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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여행기] 여행중 가끔 화를 내는 것도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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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여행기] 여행중 가끔 화를 내는 것도 필요해

    • 입력 2023.12.08 00:00
    • 수정 2023.12.09 00:04
    • 기자명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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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베트남 여행의 마지막은 하롱베이에서 하기로 했다. 2박 3일 동안 유람선을 타고 낮에는 배 갑판 위에 누워서 맥주 마시다가 수영도 하고, 카약도 타고, 그러다가 밤이 되면 갑판에서 술 마시면서 파티도 하는 일정. 이런 호화스러운 여행은 가격이 문제지만 가격도 1인당 10만 원 정도로 저렴했다. 하노이 여행자 거리에서 예약하고 다음 날 아침에 하롱베이로 떠났다.

    태양이 뜨거운 낮에는 비치베드에 누워서 느긋하게 음악을 들었다. 그러다 맥주 한 잔 시원하게 들이켠 후 2층 높이의 갑판에서 시원하게 다이빙! 이렇게 남중국해에서 여유로운 낮을 보내다가 밤이 되면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갑판에 누워 눈앞으로 쏟아져 내릴 것 같은 한 여름밤의 별들을 보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배가 갑자기 멈췄고, 성난 얼굴의 선장이 성큼 다가왔다. 그는 뱃사람의 거친 손으로 부서진 샤워기를 움켜쥐고 있었다. “이거 누가 망가뜨렸어?” 화가 난 눈빛과 목소리로 선장이 따지듯이 쏘아붙였다. 그 샤워기는 공교롭게도 내 방에 있던 것이었다. 분명히 나는 30분 전 문제 없이 샤워를 끝마치고 방을 나왔다. 선장은 “마지막으로 사용했으니 네가 변상해야 한다”며 그러지 않으면 이 배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했다.

     

    2박 3일 투어 가격이 100$가 안 되었는데, 저 낡아빠진 샤워기 하나가 100$다. 사진=강이석
    2박 3일 투어 가격이 100$가 안 되었는데, 저 낡아빠진 샤워기 하나가 100$다. 사진=강이석

     

    미국 노부부, 젊은 프랑스 커플, 이탈리아 남자들, 중국인 가족 관광객들은 졸지에 그 망가진 샤워기 하나 때문에 하롱베이 바다 한가운데 옴짝달싹 못 하고 갇히게 되었다. 2박 3일 투어 가격이 100$가 안 되었는데, 저 낡아빠진 샤워기 하나가 100$란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고, 미국 할아버지는 저 선장이 사기꾼이라면서 얼른 배를 출발하라고 호통을 쳤다. 억울했지만 100$를 저 해적선 선장에게 지불했다. 그제야 배는 출발했다.

    하노이 공항으로 곧장 갔다. 마무리가 개운치 않아서 찝찝했다. 무엇보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비난을 받고, 그걸 제대로 아니라고 표현 못 하고 제대로 화도 못 냈다는 것이 언짢았다. 맥주나 한잔해야겠다며 공항 내부에 있는 편의점에 줄을 섰다. 맥주를 샀고 공항 직원은 ‘15만 동’이라고 이야기했다. 맥주 한 캔을 바로 비웠고, 다시 맥주 한 잔을 더 사러 갔다.

     

    베트남 하롱베이. 사진=강이석
    베트남 하롱베이. 사진=강이석

    그런데 분명 똑같은 맥주를 샀는데 조금 전보다 싸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카운터에 가서 “왜 아까는 15만 동을 받더니 지금은 5만 동을 받냐?”라고 이야기를 했다. 예상 못 한 질문에 당황하는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맥주를 사기 전 직원들이 나를 보며 웃었던 이유가 사실은 나에게 사기를 치려고 했던 것을 깨달았다. 안 그래도 ‘하롱베이 해적’에게 사기를 당했는데도 아무런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 쌓여있었는데, 이렇게 또 사기를 당하니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매니저를 불러 맥주 팔았던 여자 직원을 불러오라고 했고, 직접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그 여자 직원은 퉁명스러운 얼굴로 미안하다는 말은 전혀 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쏘아봤다. 나는 “단지 10만동 때문에 너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 나라를 대표하는 공항에서 사기를 쳤고, 그게 걸렸는데도 사과를 요구하는 나의 말도 무시했다. 나는 네가 사과를 하기를 원한다.” 나는 강하게 응시하며 카운터에 계속 서 있었고, 뒤에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몇 번의 매니저의 설득 끝에 결국 그 직원은 나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했고, 10만 동을 돌려받았다. 나는 그제야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켠 후,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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