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섬기는 어느 시인의 외침 “꿩 먹고 알 먹으면 멸종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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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을 섬기는 어느 시인의 외침 “꿩 먹고 알 먹으면 멸종이지”

    춘천 생태환경 시인 최계선 여섯 번째 시집
    자연의 순례자가 되는 감각의 실존 제안해
    시인의 철학과 탁월한 표현 감각, 유머 눈길

    • 입력 2023.06.14 00:00
    • 수정 2023.06.14 08:26
    • 기자명 한승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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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생태환경 시인 최계선 여섯 번째 시집 ‘롱고롱고 숲’ 
    춘천 생태환경 시인 최계선 여섯 번째 시집 ‘롱고롱고 숲’ 

    자연사박물관에/자연사한 동물은 없다 (⋯) 목에 가랑가랑 달라붙은 숨/목숨은 방부처리 되었고/느닷없이 죽은 모피를 걸친 인형들은/박물관으로 호송되었다 - 최계선의 시 「돌연사박물관」 중

    춘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생태환경 시인 최계선이 최근 여섯 번째 시집 ‘롱고롱고 숲(사진)’을 펴냈다. 자연사한 동물은 자연에 있어 사실 자연사박물관은 돌연사박물관이라거나 꿩 먹고 알 먹으면 멸종이라는 등 역설적인 유머가 눈길을 끈다. 시인의 시 세계를 고스란히 담은 이번 시집에서 자연에 대한 그만의 철학과 깊은 통찰을 확인할 수 있다.

    책 제목에 등장하는 ‘롱고롱고’는 18세기 이스터섬에서 사용했다고 추정되는 문자다. 이스터섬의 초대 왕 호투 마투아가 ‘우리들의 말은 잊히고 아무도 읽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남겼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자연물을 그린듯한 이 문자는 현재까지도 해독되지 않고 있다.

    시인은 한 권의 시집에 ‘롱고롱고 숲’을 구현하고 자신만의 언어가 담긴 세계로 독자를 초대하는 듯하다. 인간이 위기에 빠진 원인이 야생의 기억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라고 여기며 긴 시간 스스로 해독해온 자연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책은 ‘숲의 연대기’ ‘열매행성’ ‘달마를 마중하다’ 등 3부로 구성됐다. ‘숲의 연대기’는 인간이 숲을 파괴하는 현실에서 자연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간절한 마음을 이야기한다. ‘열매행성’에서는 멸종을 향해 치닫고 있는 오늘날의 징후들을 보여주는 시 30편이 담겼다. ‘달마를 마중하다’에서는 앞선 파행들이 결국 우리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고 공존과 공생의 시간을 함께 영위하자고 제안한다. 

    모두 77편의 시가 담긴 ‘롱고롱고 숲’은 이처럼 지구의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에 생태학적 상상력을 접목하고 있다. 시집은 야생의 풍경을 다각적으로 살펴보며 풍경이 남긴 기억들을 통해 야생의 감각을 회복하길 기대한다. 창이있는작가의집 刊. 174쪽. 1만2000원. 

    [한승미 기자 singme@mstoday.co.kr]

    [확인=윤수용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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