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의 등나무꽃을 보기만해도 향기가 여기까지 전해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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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용 3
뜻깊고 다양한 문화축제가 열리네요.. 준비하시는 분들 수고 많이 해주시고, 성황리에 축제가 진행되기를 기대합니다.
2. 김*원 3
춘천이 65세 이상의 1인 가구의 비율이 굉장히 높습니다. 아마도 이런 부분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싶네요
3. 주*용 2
이 내용은 정말 처음 알았네요.. 사용해 본 분들이 있을까 궁금하네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전기및전자공학부 이가영 교수 연구팀이 양극성 반도체 특성을 가진 2차원 나노 반도체 기반의 다기능 전자 소자를 개발했다고 2일 밝혔다.다기능 전자 소자는 기존 트랜지스터와 달리 전압에 따라 기능을 변환할 수 있다.이 교수팀은 채널 하부에 전극을 배치하고 금속·반도체 접합 특성을 개선해 음(N)전하를 띠는 전자와 양(P)전하를 띠는 정공 모두 선택적으로 흐르게 할 수 있는 양극성 특성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이를 통해 전류의 켜짐·꺼짐 비율을 대폭 높일 뿐만 아니라 양극성 트랜지스터, N형 트랜지스터, 다
퇴계 이황이 그려진 1000원권부터 신사임당이 그려진 5만원권까지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범용 지폐는 총 4종입니다. 하지만 2017년에 ‘행운의 2달러’처럼 독특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2000원권 지폐가 발행됐다고 합니다. 기념 지폐로 소량 발행된 2000원권은 액면가의 4배 높은 8000원에 판매가 이뤄졌는데, 높은 관심에 주문이 폭주했다고 합니다. 동계 스포츠 종목과 단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등이 그려져 있는 이 기념 지폐는 강원특별자치도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고 하는데요.법정 화폐로 일반 지폐처럼 사용은 가능하지만 실제 사용
광복 이후 한국은행이 설립되고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을 보면 세종대왕, 율곡 이이, 충무공 이순신, 퇴계 이황, 사임당 신씨가 있다. 그러나 지폐 1호 인물은 이승만 대통령으로 1950년 8월 발행한 1000원권에 등장했다. 이후 1956년 500환권에 다시 등장했다가 1960년 4·19혁명으로 하야할 때까지 지폐모델을 독점했다. 특이 사항으로 사임당 신씨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이씨라는 공통점이 있다. 천원권 지폐에 등장하는 퇴계 이황 선생은 춘천의 퇴계동 지명유래에 수없이 언급되고 있어 어떤 연관이 있는지
조선시대 문인인 추월 남옥 선생의 매화 시가 우안 최영식 화백의 손에서 되살아났다.우안 최영식 화백 매화 기획작품전 ‘우안매화전(牛眼梅畵展)’이 오는 15일까지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 소나무 화가로 알려진 최영식 화백이 매화 그림만으로 갖는 개인전은 화업 50여년만에 처음이다. 매화만을 소재로 한 작품전은 강원 지역은 물론 전국에서도 극히 드물다.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점은 과거와 현재의 두 예술인의 시대를 넘나드는 조우다. 18세기 문인인 추월 남옥 선생은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갔을 당시 2000여수의 시를 지어 일본
춘천 땅에 사람이 살고 있던 시기는 선사시대부터지만 성씨의 시작은 한자 문화가 유입된 삼국시대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고려 초기에 지금과 유사한 성씨 제도가 정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상을 기리는 민족 최대 명절 추석을 맞아 15년마다 발표하는 ‘인구총조사 성씨 통계’를 활용해 춘천의 성씨와 본관 이야기를 담아냈다. ▶춘천시민 성씨(姓氏) 145개⋯홍·지·허씨는 유독 많아통계청에서 발표한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를 분석한 결과 춘천에는 현재 145개의 성씨가 존재한다. 가장 많은 성씨는 ‘김(金)씨’ 5만5926명(
『하와일록(河窩日錄)』이라는 책이 있다. 천년 이상 이어져오던 유학을 성리학의 틀에 넣어 정리한 중국 송나라의 주희(朱熹=주자)와 그의 학설을 다시 정리해 중국에조차 당해낼 학자가 없다 해서 ‘해동주자’로 불리었던 퇴계 이황(李滉)의 학설을 깊이 연구한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유의목(柳懿睦)이 만 7년 동안 쓴 일기다. 그런데 이 일기가 시작된 해는 1797년(정조 21), 유의목의 나이 겨우 열세 살 때였다. 열여덟 살 때인 1802년(순조 2)까지 이어지는 이 일기를 엮은 책의 첫머리에는 그가 스물두 살(1806)에 쓴 서문이 실
