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는 죄가 없다
  • 스크롤 이동 상태바

    AI에게는 죄가 없다

    [칼럼] 한상혁 콘텐츠전략국장

    • 입력 2024.05.09 00:00
    • 기자명 한상혁 콘텐츠전략국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해 한국 프로야구 리그(KBO리그)에 일어난 변화는 전세계 스포츠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변화일지도 모른다. 바로 150년 야구 역사상(2군 경기 제외) ‘심판의 고유 권한’이었던 스트라이크 판정 권한이 기계에게 넘어갔다는 점이다. 

    기계 심판이라고 불리는 ABS(자동 투구판정 시스템)는 AI 기술과 컴퓨터 비전 기술을 활용해 스트라이크와 볼을 판정한다. 스트라이크 존은 평면이 아니라 6각형 홈플레이트 위로 만들어진 입체적인 공간이다. ABS는 카메라 3대를 이용해 투수가 던진 공의 궤적을 입체적으로 추적하고, 사전에 입력된 선수들의 신장을 고려해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한다.

    요즘 한창 주가가 높은 인공지능(AI) 기술도 도입됐다. 투수가 던진 공은 몇천 몇만 번을 던지더라도 모두 조금씩은 다른 궤적을 갖는다. 판정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투수가 던진 공의 데이터를 학습하기 위해 딥러닝 기술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런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축적해 정확도는 지속적으로 향상된다(강화 학습).

    KBO 리그의 스타 플레이어 중 한명이자 베테랑인 황재균(KT 위즈)은 28일 경기에서 ABS 볼판정에 거칠게 항의했다. 이로 인해 야구 역사상 ‘기계의 볼판정에 항의하다 퇴장당한 최초의 선수’로 기록됐다. 경기 중계 장면을 보면 황재균은 스윙 한번 하지 않고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했는데, 공 세개가 바깥쪽 높은 코스, 몸쪽, 몸쪽 낮은 코스로 들어왔다. 세 공 모두 프레이밍(포수가 스트라이크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공을 잡는 순간 미트를 움직이는 행위)을 하지 않았기에 육안으로 보면 공 세개가 모두 볼로 보인다. 특히 세번째 공은 바깥쪽 공을 예상하고 있던 포수가 포구를 실패할 정도로 투수가 잘못 던졌다. 그런데도 기계 심판이 스트라이크 콜을 하자 황재균은 분노해서 헬멧을 집어던졌다. 그는 경기 후 “원래 볼 판정에 좀처럼 항의하지 않는 편이지만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2024년부터 적용하는 ABS(자동 투구판정시스템)에 대한 설명 자료.(자료=KBO)
    2024년부터 적용하는 ABS(자동 투구판정시스템)에 대한 설명 자료.(자료=KBO)

    한국 최고의 투수라는 류현진(한화 이글스)도 ABS 존에 불만이 많다. 다른 경기에서 스트라이크 콜을 받은 공과 똑같은 코스로 던졌는데 볼 판정을 받았다는 취지로 기자들 앞에서 불만을 대놓고 토로했다. 그러자 KBO는 이례적으로 류현진이 언급한 투구의 ABS 자료를 공개하며 반박에 나서기도 했다.

    더 심각했던 문제는 심판들의 ‘판정 실수 은폐 모의 의혹’이다. ABS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렸으나 심판이 이를 듣지 못하고, 뒤늦게 ABS 판정을 확인한 공격팀이 항의하자 심판들이 ‘볼로 들었다고 하자’고 모의한 정황이 발견돼 해당 심판 팀장이 프로야구에서 퇴출됐다. 

    여러 불만과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야구 팬들은 거의 예외 없이 ABS 도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더는 볼 판정을 가지고 감정 소모를 할 필요가 없어진 점이 가장 크다. 선수와 팬들이 사람 심판이 내리는 판정에 불만을 갖는 이유는 ‘저 심판이 우리 팀에게만 불리한 판정을 내리는 것 아닐까’ 하는 의심에서 온다. 기계가 내린 판정에 불만이 생길 수 있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누구에게나 공정한 판정’이라는 점을 의심할 수 없으니 억울한 마음은 크게 줄어든다. 

    스트라이크 존은 입체적이고, 타자의 신장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프로야구 경기에서 보통 한 팀당 150~200개 정도 투구가 이뤄진다. 경기 중 심판의 판정 실패는 반드시 나온다. 인간인 투수나 심판이 아무리 뛰어나도 기계보다 정확할 수는 없다. ABS 도입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그치지 않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본과 미국 프로야구에서 결국엔 따라갈 수 밖에 없는 흐름이라고 본다.

    야구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AI 기술 도입이 산업 전 분야에서, 이를 넘어 전세계 모든 곳에서 세상을 빠르게 바꿔가고 있다. 여러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기계의 잘못이기 보다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문제다.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다. 결국 누가 더 빨리 적응하느냐, 어떻게하면 ‘잘’ 이용할 수 있을까의 문제일 뿐이다.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36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