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시네마]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지그재그 삼부작’과 나선형적 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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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 시네마]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지그재그 삼부작’과 나선형적 역사관

    • 입력 2020.08.31 09:03
    • 수정 2020.09.14 09:06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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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이란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작품들 중, ‘내 친구 집은 어디인가’,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 ‘올리브나무 사이로’ 이들 세 작품을 묶어 지그재그 삼부작이라고 부른다.

    삼부작이라고 하면 영화의 기획단계에서부터 계획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예를 들어 폴란드 출신의 감독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가 연출한 영화 ‘블루’, ‘레드’, ‘화이트’와 같은 경우는 삼색(세 가지 색) 시리즈로 애초에 기획된 작품들이다. 프랑스국기인 삼색기가 의미하는 자유, 평등, 인류애를 세 가지 색으로 은유하며, 그에 걸맞은 세 명의 여주인공들을 각각 캐스팅하여 이야기와 메시지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취한다. 

    그런데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삼부작은 처음부터 기획된 작품은 아니다. 그때그때마다 급조된 작품들이 어떤 선형적인 이야기의 흐름 속에 진전되고 메시지가 얽혀진다. 1987년 제작된 영화 ‘내 친구 집은 어디인가’를 필두로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1991년 작)’은 영화제작 후 영화가 아닌 ‘현실 속의 에필로그’ 형식을 취한다. 한편 후속작인 ‘올리브나무 사이로(1994년 작)’ 영화 속 ‘영화제작과정에 대한 메이킹 필름’의 포맷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영화들이 연속되게 된 모티브는 1990년 6월에 발생한 이란의 대지진이다. 알프스-히말라야조산대에 속하는 이란은 유라시아판과 아라비아판이 충돌하는 지점으로 빈번히 지진이 발생한다. 특히 90년도의 지진은 규모 7.3의 강진으로 4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대참사였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사실주의영화방식을 위해 현지에서 캐스팅되어 ‘내 친구 집으로 어디인가’에 출연했던 아역배우들을 찾아 나선다. 지진피해가 심했던 코케르 지역에 사는 아이들의 안전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정을 그대로 극으로 재연한 영화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이다. 

    세 번째 영화인 ‘올리브 나무 사이로’ 역시 지진피해가 막심한 현장에서 아이들의 안전을 확인한 감독은 두 번째 영화의 모티브를 실천하게 되는데, 바로 현장에서 급조한 영화를 제작하는 일이다. 참사의 현장에서도 삶을 지속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은 감독 역시 자신의 일을 계속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피해주민들에게 삶의 의지를 공유하고 연대를 실천한다. 영화는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얼핏 다큐로 보이지만 재연의 형식을 취하기에 극영화로 범주화 된다. 키아로스타미 감독 특유의 다큐필름의 포맷이 완성된 지점이기도 하다.

    이들 영화들은 제 각각의 독립된 영화들이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리니어한(linear) 흐름을 쫒아가게 된다. 특별한 점은 영화들에 공통된 분모가 존재하는데, 바로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이란 북부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코케르라는 마을의 풍광이다. 각각의 영화에 등장한 인물들은 척박한 환경의 코케르의 산등성이들 곳곳에 지그재그로 아로새겨진 길들을 지루하리만큼 반복적으로 오르내린다. 여기에서 기인하여 코케르 삼부작 혹은 지그재그 삼부작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영화 속 지그재그의 고갯길들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어진다. 이것은 마치 인생에 대한 환유처럼 딱히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것과 흡사하다. 다시 말해서 인생에 대한 은유이지만 그 해석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두 번째 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서의 지그재그로 놓은 산길은 영화 속 설정과 마찬가지로 조산지대에 위치한 관계로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란 북부 마을 코케르를 통해 모진 삶의 역경을 헤쳐 나가는 민중의 신산한 한걸음 한걸음을 은유하는데, 이는 매우 직접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전작인 ‘내 친구 어디인가’에서의 지그재그는 역사의 진보와 반동에 대한 상징으로 읽혀진다. 위에서 언급된 직접적인 방식과는 대조적으로 간접적인 은유를 통해 시대상황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후속작의 직접적인 은유를 통해 전작의 정치적 메시지를 숨기려는 의도로 읽혀지는 면도 없잖아 있다. 이는 종교적 권위주의정권에서 영화를 계속 찍기 위해서는 정치적 현실보다 인생에 대해 논하는 영화감독으로 인식되는 편이 훨씬 더 안전하다는 판단을 감독이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에서다. 여하튼 영화 ‘내 친구 집은 어디인가’는 한편의 알레고리로서 시대적 상황을 맥락에 숨겨 고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그재그 영화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은 ‘올리브 나무 사이로’이다. 1편과 2편의 출연진들이 단역이지만 카메오처럼 등장하면서 재연이라는 설정을 극대화한다. 여기에 주인공 남녀 간의 미묘한 감정교류와 엇나감이 잘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톺아보면 감독은 특유의 역설적인 방식으로 체제의 모순을 비틀고 있다. 구체적으로 등장하는 여성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주체성이다. 극의 도입부분에서 극중 감독은 여학교(? 극중 설정)에서 주인공을 선발하는 작업을 한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검은색 차도르를 입은 여학생(? 극중 설정)들은 몰개성적이라기보다는 표정과 대사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주체적이라는 사실이다. 영화의 출연자체보다 영화가 개봉된 후 오지인 마을에서도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을 묻는다. 