다큐멘터리영화 화씨 911은 작심하고 만든 영화이다. 당시 집권중인 부시정권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 안티부시를 표방하고 기획된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감독 마이클 무어는 2005년 칸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다큐멘터리로는 유례가 없는 일로, 전 세계 극장에 배급되어 1억 명의 관객을 동원한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작품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본래 다큐멘터리의 기획의도였던, 부시의 재집권은 막지 못했다. 이 때 미국은 이라크와 전쟁 중이었으며, 전시상황에서 보수적인 분위기로 돌아선 미국인들은 부시의 재선을 받
MS투데이가 가을을 맞아 더 깊이있고 다채로운 칼럼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가겠습니다.MS투데이에서 칼럼을 연재할 칼럼니스트는 △김성희(북칼럼니스트) △차기태(언론인·전 한겨레신문 기자) △고종관(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보건학박사) △황규선(강원연구원 경제교육센터장) △노승만(강원연구원 연구본부장) 등 5명입니다. 김성희 칼럼니스트는 ‘김성희의 뒤적뒤적’이라는 코너로 도서와 삶 속의 잔잔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문화부 출판팀장, 고려대 언론학부 초빙교수,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2004년 작 ‘나비효과(감독 에릭 브레스)’의 도입부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에 이론을 간략히 설명한 자막이 나온다. 정관사를 붙인 영화의 제목(The Butterfly effect)이 바로 그 유명한 카오스이론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이러한 전략은 어떤 효과를 기대하게 되는데, 관객으로 하여금 기본적으로 영화를 보기 전에 나비효과에 대해 ‘구글링’을 하게 만든다.그리고 만약 당신이 관객이라면, 영화를 보는 동안 그 이론에 영화의 장면을 접목시켜 해석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정도 되면 다른 생각
이란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작품들 중, ‘내 친구 집은 어디인가’,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 ‘올리브나무 사이로’ 이들 세 작품을 묶어 지그재그 삼부작이라고 부른다.삼부작이라고 하면 영화의 기획단계에서부터 계획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예를 들어 폴란드 출신의 감독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가 연출한 영화 ‘블루’, ‘레드’, ‘화이트’와 같은 경우는 삼색(세 가지 색) 시리즈로 애초에 기획된 작품들이다. 프랑스국기인 삼색기가 의미하는 자유, 평등, 인류애를 세 가지 색으로 은유하며, 그에 걸맞은 세 명
현재 영화 ‘소년 아메드’가 개봉중이다. 시간을 내기 어려워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다. 2019년 칸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이기도하지만, 수상여부를 떠나 다르덴 형제 감독(장피에르 다르덴, 뤼크 다르덴, 벨기에)의 작품이라 꼭 보려고 한다. 그만큼 이들 형제의 작품은 필자에겐 일종의 보중수표와 같다.이들 듀오의 작품은 특별히 칸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99년 ‘로제타’와 2005년 ‘더 차일드’로 두 번에 걸쳐 칸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의 영예를 차지했다. 2008년 ‘로나의 침묵’으로 각본상, 2011년 ‘자전거를 탄 소년’으로 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은 특별한 영화다. 2017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아서도 아니고 획기적인 내러티브실험을 시도했거나 혹은 연출에 있어 미학적 성취가 대단해서도 아니다. 특별한 이유는 어느 가족이 보편성과 특수성의 문제에 있어서 뚜렷한 교집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유수의 영화제에서 그랑프리의 영예를 차지한 대개 영화들의 공통점은 보편성의 관점에서 소통 가능한 경향을 띤다. 특별히 지역성이 반영되더라도 인류보편의 정서를 건드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플롯이 아무리 논리적으로 구조화되었더라도 감성적인 영
영화 시네마천국은 중년의 독자들에겐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의외로 청춘들에겐 일종의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듯싶다. 필자가 접할 수 있는 범위의 학생들은 이 영화를 다 알고 있었다. 영화음악 때문이지 아닐까 한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배경음악 때문이리라. 지난 7월 6일, 거장의 죽음을 알리는 소식을 접했다. 때를 맞춰 극장에서는 그가 참여한 영화들을 재개봉하고 있었다. 상술이라고 폄훼할 이유가 없다. 추모의 한 방식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극장을 채우고 있었다.그렇게 시네마천국을 극장에서
