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여행기] 처음으로 기차를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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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여행기] 처음으로 기차를 놓쳤다

    • 입력 2024.02.02 00:00
    • 수정 2024.02.03 01:11
    • 기자명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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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분명 오전 일곱 시에 알람을 맞춰놨고, 알람이 울리자마자 일어났다. 아침 샤워를 하고 미리 싸놓은 짐을 챙겨 오슬로역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역까지는 10분, 기차 출발시각까지는 30분 이상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좁은 골목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나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길을 들어섰고, 기차 시간이 점점 다가올수록 마음은 점점 초조해져 갔다. 기차 출발시각이 10분 정도 남았을 때 다시 숙소 쪽으로 돌아가서 큰 배낭을 메고 역을 향해 힘차게 뛰었지만, 도착했을 때는 이미 기차가 출발한 지 이후였다. 그렇게 나는 스톡홀름행 기차를 놓쳤다.

    여행하면서 길을 잃은 적은 수없이 많았다. 그 덕분에 예상치 못했던 친구들과 인연을 만들었고, 전혀 계획에 없던 여행이 펼쳐지면서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었다. 첫 유럽여행에서도 그렇게 여러 번 기차를 타면서 한 번도 기차를 놓친 적이 없었다. 거기다 이번에 놓친 기차는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예약한 특급열차였다. 허탈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일상에서 실수할 때는 꽤 오랫동안 기억에 품고 괴로워하는 편이지만, 여행에서의 실수는 신기하게도 금세 잊혔다. 여행을 많이 하다 보니까 실수를 마음에 품고 괴로워하기보다는, 그 자체를 즐기려는 마음가짐이 생긴 것 같다. 놓쳐버린 기차표는 과감히 찢어버리고, 6시간 후에 출발하는 다음 기차표를 결제했다.

     

    놓쳐버린 기차표는 과감히 찢어버렸다. 사진=강이석
    놓쳐버린 기차표는 과감히 찢어버렸다. 사진=강이석

    저녁 시간이 지나 도착한 북유럽 도시 스톡홀름은 거의 모든 상점과 음식점이 문이 닫혀있었고, 어쩔 수 없이 숙소로 바로 향했다. 방에 짐을 풀고 테라스에 들어서니 이미 초저녁부터 여럿이 둘러앉아 맥주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너무나도 환영할만한 분위기였지만, 며칠 연속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친해지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피로감이 밀려왔다. 여행은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행위이기 때문에 매력이 있지만, 여행하며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그 자체에 익숙해지고 의무감으로 다가왔다.

    조용히 테라스 구석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는데, 키 큰 남자 하나가 나에게 다가왔다. 네덜란드에서 온 그랜트는 자신을 교도관이라고 소개한다. 내가 한국에서 온 지리 선생님이라고 하니까, "난 학교 다닐 때 선생님 말씀을 엄청나게 안 들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정말 힘든 직업일 것 같아."라며 걱정해 준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금방 친해지는 방법을 그 네덜란드 말썽꾸러기에게 이야기해 주니까, 나를 '한국에서 온 재밌는 선생님'으로 소개했다. 이렇게 나는 또다시 스톡홀름 여행자 토크 콘서트에 참여하고야 말았다.

    어느 모임에서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마이클은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독일 친구가 미국의 인종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면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고정관념이라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올바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다 문득 그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미국 척척박사를 보고 타산지석으로 삼다니! 대화는 점점 마이클의 지적 허영심을 드러내는 일장 연설로 흘러갔다. 하나둘씩 자리를 떴고, 나 역시 불필요한 대화에 피곤을 느끼고 침대로 향했다. 내일은 좀 더 건전하면서 즐거운 만남이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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