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시네마] '귀주 이야기(秋菊打官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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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 시네마] '귀주 이야기(秋菊打官司)'

    • 입력 2020.06.08 09:49
    • 수정 2020.06.08 10:10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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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중국을 대표하는 장이모우 감독의 '귀주 이야기'는 뛰어난 작품이다. 1992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으며 당해 여타의 영화페스티벌에서도 수상한 자타가 공인한 뛰어난 수작이다. 

    사실 이보다 앞서 감독은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의 영예를 획득한 바 있다. 그리고 이후 '인생(1994년 작)'으로 칸영화제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서구가 인정한 장이모우의 화려한 필모그래프는 중국공산당의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이 시기 감독의 일련의 작품들은 다분히 반체제영화의 성격을 띠었기 때문이다. 칸에 정식으로 초대되었을 땐 중국 정부의 출국금지로 정작 축제의 장에 갈 수조차 없었다. 

    80~90년대 왕성한 작업을 선보인 감독의 작품은 전부 저예산영화였다. 그도 그럴 것이 1920년대에서 1970년에 이르는 영화의 배경 속 중국의 모습은 가난 그 자체였으며 딱히 세트랄 것도 없이 제작 당시 궁핍한 중국의 거리에서 군중들과 동화되어 다큐처럼 찍었기 때문에 큰돈이 들 이유가 없었다. 영화에 비친 중국의 근현대사는 자랑스러워 보이는 역사라기보다도 감추고 싶은 치부였기에, 중국당국으로선 장이모우의 작품들이 마뜩잖았을 게다. 

     

    '귀주 이야기' 스틸컷
    '귀주 이야기' 스틸컷

    더욱이 1989년 천안문에서 벌어진 민중봉기를 무력으로 진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귀주 이야기' 같은 작품이 서구의 호평을 받은 것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귀주 이야기'는 일종의 다큐 필름으로, 어떤 특정 장소를 섭외하고 배우들이 그 속에 잠입해 들어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영화를 찍는 방식이다. 

    몇몇 배우만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현지에서 캐스팅된 사람들이거나 경우에 따라선 영화를 찍는지조차 모르고 일종의 기록영상을 촬영한다고 생각하고 작품에 등장한 인물들도 있다. 때문에 영화는 의도와는 별개로, 개방 이전 중국의 폐쇄된 현지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하는 뉴스릴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배경을 등에 업고 '귀주 이야기'는 중국의 실태를 고발하는 영화쯤으로 읽혀질 수도 있겠으나 사실 영화는 보편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개인과 전체의 문제'라는 고전적 주제를 훌륭하게 소화해낸 작품이다. 

     

    '귀주 이야기' 스틸컷
    '귀주 이야기' 스틸컷

    영화의 중국어 원제목은 '추국타관사'(秋菊打官司)이다. 의역하면 '추국이 소송을 걸다.'이다. '만가소송'(萬家訴訟)이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의 스토리는 정말 단순하다. 주인공 추쥐(추국의 중국어발음, 우리나라에선 귀주로 오역되었음)는 시골의 아낙인데, 그녀는 임신한 상태다. 어느 날 입이 가벼운 추쥐의 남편(완칭라이)이 아들 없이 딸만 있는 마을 촌장 왕산탕에게 놀림조의 모욕적인 언사를 가하게 되고, 이에 격분한 왕씨가 남편의 사타구니를 걷어찬 사건이 발생한다. 

    추쥐는 남편을 구타한 마을촌장에게 항의하며, 사과를 요청한다. 하지만 왕씨는 추쥐의 남편이 자신을 모욕한 일이기 때문에 그가 맞은 것은 당연한 벌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추쥐는 마을의 치안을 담당하는 공안(파출소장쯤에 해당하는 관리)에게 왕씨를 고발한다. 중재에 나선 공안은 공리가 단순히 사과를 받는 것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왕산탕에게 완칭라이의 치료비와 함께 사과할 것을 중재한다. 이를 받아들인 촌장은 치료비와 사과를 받으러 온 추쥐에게 돈을 던진다. 보상은 하겠으나 사과할 뜻은 없다는 뜻이다. 

    왕씨의 완강한 태도에 대응해, 추쥐는 읍내로 나가 공안과에 다시 그를 정식으로 고발한다. 사과의 표현 없이 치료비만 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추쥐의 주장은 기관에 접수되고 사건은 법률로 다뤄지게 된다. 이제 일은 추쥐의 뜻과는 상관없게 된다. 사실 추쥐가 사과를 받고자 하는 이유는 남편이 왕씨로부터 낭심을 걷어차인 것에 있다. 

