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여행기] 베르겐 산 정상에서 소주잔 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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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여행기] 베르겐 산 정상에서 소주잔 돌리기

    • 입력 2023.10.20 00:00
    • 수정 2023.10.25 15:46
    • 기자명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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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즉흥적인 스칸디나비아 여행이었기 때문에 준비가 부족했다. 그런데도 이곳에 다시 올 기회는 많지 않을 것 같아 여행비용은 최대한 아끼지 않기로 했다. 가장 큰 비용을 투자한 곳은 덴마크에서 노르웨이 베르겐으로 가는 크루즈 여행이다. 퀸사이즈 침대와 럭셔리한 욕실이 있는 방은 가격이 어마어마했지만, 여행은 평소 하지 못했던 일을 하면서 추억을 남기는 것이기 때문에 눈 딱 감고 결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노르웨이에 도착한 지 단 하루 만에 알 수 있었다. 북유럽 물가는 상상보다 훨씬 비쌌다. 길거리에서 파는 핫도그가 16000원, 맥도날드 빅맥 세트는 2만원, 그리고 12인실 호스텔이 20만원을 훌쩍 넘었다. 이렇게 저렴한 여행을 하는데도 이 정도 비용이 드니까 ‘에라 모르겠다! 그냥 하고 싶은 것 다 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는 겨울왕국의 아렌델의 모티브가 된 베르겐으로 향하는 페리에 있다.

    아침에 갑판에 올라 힘차게 항해하는 크루즈 위로 펄럭이는 노르웨이 국기를 보니 피오르의 나라에 온 것이 실감 났다. 베르겐 항구에 도착해서 걷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나에게 말을 건다. “혹시 베르겐역이 어딘지 알아?” 길을 물어본 여자는 자기를 노르웨이 트롬쇠에서 온 안드레아라고 소개하며 “오늘 밤에 베르겐 산 정상에서 친구들과 바비큐 파티를 할 예정이니까 너도 같이 가자.”라는 제안을 했다.

    나는 처음 만난 그녀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안드레아 남매의 친구들이 기다리는 베르겐 산 정상으로 향했다. 산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었고 그곳에서 베르겐 구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북위 50도가 훌쩍 넘는 베르겐의 오후 7시, 해가 아직 머리 위에 있다.

     

    베르겐 산 정상에서 만난 스칸디나비아 친구들. 사진=강이석
    베르겐 산 정상에서 만난 스칸디나비아 친구들. 사진=강이석

    10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캠핑장 작은 호수에는 이미 여럿이 잔디밭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바로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 맥주만 잔뜩 쌓아 놓고 마시는 바이킹의 후예들은 한국의 술 소주를 너무도 신기해했다. 그들에게 소주 마시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일명 ‘소주잔 돌리기’. 이렇게 소주 하나로 스칸디나비아 친구들과 친해졌고 베르겐 산 정상에서 그들과 신나는 파티를 즐겼다.

    소주를 처음 마셔보고 사랑에 빠진 대머리 데이비드에게 소맥도 알려 주었다. 소맥 몇 잔에 한껏 흥이 오른 데이비드는 때마침 나오는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목청껏 따라 부르고 엉덩이까지 흔들며 신나게 춤을 추었다. 덴마크 출신 크리스티안은 자신을 Army(BTS 팬클럽)라고 밝히며 한국 문화를 무척 좋아한다며 언젠가 꼭 한국에 가서 BTS를 직접 보는 게 꿈이라고 한다.

     

    베르겐 산 정상에서 바라본 노을. 사진=강이석
    베르겐 산 정상에서 바라본 노을. 사진=강이석

    저녁 11시가 넘어가는데 아직 해는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베르겐의 구시가와 이를 감싸고 있는 북해는 자정이 다 되어서야 조금씩 노을로 물들고 있었다. 마지막 케이블카가 도착하기 전까지 북극권의 은은한 야경을 즐기며 친구들과 한 명씩 이야기를 나눴다. 로맨틱한 노을과 알코올에 적당히 취한 우리는 그렇게 조금 더 가까워졌다. 베르겐 시내로 내려와서 구시가에 있는 시끌벅적한 펍으로 향했다. 바이킹 후예들의 술잔은 해가 질 때까지 멈추지 않았고, 결국 나는 해가 다시 막 뜨고 있는 새벽 다섯 시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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