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여행기] 여행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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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여행기] 여행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

    • 입력 2023.08.25 00:00
    • 수정 2023.08.26 00:10
    • 기자명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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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오랫동안 꿈꾸던 유럽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유럽연합의 본부가 있는 브뤼셀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길을 제대로 잃고 말았다. 아까부터 나와 비슷한 골목에서 지도를 쳐다보며 두리번거리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분명 숙소를 찾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친구의 이름은 요헤이, 그의 숙소도 나와 같은 ‘슬립 웰’이다. 둘이 힘을 모아 숙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유럽에 처음 온 길치 두 명이 모인다고 해서 시너지 효과가 나지는 않았다. 분명히 아까 지나온 길 같은데. 우리는 마치 제갈량이 짜 놓은 팔괘진에 빠진 사마의처럼 미로에 빠진 듯 브뤼셀 구시가지를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무렵 북위 50도의 해는 길지 않았다. 오전에 도착했지만, 어깨를 조여 오는 무거운 배낭과 덜컹거리는 캐리어를 몇 시간씩 끌고 다니던 두 초보 여행객은 세 번 정도 지나쳤던 이름 모를 광장에 걸터앉아 초콜릿 빛 어둠을 바라보았다. 마음도 점점 어두워져 가는 그때, 어둠 속에서 노란색 간판이 켜진다. 슬립 웰! 그저 기차역에서 숙소만 찾으면 되는 일이었는데, 나의 첫 유럽은 이렇게나 혹독했다.

    저녁에 도착한 암스테르담에서도 역시나 길을 잃었다. 숙소는 역과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에 빠르게 찾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식당이었다. 숙소 옆에 있는 아무 식당이나 갔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가이드북에 나온 인도네시아 음식점을 찾아 어둠이 깔린 암스테르담 운하로 걸어갔다. 암스테르담까지 와서 굳이 왜 인도네시아 음식을 먹으려 했을까? 꼬불꼬불하면서 몽환적인 암스테르담은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길을 잃어버렸다. 거기다 이곳은 환락의 도시, 암스테르담이다.

     

    암스테르담 운하에 비친 노을과 자전거. (사진=강이석)
    암스테르담 운하에 비친 노을과 자전거. (사진=강이석)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아직 어렴풋하게 남아 있는 운하에 비친 노을과 그 옆에 세워진 자전거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운하와 노을, 자전거의 모습이 너무 예뻤다. 나는 ‘과연 내일 아침까지 숙소에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에 휩싸였지만, 이 황홀한 장면을 마음에 담아두고 싶었다. 그래서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겼고 지금도 사진을 보면 그때의 감정이 떠오른다.

    다음으로는 대성당이 유명한 쾰른으로 갔다. 역에서 5분도 안 걸리는 숙소에 체크인하고 숙소 옆에 딸린 식당에서 소시지를 먹은 후에 쾰른 대성당의 웅장한 모습을 감상했다. 뭔가 허전했다. 그냥 펍에 들어가서 맥주나 마실 것이지, 나는 또 한 번 가이드북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바로 재즈바! 캐나다 유학 시절 재즈를 처음 접했고, 영화 ‘터미널’과 재즈 뮤지션 듀크 조던을 좋아하면서 재즈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그 재즈바를 쾰른에서 가려고 했을까?

    이쯤이면 정말 일부러 길을 잃으려 작정한 사람인 것 같다. 재즈바는 쾰른 대성당 주변이 아니라 북쪽 주거지역에 있었다. 지도상으로 꽤 멀어 보였지만 아직 해가 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 순간 재즈를 직접 듣고 싶었다. 귓가에는 이어폰을 통해 재즈가 흘러들어왔고 이미 뉴올리언스의 그루브는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그렇게 재즈에 취해 한 시간쯤 걸으며 도착한 재즈바는 공구점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직도 나는 쾰른 대성당의 사진을 보면 듀크 조던의 ‘Everything happens to me’를 들으며 재즈바를 향해 스텝을 밟으며 걷던 23살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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