영화 ‘장미의 이름’은 잘 알려진 대로 세계적인 석학 움베르코 에코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의 명성에 편승한 감이 없지 않지만, 장 자크 아노 감독이 연출한 영화 역시 잘 구성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를 감상하는데 있어서 딱히 그 배경을 알지 못해도 중세 판 셜록 홈스를 보는 듯, 긴장감과 흥미가 돋보인다. 그런데 제목과는 달리 장미와 그 이름 그리고 의미에 대한 언급은 없다. 영화에서는 아예 드러나지 않고(다만 장미가 아련한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뉘앙스로 바쳐질 요소가 있다. 이는 장 자크 아노 감독의 해석이 더
루이 말 감독의 1992년 작 ‘데미지’는 상처에 대한 영화다. 금기를 깬 남녀의 지독한 사랑이 할퀴고 간 영혼의 스크래치와 그 전이방식에 대해 그리고 있는 수작이다. 그런데 타부를 다루는 대부분의 텍스트가 자멸이라는 형벌로 마무리되지만 '데미지'는 다른 방식을 취한다. 두 남녀주인공 대신 그 아들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가족은 해체된다.배경은 영국, 정부각료인 주인공 스티븐 플레밍(제레미 아이언스 분)은 의사 출신으로 보수적인 가정의 가장으로서 전형성을 띤 완벽한 인물이다. 실력자인 장인의 후광으로 고위직에 오른 그는 마음만 먹으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감독 안노 히데아키와 영화 ‘일본침몰’의 감독 히구치 신지가 공동 연출한 2016년 작 ‘신 고질라’는 역대 일본영화 수익 1위에 랭크된 작품이다. 2017년 일본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7개의 상을 석권하기도 했다. 사실 1954년에 일본에서 처음 선보인 고질라 시리즈는 개작과 더불어 진화를 거듭해왔다. 최초 개봉 당시에도 일본에서 9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신 고질라 역시 82.5억엔(약 900억원 상당)의 수입을 올렸다고 하니 엄청난 흥행작임이 분명하다.일본 내에서 대중성과
영국의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2000년 작)’는 미국 CBS TV에서 방영한 리얼리티프로그램 ‘언더커버 보스’의 모티브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방송에선 9명의 회사 CEO들을 섭외하고 청소부로 분장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를 회사 소유의 빌딩에 환경미화원으로 위장취업(?)시킨다. 소위 허드렛일로 취급되는 블루칼라의 과중한 업무와 부당한 대우를 경험하게 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한 관찰프로그램인 만큼, 적어도 초기엔 웃음과 함께 잔잔한 감동을 남겼던 방송콘텐츠였다. 언더커버 보스는 '빵과 장미'의 인상적인 한 장면에서
영화 '엘비라 마디간'은 배경으로 사용된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으로 더욱 유명해 졌다. 1967년 빌보드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빌보드 역사상 클래식 음악이 랭킹에 오른 것은 그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 이는 그만큼 당시 영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현상에는 당대의 시대정신이 관통하고 있다.영화가 개봉된 시점은 전후 세대가 갓 스무 살을 넘던 시기였다. 그들의 마음속 깊이에는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질서를 전복하고자 한 욕구가 응축되어있었다. 그런데 그 시절 서구의 젊은이들이 바란 세상은
그런 영화가 있다. 한번 보면 마냥 웃긴 코미디물 정도로 여겨지나, 볼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작품이 있다. 이해진 감독이 연출한 2009년 작 ‘김씨 표류기’가 바로 그런 영화다. 두 번째 영화를 봤을 때 언어가 보였고, 세 번째 보았을 때는 구조가 보였다. 무엇보다 의미가 있었던 것은 학생들과 영화를 보고 세미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질문이 있었다는 점이다. 수업을 통해 훈련된 학생들인지라 사소한 것에도 왜라는 질문을 단다. 연출자의 기획의도와는 별개로 텍스트를 다루는 교수자로서 질문에 응해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을 가지고
중국을 대표하는 장이모우 감독의 '귀주 이야기'는 뛰어난 작품이다. 1992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으며 당해 여타의 영화페스티벌에서도 수상한 자타가 공인한 뛰어난 수작이다. 사실 이보다 앞서 감독은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의 영예를 획득한 바 있다. 그리고 이후 '인생(1994년 작)'으로 칸영화제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서구가 인정한 장이모우의 화려한 필모그래프는 중국공산당의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이 시기 감독의 일련의 작품들은 다분히 반체제영화의 성격을 띠었기 때문이다. 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