     

    '귀주 이야기' 스틸컷
    '귀주 이야기' 스틸컷

    추쥐는 임신 중이었고 아직 태중의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 모르는 상태인데, 만약 자신이 딸이라도 낳게 되면 집안은 물론 마을에서 구박과 멸시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출생한 아이가 딸일 경우, 서둘러 다시 임신을 시도해서 아들을 가져야 만이 전통적인 가부장제의 촌락공동체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을 터인데, 남편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되면 자신의 입지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게 될 게 뻔해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백미는 계속해서 상급심으로 올라가는 추쥐의 소송전보다, 사건이 새롭게 상급기관에서 다뤄질 때마다 사이에 삽입되는 일종의 브릿지 신(bridge scene)에 있다. 촌락에서 읍내로 갈 때만 해도 길은 좁다. 그런데 읍에서 군 그리고 군 소재지에서 중앙(베이징)으로 사건이 송치될 때마다 길은 넓어지고 작은 수레에서 자전거 그리고 버스로 탈 것들이 바뀐다. 만삭으로 점점 배가 불러오는 추쥐는 힘 겼게 길을 나선다.

    그런데 마을의 신작로는 곧장 이어진 직선이지만 도시로 나갈수록 길은 넓어지나 꾸불텅꾸불텅한 곡예길이 된다. 여기엔 의미가 함축돼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란 것이 작은 공동체 사회에선 대화와 같은 방식으로 해결된다. 한마디로 단순하다. 그러나 법과 같은 전체를 아우르는 체제유지의 방식이 개입되면 본인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복잡한 양상으로 결론이 날 수 있다. 이와 같이 개인과 전체의 문제가 함축된 명장면이다.

    영화에서도 추쥐 가족과 왕씨 사이의 문제는 실없이 해결된다. 추쥐는 출산이 임박해서 난산으로 죽을 위기에 빠진다, 가족들은 허둥대지만 왕씨는 마을촌장답게 빠른 대처로 그녀와 아이를 살려낸다. 적이 은인이 되는 순간이다. 게다가 추쥐의 걱정과는 달리 태어난 아이는 아들이다. 만약 아들을 못 낳게 되면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 남편을 폭행한 촌장에게 있다는 것을 왕씨의 사과말로 확답을 받으려던 추쥐의 애초 계획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는 기우가 되어 버렸다. 모든 것이 해피하게 마무리되면 될 일이다.

     

    '귀주 이야기' 스틸컷​
    '귀주 이야기' 스틸컷​

    추쥐는 아이의 출산을 축하하고자 국수를 삶아 잔치를 마련한다. 그러나 마을 사람 대부분이 왔는데도 추쥐는 끓는 물에 국수를 넣지 않는다. 자신과 아이의 생명의 은인이 오기 전에 국수를 삶을 수 없다고 가족들 앞에서 우긴다. 그러나 그때, 멀리서 사이렌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촌장 왕산탕은 폭행혐의로 구치소로 송치되게 된 것이다. 추쥐가 산후의 무거운 몸을 이끌고 촌장의 집으로 달려가 보지만, 이미 왕씨를 태운 공안의 차는 멀리 마을 입구를 떠나고 있었다.

    영화 마지막신의 울림은 크다. 국가라는 거대한 공동체에서 우리의 삶은 법의 지배를 받는다. 인간은 애초에 있지도 않은 법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법치라는 이름으로 국가라는 체제를 유지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일관된 태도를 취하기가 어렵다. 법이 바뀌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바뀌고, 개인의 멘탈리티 역시 세대와 세대 간에 차이가 있고, 한 사람의 사고방식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바뀌어 간다. 

    장이모우 감독은 90년대까지는 반체제 인사였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 노쇠한 그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중국판 블록버스터를 제작하였고 호화캐스팅에 화려한 볼거리, 세련된 내러티브를 선보였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하나의 체제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를 숨기지 않은 영화를 만들었다는 세간의 평가를 받게 된다. 바로 2002년 작 '영웅'이다. 

     

    '귀주 이야기' 스틸컷​
    '귀주 이야기' 스틸컷​

    역사상 가장 큰 중국, 하나의 중국이라는 가치 위에 서구의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중국 정부의 정책 변화에 장이모우는 감동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는 위대한 중국을 노래하는 데 앞장섰고, 이후 베이징올림픽의 개폐회식 예술 감독으로 중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부단히 애쓰기도 했다.

    만물이 유전한다지만 지금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과 현상들을 보고 있자면 한 개인이 전체와 발맞추어 어떻게 변해 가는지 혹은 괴리되는지, 그것을 목도하는 것만으로도 혼란스러워진다. 

    어떤 이는 오랜 동지를 갑자기 몰아세우기도 하고,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돌연한 행동으로 장기간에 걸쳐 어렵게 꾸려온 '의미 있는 조직'을 와해시키는 일도 다반사인 듯싶다. 딱히 어떤 것을 특정해 지적한다기보다도 세상일들이 그런가 싶어 서글퍼진다. 한 개인의 '절대적 자유'와 인류애에 기반을 둔 '공동체적 연대'는 불가능한 조합이란 말인가? 급 의구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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