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분간 기계랑 말싸움만" 더 불편해진 은행 챗봇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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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분간 기계랑 말싸움만" 더 불편해진 은행 챗봇 상담

    은행 인공지능 챗봇 상담에 고객 불만
    음성 인식 못 하거나 시간 더 소요돼
    상담원 연결까지 대기 포함 15분 걸려
    앱 실행한다며 먼저 전화 끊는 경우도

    • 입력 2023.03.03 00:01
    • 수정 2023.03.05 00:28
    • 기자명 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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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담원 목소리 듣기까지 걸린 시간 15분 35초.”

    춘천 후평동에 사는 정일훈(26)씨는 상담을 위해 은행 고객센터에 전화했다가 상담원의 목소리도 듣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원하는 업무를 말해달라”는 인공지능 챗봇(채팅 로봇)과 통화하다 시간이 지체됐기 때문이다. 정씨는 “하염없이 휴대전화만 붙잡고 있다가 용건을 해결하지도 못했다”며 “말도 잘 못 알아듣는 챗봇 때문에 시간 낭비만 했다”고 말했다.

    은행권이 고객 편의를 위해 도입한 챗봇 기능이 오히려 업무 처리를 번거롭게 만들어 불편을 주는 것으로 드러났다.

    시중은행들은 최근 몇 년간 전화 상담 고객 대상으로 챗봇 기능을 도입했다. 상담원 연결에 앞서 수백 가지 시나리오가 미리 입력된 음성 인식 인공지능 시스템이 먼저 답변하는 방식이다. 현재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모두 이 기능을 사용한다.

    하지만 기술 수준이 낮고 절차가 복잡하다는 불만이 나온다. 챗봇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거나 구체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절차만 늘어나 시간 낭비만 유도한다는 주장이다.
     

    2일 오전 본지 취재진이 한 시중은행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상담원과 통화하기까지 15분 35초가 소요됐다. (사진=최민준 기자)
    2일 오전 본지 취재진이 한 시중은행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상담원과 통화하기까지 15분 35초가 소요됐다. (사진=최민준 기자)

    춘천 직장인 장모(28)씨는 “직장에서 잠시 시간을 내 전화를 걸었지만 10분이 넘도록 상담원과 통화할 수 없었다”며 “대기 시간도 너무 오래 걸려 짜증이 났다”고 말했다.

    본지 취재진이 2일 오전 한 시중은행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자 원하는 업무에 해당하는 번호를 누르라는 음성이 나왔다. ‘상담원 연결’을 선택하자 또다시 “원하는 업무를 말씀하세요”라며 챗봇이 등장했다. “대출 한도 조회”라고 말하자 “잘 알아듣지 못했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 자 한 자 강조해 재차 한도 조회를 요청하자 마침내 상담원을 연결해주겠다는 멘트가 나왔다. 앞서 상담원 연결을 요구했음에도 챗봇이 등장했고 결국 별다른 조치 없이 상담 대기로 넘어간 것이다. 실제 상담원의 목소리를 듣기까지 걸린 시간은 대기 시간 포함 15분 35초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은행 전화 상담원 연결 대기 시간은 평균 36.9초로 2020년(21.4초)보다 15.5초 길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 취재 당시 챗봇 상담만 1분 넘게 소요됐다. 여기에 상담 대기 시간까지 겹치며 신속한 업무 처리를 원하는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챗봇이 상담사 연결마저도 해주지 않고 은행 앱을 실행하겠다며 먼저 전화를 끊어버리는 경우도 발생해 노년층 등 비대면 은행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의 불편은 더 커진다. 은행의 상담 업무는 편리해졌어도 고객 입장에선 업무 처리가 더 복잡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춘천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비대면 서비스가 늘어나는 와중에 상담원을 늘리기는 어렵다”며 “고객이 한꺼번에 몰리는 시간엔 대기가 길어질 수밖에 없으니 양해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최민준 기자 chmj0317@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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