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농사 짓던 땅에 사회적 농장이 ‘웬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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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십년 농사 짓던 땅에 사회적 농장이 ‘웬 말’

    춘천시, 신북읍 화전민 땅에 사회적 농장 추진
    예산 약 9700만원 투입됐는데 소득은 250만원
    농민들 "실효성 떨어지는 보여주기식 사업" 분통

    • 입력 2021.12.07 00:01
    • 수정 2021.12.09 01:20
    • 기자명 박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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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농사짓던 땅인데··· 실효성도 없는 지자체 사업 때문에 농사를 못 짓게 됐습니다.”

    춘천시 신북읍 발산리에 사는 김인숙(74)씨는 50여년 전 큰 홍수로 집을 잃고 시유지로 정착한 농민이다. 고사리와 대파, 배추 등 각종 농산물을 키우던 김씨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내년 영농계획을 구상했지만, 이제는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됐다는 걱정에 잠을 못 이루고 있다.

    김씨가 사는 마을은 1966년 화전민 정착 정책에 따라 화전민과 수해 이주민이 정착한 곳으로 알려진 시유지다. 김씨를 비롯한 이곳의 농민들은 50여년간 지자체에 대부료를 내며 토지 임대계약을 갱신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왔다.

     

    1966년 신북읍 발산리 일원에 세워진 화전민정착사업장 준공식 기념식수. (사진=박수현 기자)
    1966년 신북읍 발산리 일원에 세워진 화전민정착사업장 준공식 기념식수. (사진=박수현 기자)

    하지만 춘천시가 김씨와 임대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하고, 사회적 농장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됐다. 김씨는 “50년 이상 농사짓던 땅을 춘천시가 하루아침에 도로 가져간다고 하니 막막해졌다”며 “여태까지 돈을 안 내고 살아왔던 것도 아닌데 지자체에서 이래도 되는 건가 싶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수십년 임대계약 한 농민 “실효성 없는 사업··· 혈세낭비”

    이 마을에는 김씨처럼 춘천시에 매년 대부료를 내고 농사를 짓는 집이 7개 가구에 이른다. 춘천시는 이들의 농지를 하나둘씩 사회적 농장으로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사회적 농장은 농업 활동을 통해 고령자·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고용 창출·교육·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수확한 작물도 취약계층 지원 용도로 쓰인다.

    춘천시는 이미 2개 필지를 사회적 농장으로 조성해 1곳에는 콩, 1곳에는 해바라기 농사를 짓게 했다. 약 97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한 이 사업은 올해 5월부터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됐고, 지난달 콩 420㎏과 해바라기씨유 28ℓ를 수확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250만원 정도다.

     

    사회적 농장으로 조성된 농지에 기간제 근로자를 위한 농막이 지어져 있다. (사진=박수현 기자)
    사회적 농장으로 조성된 농지에 기간제 근로자를 위한 농막이 지어져 있다. (사진=박수현 기자)

    농민들은 수십년 농사지어온 땅을 실효성도 없는 보여주기식 사업 때문에 땅을 잃게 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발산리 주민 A(65)씨는 “수천만원의 예산을 들여가며 이룬 성과가 고작 2명을 고용하고, 250만원 수준의 농작물을 수확한 것”이라며 “농민 입장에서 분통이 터지는 일이고, 춘천시민으로서도 혈세 낭비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춘천시 “공익적 목적 강한 사업··· 소득 중요하지 않아”

    춘천시는 애초에 공익적 목적이 강한 사업인 데다가 임대계약이 끝난 토지를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춘천시 관계자는 “사업 시행으로 채용된 기간제 근로자의 급여와 그들이 사용할 농막과 저온저장고를 설치하는데 예산이 투입됐다”며 “애초에 이 사업은 수익 목적이 아닌 일자리 창출과 사회통합, 교육 등 공익적 가치에 중점을 둔 사업이기 때문에 소득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3년 단위로 주민들과 임대계약을 갱신해왔는데, 지난해 계약이 끝난 일부 농지를 사회적 농장으로 조성한 것”이라며 “재계약 문제로 반발하는 주민들이 생겨 기간을 1년으로 줄이고, 협의점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춘천시의 입장에 대해 “임대계약 기간을 3년에서 1년으로 줄이면 영농계획을 짤 수도 없다”고 반박했다.

    [박수현 기자 psh5578@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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