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기 교수의 도문대작 읽기] ⓺북한의 높은 산을 떠오르게 하는 열매 들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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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풍기 교수의 도문대작 읽기] ⓺북한의 높은 산을 떠오르게 하는 열매 들쭉

    • 입력 2023.12.30 00:07
    • 수정 2024.01.05 10:49
    • 기자명 김풍기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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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풍기 강원대 교수
    김풍기 강원대 교수

    ‘도문대작’(屠門大嚼)은 푸줏간 앞을 지나면서 입맛을 쩍쩍 크게 다신다는 뜻이다. 이 책은 허균의 방대한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저술된 일종의 음식 관련 저술이다. 다시 분류하자면 음식문화를 기록한 책으로 보아야 한다. 허균의 고단한 유배지 식탁은 과거 풍성한 식탁 귀퉁이조차도 구경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를 극복한 것이 바로 상상력이었다. 그런 궁핍한 현실 속에서 허균의 미각적 상상력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김풍기 교수와 함께 걸작 도문대작을 탐닉한다. <편집자 주>

    분단 이후 처음으로 금강산 길이 열렸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남북 관계야 정치권의 변화에 따라 부침이 심했지만, 필부들의 삶에서 북한이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는 느낌을 분명하게 준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만큼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금강산 첫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지인들을 위한 선물을 사려고 유람선 기념품점에 들렀다. 현대에서 운영하는 곳이었지만 북한 물품이 여러 종 진열되어 판매되고 있었다. 거기서 북한이 출판한 금강산 관련 설화집도 구했지만, 선물로는 마땅한 것이 없어서 북한 술을 몇 병 구입했다. 그 술이 바로 들쭉술이었다.

    그러나 들쭉이 어떻게 생겼는지 식생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으니 내게 이미지가 형성되기 어려웠다. 그저 북한이 자랑하는 독한 술이라는 이미지 외에는 들쭉 이미지가 없었다. 그 이전에 이미 허균의 ‘도문대작’을 읽었지만, 이상하게도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들쭉이 북한의 들쭉술과 연관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든 금강산 여행에서의 경험 때문인지 한동안 들쭉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북한 술과 관련해서 이미지가 떠오르곤 했다.

    이후 자료를 살피다가 북한에서 기록한 들쭉 전설을 읽을 수 있었다. 고구려 시대 유명한 장군이 사냥하러 갔다가 산속에서 동료와 부하를 잃고 헤매게 되었다. 열흘 동안 길을 찾아 헤매다가 허기 때문에 거의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문득 적자색 열매를 보았는데,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정신없이 따서 먹고 잠에 취해서 쓰러졌다. 사흘 동안 잠에 취해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상하게도 온몸에 원기가 가득했다. 그 열매 때문이라고 생각한 장군은 다시 그 열매를 따 먹으면서 힘을 냈고, 결국 길을 찾아서 무사히 귀환했다고 한다. 그 장군은 이 열매를 들에서 나는 죽이라고 하여 들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다.

    북한이 기록으로 남긴 또 하나의 들쭉 전설이 있다. 백두산 기슭에 한 목동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소 떼를 몰고 백두산을 오르는데, 천지 쪽 하늘에 일곱 색깔 빛이 비쳤다. 목동이 천지로 올라가 보니 그것에서 일곱 명의 선녀들이 춤을 추며 놀고 있었다. 선녀들을 춤을 춘 뒤 천지에서 목욕하고 밖으로 나와 잠을 자는 것이었다. 목동은 나뭇가지를 꺾어서 선녀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그날부터 목동은 매일 선녀들이 놀 때마다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목동이 산에서 내려가는데 뒤에서 선녀가 목동을 불렀다. 자신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준 정성이 고마워서 옥황상제께 아뢰었더니, 상제가 목동에게 전해주라고 하더라면서 비단보자기에 무엇인가를 싸서 주었다. 그러면서 백두산은 워낙 바람이 심하고 날씨가 험해서 사람들이 맛볼 수 있는 과일나무가 없으니, 이것을 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목동은 자신이 받은 씨앗을 백두산 곳곳에 뿌렸는데, 그것이 바로 들쭉나무였다고 한다.

