌다고 한다.

    가자미의 한자어는 접어(鰈魚)다.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의 기록에 의하면 한나라 때 허신(許愼)의 ‘설문해자’를 인용하면서 ‘접어는 낙랑번국(樂浪藩國)에서 난다’고 하였다. 이 기록 때문에 동아시아에서는 오랫동안 한반도 지역을 접역(鰈域)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이아’(爾雅)를 인용하여 ‘동방에 비목어(比目魚)가 있는데 눈을 나란히 하지 않으면 가지 못한다’고 했다. 허균이 기록한 ‘비목’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비목(比目)은 단어 자체에 눈을 나란히 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지봉유설’의 저자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은 접어를 가좌어(加佐魚)라고 표기했는데, 이는 가자미라는 우리말을 음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자미를 비목어라고 부르게 된 것은 가자미가 성어가 되기 전까지는 눈이 한쪽에 몰려있어서, 옛사람들이 보기에는 눈이 하나만 있는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눈이 하나만 있으니 가자미는 반드시 다른 가자미와 몸을 합쳐야 제대로 앞을 볼 수 있고 헤엄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가자미를 뜻하는 비목어는 때때로 비익조(比翼鳥)와 함께 거론된다.

    한나라 문제(文帝) 때의 인물은 한영(韓嬰)이 임금에게 간언할 때 인용된 구절을 보면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동해(東海)에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을 접어(鰈魚)라고 합니다. 눈을 나란히 해야 갈 수가 있으며, 서로 의지하지 않으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남해(南海)에 새가 있는데 그 이름을 겸조(鶼鳥)라고 합니다. 날개를 나란히 해야 날 수가 있으며, 서로 의지하지 않으면 날 수가 없습니다.”

    여기 나오는 겸조는 비익조를 일컫는 말이다. 비익조 역시 날개가 하나밖에 없으므로 반드시 다른 새와 함께 힘을 합쳐야만 날아오를 수 있다. 비목어나 비익조 모두 다른 누군가와 힘을 합쳐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짐승도 이렇게 힘을 합치는데, 임금 역시 혼자만의 힘으로는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이다. 반드시 뛰어난 인재를 등용해서 그들과 힘을 합쳐야만 비로소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허균이 ‘도문대작’에서 접어를 기록하면서 비목어라고도 한다는 구절을 넣었을 때 어쩌면 한영의 비유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생각지도 못하게 죄를 짓고 귀양을 와서 고초를 겪고 있으니,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또 다른 자신은 어디 있을까 하는 마음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귀양을 가게 된 것은 과거시험 부정합격 사건이었는데, 거기에 연루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물론 허균이 잘못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유독 허균만 유배형에 처하게 된 것에는 뒷이야기가 있다. 어찌 보면 허균은 그 죄를 뒤집어쓰고 유배지로 갔다고 할 수도 있는데, 혹독한 환경에 처해보니 세상에 고립무원(孤立無援)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을 것이다. 그가 이곳에서 풀려난 뒤에도 은거할 뜻이 있었던 것을 보면, 이 당시의 경험에서 자신을 도와줄 사람의 존재가 없다는 사실에 깊은 실망과 생각을 했던 듯하다.

     

    강원도 영동 지역 제사상에 반드시 오르는 가자미는 살을 발라서 간장에 찍어 먹는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강원도 영동 지역 제사상에 반드시 오르는 가자미는 살을 발라서 간장에 찍어 먹는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강원도 영동 지역에서는 제사상에 반드시 오르는 어류 중에 가자미가 있다. 제삿날이 되면 집에서는 늘 가자미를 찌는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가자미를 요리하는 방법이 많이 있지만, 제사상에 오르는 가자미는 그냥 쪄서 올린다. 제사를 마치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식사하게 되면, 가자미 살을 발라서 간장에 찍어 먹는다. 두툼한 가자미의 속살이 주는 약간의 쫄깃함과 약간의 퍽퍽함, 그것이 주는 고소함은 무어라 표현하기 어렵다. 어떤 간도 하지 않고 쪄서 간장에 살짝 찍어 먹는 가자미의 맛은 매력적이다. 허균이 맛보았던 동해안의 가자미는 어떻게 요리를 했을까. 그의 기록으로는 알 수 없지만, 나와 비슷한 식감과 맛으로 기억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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