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월26일의 댓글왕 최*길
실시간 순위 (최근6시간)
[낭만여행기] 오슬로의 청소부와 신자유주의
  • 스크롤 이동 상태바

    [낭만여행기] 오슬로의 청소부와 신자유주의

    • 입력 2024.01.19 00:00
    • 수정 2024.01.19 23:57
    • 기자명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오슬로 숙소는 여행객들 간의 교류가 활발하다는 호스텔로 정했다. 혼자 여행을 할 때 개인실이 있는 조용한 숙소와 다른 게스트와 교류가 활발한 숙소를 번갈아 가면서 지낸다. 너무 혼자만 있으면 고독해질 수 있고, 또 너무 함께 있으면 관계를 맺는 과정 자체에 피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전에 묵었던 개인실과는 다르게 오슬로 숙소에서는 신나는 파티 분위기를 느낄 작정이었다.

    그런데 호스텔에 막상 도착하니 분위기가 너무 차분하다. 그렇다고 그냥 포기할 수는 없지. 나는 바에서 혼자 칵테일을 마시고 있는 중국계로 보이는 여행자에게 말을 걸어봤다. “니하오?” 나의 어색한 중국어에 두 명의 여자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우연히도 둘 다 대만에서 온 여행자였다. 그중 한 명은 UCLA를 졸업한 연구원 캐롤라인, 다른 한 명은 오슬로 대학에서 첼로를 공부하고 있는 젱이다.

    젱은 오슬로에서 만난 중국인 유학생이 있는데, 그가 오슬로를 안내하게 해 줄 수 있다면서 우리를 이끌었다. 캐롤라인은 자기가 자주 가는 저렴한 피자집이 숙소 근처에 있으니까 피자를 테이크아웃해서 가져가자고 한다. 나는 배낭에서 소주를 꺼냈고, 캐롤라인은 맥주를 몇 병을 준비했다. 큼지막한 피자와 감자튀김을 시켜서 중국인 유학생 라우가 안내한 잔디밭에 모여 앉았다. 그렇게 넷이서 잔디밭에서 소소한 파티를 하고 있는데, 공원을 청소하는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소리친다. 여기서는 술이나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며 바로 앞이 자기 집이라면서 그 앞에 앉아서 먹으라고 한다. 곧 일을 마치고 자신도 우리의 조촐한 파티에 합류한다면서. 이렇게 얼떨결에 오슬로 청소부 아저씨 집 앞 바닥에서 파티를 벌였다.

    우리는 그 자리에 앉아서 밤늦도록 이야기했다. 아저씨는 특히 한국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 삼성이라는 세계적인 기업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고, 어떻게 한국이 이렇게 급속하게 발전했는지도 듣고 싶어 했다. 캐롤라인은 “한국이 빠른 속도로 발전했고, 경제적으로 높은 성장을 거두었지만, 최근 빈부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라고 말하며 이건 세계적인 추세라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화두를 제시했다. 나는 이어서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길에서 만나는 청소하시는 분의 표정이 밝으면 밝을수록 그 사회가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해 왔다”라고 말했다.

     

    오슬로 청소부 아저씨, 중국인 유학생 젱과 함께 한 기념사진. 사진=강이석
    오슬로 청소부 아저씨, 중국인 유학생 젱과 함께 한 기념사진. 사진=강이석

    그러자 중국 출신 라우가 여기 노르웨이 청소부 아저씨도 있으니까 아저씨의 월급이 어느 정도 되는지 대뜸 물어봤다. 아저씨는 노르웨이는 힘든 일일수록 돈을 많이 받는 편이고, 자기도 노르웨이의 평균 이상은 받는단다. 라우는 곧바로 노르웨이의 평균 GDP를 찾아보면서 “와~ 연봉이 10만 달러가 넘는 거 아니야?”라면서 자기도 노르웨이에서 청소하고 싶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 외에도 ‘한국의 배달문화는 왜 그렇게 발달되었는지?’, ‘한국의 kpop은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은지?’와 같은 또 다른 한국에 대한 화두도 있었고, ‘왜 중국은 축구를 못하는가?’와 같은 꽤 민감한 주제도 제기되었다. 그렇게 노르웨이 오슬로의 청소부 아저씨 집 앞 바닥에서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몇 시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국경 사이에서 발생한 테러로 오슬로에 있는 거의 모든 곳이 문을 닫았지만, 지금 옆에 있는 오슬로에서 만난 이 사람들 덕분에 나의 여행은 이렇게 행복하다.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9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