    이런 전설이 남아있다는 것은 들쭉에 대한 민중들의 선호도가 높았다는 점을 의미한다. 북쪽 지역은 산이 험준하고 과일나무가 적은 환경이지만 들쭉나무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열매를 제공해왔다. 그것을 따서 정과를 만들기도 하고 분말로 만들어서 식재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니 평안도와 함경도 지역 백성들에게는 자연이 주는 귀한 선물이었다.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들쭉을 기록해 놓았는데, 그가 맛보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둘죽(㐙粥) : 갑산(甲山)과 북청(北靑)에서만 나는데 맛은 정과(正果)와 가장 부합한다. 다음에 나오는 포도(蒲桃) 이하는 모두 이만 못하다.”

     

    말린 들쭉. 사진=김풍기
    말린 들쭉. 사진=김풍기

    들쭉은 한자로 표기할 수 없어서 음차한 것이 ‘㐙粥’이다. 어떤 번역본에는 이것을 들쭉으로 만든 죽이라고 했지만 오역이다. 여기서 쓴 죽(粥)은 먹는 죽이 아니라 들쭉의 ‘쭉’을 음차한 것이다. ‘도문대작’은 음식의 종류에 따라 분류를 해 놓았는데, 들쭉은 떡(餠) 종류에 넣어서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허균이 맛보았던 것은 열매도 아니고 죽도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정과(正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맛이 정과와 완전히 일치한다는 허균의 서술도 그러하려니와 ‘도문대작’에는 정과를 떡 종류에 분류해 놓았기 때문이다.

    들쭉은 우리나라 땅에서 나는 블루베리라고도 불린다. 들쭉은 주로 한반도 북쪽에서 자라는데(남쪽은 대체로 고산지대에서 자란다), 허균은 갑산과 북청에서 맛을 보았던 것이다. 험준한 산악 지형으로 이루어진 갑산과 북청은 들쭉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었다. 국립중앙과학관이 제공하는 식물 정보에 의하면 나무 높이는 1m가량이고 5~6월경에 녹빛을 띤 흰색 꽃이 피며, 8~9월에 검은빛을 띤 자주색 열매가 달린다고 했다. 또한, 원산지는 한국으로 전남, 강원, 평북, 함남 지역에서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주로 고산지대에서 자란다고 한다. 실제로 이 열매를 보면 그 모습이 영락없이 블랙베리다.

    정과는 과일이나 식물의 뿌리 등을 꿀에 재워서 오랫동안 천천히 조려서 만든 음식이다. 단맛이 있는 과일을 주재료로 삼으며, 도라지나 연근, 인삼, 생강 등 뿌리로 만들기도 한다. 최근에는 다양한 정과를 판매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귀한 음식이었다. 재료 손질도 힘들지만, 그것을 만드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생활이 넉넉한 집안이거나 큰 행사가 있을 때 조금씩 맛을 볼 수 있었다.

    들쭉 열매를 먹어보면 단맛이 아주 강하다. 그것을 따서 말려두었다가 먹기도 하는데, 말린 들쭉은 검은빛을 보인다. 무슨 열매인지 말해주지 않으면 마치 건포도라고 착각할 정도로 맛이 흡사하다. 허균이 도문대작에서 특별히 포도를 언급한 것은 들쭉 열매의 맛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물론 그가 언급한 ‘포도 이하’라는 말은 과일로 분류해서 기록해 놓은 것 중에서 포도 항목 아래쪽에 기록한 과일보다 들쭉 정과가 더 맛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들쭉 열매로 정과를 만들었다면 부드러운 정과의 식감 속에 들쭉 특유의 단맛이 입을 가득 채웠을 것이다. 북청과 갑산 인근의 험준한 산과 골짜기를 지나서 관아의 숙소에서 여장을 풀고 쉴 때 우연히 만난 들쭉 정과의 달콤한 맛은 매우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피로를 푸는 데에도 제격이었을 터이고 여행의 고단함을 달래는 데에도 맞춤했을 터이다. 그렇게 만났던 들쭉 정과는 세월을 넘어서 힘든 귀양 생활을 이기게 하는 상상력으로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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