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시네마] 다큐 ‘화씨 911’, 역사는 반복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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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 시네마] 다큐 ‘화씨 911’, 역사는 반복되는가

    • 입력 2020.09.28 08:23
    • 수정 2020.12.10 14:05
    • 기자명 이황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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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다큐멘터리영화 화씨 911은 작심하고 만든 영화이다. 당시 집권중인 부시정권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 안티부시를 표방하고 기획된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감독 마이클 무어는 2005년 칸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다큐멘터리로는 유례가 없는 일로, 전 세계 극장에 배급되어 1억 명의 관객을 동원한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작품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본래 다큐멘터리의 기획의도였던, 부시의 재집권은 막지 못했다. 이 때 미국은 이라크와 전쟁 중이었으며, 전시상황에서 보수적인 분위기로 돌아선 미국인들은 부시의 재선을 받아들였다. 2001년 부시정권이 출발했을 때, 플로리다 주 부정선거로 당시 미국의 국민들은 부시의 정통성을 의심하고 대통령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만큼 상황이 급반전된 것은, 외부의 적을 설정한 전시체제가 그 내부의 결속을 위해 얼마만큼 보수적인 방향으로 흐르는지 보여주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매체를 통해 2차 걸프전으로 명명된 이라크전쟁은 2003년 봄에 시작되어 2011년 겨울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러나 미군이 철수했음에도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전후 권력공백으로 인해 중동은 극도의 혼란상황으로 빠지고 만다. 테러집단인 IS(Islam State)의 출몰, 연쇄적으로 발발된 시리아내전, 이어진 대규모 난민사태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참혹한 전쟁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라크에 ‘대량살상 무기’가 있을 것이라는 추정만으로, 전쟁을 벌인 부시정권의 최초명분은 흐지부지 사라져 버렸다. 미국의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차후 아랍세계는 그 후유증을 고스란히 떠안아만 했다. 

    다큐멘터리는 이러한 일을 벌인 부시정권의 만행을 고발하고 있다. 영화의 프롤로그부터 부정선거의혹에 대해 요약해 보여주며 부시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한다. 이어서 이라크전쟁을 정권유지의 도구로 쓰인 정황을 증빙자료들을 나열해 보여준다. 그러고 나서는 부시정권의 최고위각료들에게 인터뷰테러를 가한다. 당연히 마이클 무어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정부 인사들은 인터뷰를 피한다. 감독은 그와 같은 상황이 담긴 영상을 보여주며 그들이 얼마나 뒤가 쿠린 일들을 벌인 인물들인지 관객에게 역설하고 있다. 

    위와 같은 방법은 스토킹필름(Stalking Film)이라고 한다. 마치 스토커가 집요하게 대상에게 천착하는 것처럼, 온갖 비리와 권력을 전횡했다고 의심되는 인사들에게 인터뷰를 무기로 곤란에 빠트리는 전략이다. 그들을 법의 심판대에 올릴 수 없다면, 적어도 여론의 재판을 받게 하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져 있기도 하다. 그만큼 부시가 재선되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다큐가 기획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다큐멘터리 화씨 911은 브리콜라주(Bricolage)기법의 영화로도 분류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이란 메이저에서 활용된 영상자료들을 모아 재가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보수적인 정권에서 기획된 영상자료나 그에 편승한 언론사에서 생산된 자료 중 자투리영상을 모아 재구성한다. 주류매체와 정권이 사용한 자료의 앞과 뒤를 재편집하여 맥락을 비튼다. 점잖게 정부방침을 발표하는 모습보다는 그 담화 준비 전에 테스트로 찍은 영상을 모아 권력의 허접함을 비트는 일종의 풍자적 방식이다. 

