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경의 동의보감] 흙탕물로 사람을 살리다
  • 스크롤 이동 상태바

    [김도경의 동의보감] 흙탕물로 사람을 살리다

    동의보감 속 약으로 사용하는 물 33가지
    황토를 물에 섞은 지장수, 피부질환에 도움
    끓인 물에 찬물 섞은 생숙탕은 급체 시 효과

    • 입력 2023.06.13 00:00
    • 수정 2023.06.13 08:24
    • 기자명 김도경 한의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도경 한의사
    김도경 한의사

    물은 일상적으로 쓰는 것이라고 하여 사람들이 흔히 홀시하는데 그것은 ‘하늘이 사람을 낳아 물과 곡식으로 기름’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동의보감 탕액편 수부(水部)에 나오는 첫 구절로, 늘 마시고 사용하는 물이지만 그 물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말 중에도 “나를 아주 물로 아는구나” “돈을 물 쓰듯이 한다” 등의 표현도 아마도 마찬가지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동의보감에는 약으로 사용하는 물의 종류가 매우 많은데 정화수, 국화수, 춘우수, 옥정수, 급류수, 납설수, 추로수, 벽해수, 온천수, 지장수, 생숙탕 등등 33가지가 있으며 갖가지 물의 효능과 쓰임을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중에 지장수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가 있어 소개해 보겠습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해 유월, 한 무리의 부녀자들이 ‘단속사’라는 절의 계곡으로 피서를 하러 갔습니다. 한참 물놀이를 즐기다가 점심때가 되어 밥을 지었고 누군가가 따온 버섯으로 국을 끓여 함께 맛있게 먹었는데, 식사를 마치자마자 웃음보가 터지기 시작해 아무리 웃음을 멈추려 해도 도무지 멎지를 않았습니다. 우연히 이들의 모습을 발견한 단속사의 노스님은 단풍나무 고목에서 돋아난 ‘소심(웃음 버섯)’이라는 독버섯을 먹은 것이 분명하다고 하고는 어떤 약을 달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약을 먹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부녀자들의 웃음이 딱 멈추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단번에 웃음을 멈추게 한 신통한 약이 무엇인지 물어보니 그 약은 산길의 흙탕물을 떠다가 달인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독버섯 중독에서 부녀자들을 구해놓고 노스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산에서 병을 얻었으니 그 병을 낫게 하는 약도 반드시 이 산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 자연의 섭리입니다”

    흙탕물은 사실 지장수(地漿水)라 부르는데 황토를 물에 넣고 휘저어 가라앉힌 다음 윗물을 받아쓰는 것입니다. 동의보감에 지장수는 단풍나무 버섯을 먹으면 웃다가 죽을 수 있는데 오직 지장수를 마셔야 살릴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웃다가 죽는다는 것은 중독으로 인한 환각작용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또 지장수는 약을 오래 복용하여 발생하는 약 부작용을 예방할 수도 있고 상한 음식을 먹고 탈이 난 경우나 건선·아토피 같은 피부질환에도 도움이 됩니다.

    지장수 외에도 약으로 쓸 수 있는 물이 있는데 뜨거운 물과 찬물을 반반 섞은 생숙탕입니다. 반드시 끓인 물에 찬물을 타서 사용하고 여기에 소금을 조금 넣어서 마시면 됩니다. 급체로 인해 명치 밑에 비트는 듯한 통증이나 위경련을 한의학에서는 ‘건곽란’이라 하는데 건곽란의 치료법이 바로 생숙탕을 마시고 토하게 하여 막힌 기를 소통시키는 것입니다. 체했을 때 흔히 손가락을 따서 소통시키는 경우와 같은 원리이지만 생숙탕을 마시고 토하게 하면 효과가 더 좋고 빠릅니다.

    이와 같이 물도 쓰임에 따라 좋은 치료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물을 잘못 먹으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요즘 운동이나 야외 활동 시 대부분 시원한 생수 한 병은 챙겨 다니면서 마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되도록 물은 끓여 드시기를 권합니다. 특히 소화 기능이 약한 분, 손발이 찬 여성들, 잦은 설사, 뱃속에서 꾸룩꾸룩 물소리 나는 분들은 생수를 드시면 안 됩니다. 한의학에서는 ‘십병구담’이라 하여 담음이 만병의 원인이 된다고 하는데 담음이 생기는 원인 중에 하나가 바로 생냉물(회, 생과일, 생야채, 생수, 찬 음료수)입니다. 차고 익히지 않은 음식은 위장기능을 약화시키고 인체의 면역을 떨어뜨리고 순환장애를 일으켜 만병의 원인이 되는 것인데 생수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또한 담음이 몸에 쌓이면 눈 밑이 어둡고 검은빛을 띄게 되는데 이런 사람은 절대 생수를 드시면 안 됩니다.

    ■ 김도경 필진 소개
    - 희망동의보감 한의원 원장
    -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