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세계 유일’ 전기 시장 독점⋯한전 ‘갑질 사태’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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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세계 유일’ 전기 시장 독점⋯한전 ‘갑질 사태’ 키웠다

    하. ‘슈퍼 갑’ 한전 갑질에 업계 증언 잇따라
    '날짜 쪼개기' ‘담당자 교체’ 등 갖은 방법
    5년간 한전 임직원은 2조원 대 성과급 파티
    “OECD 유일 독점 시장에 경쟁 도입해야“

    • 입력 2023.11.23 00:02
    • 수정 2024.01.02 09:25
    • 기자명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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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력(이하 한전)이 협력업체에 공사를 발주하고도 공사비 지급을 지연하는 등 갑질 횡포를 일삼는 가운데<본지 2023년 11월 16일자 보도>, 준공 처리를 지연시키는 방식과 공사 과정에서의 ‘갑질’ 등 업계의 증언이 이어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한전이 OECD 국가 중 유일한 전기 시장 독점 발주처라는 위치를 이용해 갑질하고 있다고 공통으로 언급했다. 전기공사 협력업체들은 잘못된 상황임을 알면서도 다음 수주에 불리해질까 두려워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30년가량 업계에 몸담은 한 전기 업체 대표 A씨는 “한전이 방만 경영으로 인한 만성 적자를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협력업체에게 갑질하면서 손해를 떠넘긴다는 게 진짜 문제”라며 “발주처가 한전 한곳 뿐이라는 기형적 구조를 타파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같은 문제가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이 독점시장이라는 지위를 악용해 협력업체를 상대로 갑질 횡포를 일삼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한전이 독점시장이라는 지위를 악용해 협력업체를 상대로 갑질 횡포를 일삼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날짜 쪼개기·담당자 교체⋯갑질 방법도 가지가지

    A씨는 “갑질을 당하면서도 서로(업체)가 경쟁 관계에 있다 보니 의견을 종합할 수 없다”며 “예를 들어 여러 업체가 공사비를 못 받아 함께 ‘한전에 항의해 볼까’ 하더라도 다음날 한전에서 공사 발주 떨어지면 바로 경쟁 관계로 돌아선다”고 했다. 공사 준공 처리를 늦추는 방법도 다양한데, 대표적인 방법은 ‘날짜 쪼개기’로 준공을 미루는 방식이다. A씨는 “한전 발주 공사는 정해진 날짜 안에 공사를 끝내야 하는 ‘절대 공기’가 아니어서 발주처가 공사를 중단해도 공사비가 늘어나지 않는다”며 “이를 이용해 점검 등 핑계를 만들어 공사 날짜를 쪼개면서 기간을 연장해 준공 처리를 미루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의 또 다른 갑질 방법으로는 잦은 인사이동을 통한 공사 담당자 교체가 있다. 공사 도중 현장 담당자를 교체한 후, 후임으로 온 담당자가 공사 현황 등을 파악하는 인수인계를 핑계로 공사를 중단시키는 것이다. A씨는 “애초에 한전 직원들이 현장 일을 잘 모른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공사 담당자가 바뀌니 현장 설명해 줘야 하고 다시 안전 점검하고 이러다 보니 공사 진행 자체가 늦춰지는 경우도 많다”며 “평균적으로 1년도 안 돼 담당자가 바뀌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엄인수 전국건설노동조합 강원전기지부 지부장도 협력 업체에 대한 한전의 갑질을 설명했다. “예를 들어 100m 길이 전주 설치 공사를 한다고 했을 때, 90m 치 자재를 준 뒤 나머지 10m는 자재가 없다고 공사를 멈춰버린다. 상식적으로 예산이 부족하거나 자재 수급이 어려운 상황이면 공사 발주를 하지 않아야 하는데 일단 급한 불을 꺼야 하니 발주해 놓고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면 중단시켜 버린다.” 그는 이어 “100m 작업 끝나지 않았으니 공사비 안 주는 게 맞다 할 수 있지만, 한전도 전기공사만 몇십년을 해왔는데 공사 가능 여부를 모를 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밖에 실적 쌓기용 암행 점검이 팽배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A씨는 “몰래카메라까지 동원해 지적 사항을 찾고, 벌점 준다고 압박한다”며 “문제는 한전 관리자마다 기준이 달라 비슷한 상황에서도 어느 날은 벌점 받고 어느 날은 문제없이 지나간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업체에 있어 벌점은 다음 공사 수주에 영향을 끼치는 만큼 매우 민감한 사안인데 한전 직원들의 갑질에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세계 주요 선진국의 전력사업 구조. (그래픽=박지영 기자)
    세계 주요 선진국의 전력사업 구조. OECD 37개국 중 송배전망과 전력 소매시장 모두 한 기업이 독점한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방만 경영·적자 떠넘기기 해결책은 “경쟁체제 도입”

    현장 관계자들은 지난해 1월 27일 제정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이후 한전이 트집 잡을 명분이 많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 초 강원 모 지역에서 교통사고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후 3일간 강원지역 전체 작업이 중단된 것이 그 예다. 업계 관계자는 “사고가 난 현장의 중단은 옳다고 보지만, 사고와 관련 없는 지역까지 공사 중단하는 건 도가 지나치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몇 해 전엔 전깃줄 위에 올라가 작업하는 승주 작업 도중 근로자 한 명이 감전돼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승주 작업 자체가 금지되며 전국 약 3000명의 승주 작업자가 일거리를 잃었다”며  “커브길에서 교통사고 났다고 길을 폐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최근 발전 단가의 인상 등으로 한전의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서도 한전의 방만 경영은 오히려 심해지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한전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2021년 한전과 11개 자회사의 임직원 성과급은 2조3868억원에 달한다. 올 3분기 기준 한전의 부채 총계가 204조 1000억원임에도 성과급 파티가 이어졌다. 그 결과 한전은 지난 6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2년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미흡(D) 등급을 받았다. 경영실적 평가는 영업이익과 부채비율, 사업비 집행률, 일반 관리비 관리 등 재무성과 지표를 반영해 등급을 산정하는데, D 등급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재무성과가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와 업계는 한전이 전기 시장에서 독점시장을 형성하는 현재 상황이 지속되면 한전의 비효율과 갑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한국경제인협회(당시 전경련)가 주요국의 전력산업 구조와 현황에 대해 비교 분석한 지난해 자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송배전망과 전력 소매시장 모두 한 기업이 독점한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일본의 경우 2000년부터 전력산업 구조 개편에 나섰고, 최근 10대 민영 독점회사의 송배전망을 분리독립시키면서 신규 소매사업자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김형건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전이 만성 적자에 시달린다 해도 독보적인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협력업체에게 공사 대금을 지불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갑질로 볼 수 있다”며 “결국 정부가 시장을 방관하는 점에서 책임이 크다. 민영화 등 전기시장의 구조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MS투데이는 앞으로도 한국전력의 중소 협력업체를 비롯한 상대적 약자들을 상대로 한 ‘갑질’과 방만 경영 실태에 대해 지속 취재하겠습니다. 관련 제보를 기다립니다. jypark@mstoday.co.kr

    [박준용·권소담 기자 jypark@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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