    이러한 재현을 통해, 픽션과 메이킹 필름에 담겨지는 여성캐릭터들에게 주체를 회복시킨다. 말하자면 시선의 대상성을 극복하고 주체임을 선언하는 방식으로 재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가부장제사회의 단면을 극중 감독으로 설정해 놓고 있지만 실제로는 주변부에 머문다. 남성캐릭터들은 오히려 수줍고 수동적이기 까지 하다. 일종의 ‘전복적 재현’으로 근본주의 종교적 질서에 갇힌 여성들의 재현에 다양한 스펙트럼과 제도적 일탈을 감행하게 한다. 이로써 두 번째 작품에서 보인 뒷걸음에서 한껏 앞으로 나아가는 연출력을 선보인다. 마치 일종의 도약을 위해  잠시 웅크린 자세를 취했던 것처럼 감독이 재현한 이란사회는 그저 과거로 회귀한 모습만으로 그려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위와 같이 세 편의 영화에 드러나는 재현의 태도는 개별영화에서 미장센으로 구현되는 지그재그의 패턴과 맥락을 같이한다. 나아가고 돌아가고(혹은 움츠리고) 또 그만큼 반등한다. 그런데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지그재그는 대칭적이라기보다는 오른쪽으로 상승하는 방향으로 재현된다. 다시 말해서 나아가고 돌아오고를 반복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아가는 방향이다. 사실 지그재그의 모티브는 나선형구조와 닮아있다. 특별히 나선형적 역사관과 맥락을 같이한다. 나선형적 역사관이란 진보와 반동의 역사가 반복되는 현상을 일컫는데 궁극적으로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일종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진보주의적 역사관’을 의미한다. 

    키아로스카미가 팍팍하고 신산한 이란의 현실 속에, 그럼에도 진전되리라 믿는 민중의 삶의 희망을 그려내고 있다면, 똑같은 나선형적 역사관을 우리나라의 현대사에도 접목가능하다. 자유당 정권의 폭정을 뚫고 분연히 일어난 419혁명은 그 과업을 완수하지 못하고 516군사쿠데타로 회귀한다. 이후 장기적인 군사정권의 독주와 유신체제는 서울의 봄으로 와해되는 듯싶었으나 1212군사반란과 광주학살을 기반으로 군사독재의 잔불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끝내 진전되었고 반란의 수괴들을 역사의 법정에 세웠다. 그럼에도 과거 일제에 부역했던 친일세력과 군사독재에서 기득권을 차지한 세력들은 다시 역사를 과거로 돌리려 했다. 그러나 지난 촛불혁명으로 국민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현재 다시 부침이 심한 듯싶다. 하지만 지그재그로 된 나선형구조는 역방향이 아닌 발전적인 방향을 지향한다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분명 반복되는 역사처럼 보이지만 차이를 실천하며 우리의 삶은 진보하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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