    이는 프랑스의 구조주의철학을 이끈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가 주창한 원시의 문화 문화제작자인 브리콜뢰르(Bricoleur)에서 차용된 용어이다. 브리콜뢰르란 현대의 엔지니어(Engineer)와는 상반된 생산방식을 수행하는 이들을 말한다. 말하자면 원시시대 돌덩이 하나로 동물을 사냥하고 자르고 문지르고 모든 것을 임시변통으로 수행하던 생산방식을 말하는데, 레비 스트로스는 이를 원시와 문명을 구분 짓는 이항대립의 사례로 들고 있다. 하지만 이후 현대의 포스트모던담론은 브리콜뢰르를 맥락을 비틀고 재구성하는 것에 능통한 예술가적 사유와 행동양식을 따르는 이들로 긍정하게 되고, 브리콜라주 기법은 일종의 전유(appropriation)장치로서 새롭게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따라서 마이클 무어가 수행한 자료영상(footage film)을 재가공하는 방식은 예술적 성취는 물론 권력에 저항하는 실천적 태도로 인정받기도 한다.

    여하튼, 기존의 다큐멘터리담론이 객관성과 윤리적 태도 그리고 대문자로서 진실담론에 경직된 사고를 보였다면, 마이클 무어가 수행하는 일련의 다큐들은 이와는 상반된 방식으로 생산된다. 정리하자면 매우 주관적이며 제작자의 위치라는 윤리의 문제는 특별히 고려되지 않는다. 그리고 진실이라는 무거운 주제보다 현실정치에서 팩트를 나열하고 수용자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이로써 감독은 미국사회가 앉고 있는 온각 부조리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데 탁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반면 마이클 무어 감독의 이러한 태도와 방식에 반감을 품은 이들은 안티 마이클 무어를 표방하고 나서며, 동일한 방식으로 그를 비판한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좌우의 진영논리가 벌이는 소모적인 논쟁들과 매우 흡사하다. 비유하자면 똑같이 돌려주겠다는 것인데, 서로가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마치 뱀 두 마리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서로의 몸통을 잡아먹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적 반목과 확증편향에 빠진 인구들을 재생산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며, 돌고 돌아 공수를 바꿔가며 벌이는 정쟁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피로감은 이제 극에 다다른 듯싶다.

    다시 미국이야기로 돌아가 가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9월 27일 어제, 미국에서는 지난 9월 18일 타계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후임으로 보수적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가 지명되었다. 배럿은, 소수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진보적 색채가 강했던 전임자 긴즈버그와는 대조적인 인물임에 틀림없다. 지난 2016년 임기를 9개월 남긴 오바마 대통령이 연방대법관을 지명하고자 했을 때, 절대 불가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던 공화당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입장을 바꿨다. 이제 불과 대통령선거 40여일을 남겨두고 때마침 공석이 된 대법관 자리에 트럼프대통령은 자신의 미래를 담보해줄 인사를 직접 지명했다. 참으로 모순적인 행태라 아니할 수 없다. 

    투표도 하기 전, 이미 선거결과에 대해 불복선언을 한 트럼프가 둔 체스판의 말이 되어줄 새로운 대법관이 확정되기까진 아직 절차가 남아있다. 하지만 지명이 관철되면, 분명 배럿 후보자는 차기 대법관이 되어, 민주당의 바이든에게 유리한 우편투표에 대해 부정(不正)이 있었다고 받아들일 것이 자명해 보인다. 이로써 기울어진 대법관구성으로 인해 트럼프의 재선이 확실시 되는 시나리오가 기정사실화되어 가는가 싶다. 어쩌면 2000년 11월에 있었던 일과 너무도 중첩되는 일이 20년 만에 다시 반복될 수도 있겠다 싶다. 선거에 승리한 엘 고어를 낙마시키고, 부정선거가 확실해 보임에도 보수적인 상원과 대법원의 농간으로 대통령이 된 부시를 고발했던 마이클 무어는 다시 카메라를 들고 스토커처럼 거리를 헤매야 할지도 모른다. 

    위와 같은 상황전개는 미국이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을 때 남의 나라얘기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벌써부터 트럼프에 불리한 선거결과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계엄령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뉴스도 접하게 된다. 변화무쌍한 미국의 정국이 국제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한반도엔 어떻게 작용할지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럴수록 우리시민사회와 정부는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반복되는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현명하거나 혹은 어리석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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