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익의 교육만평] 외로움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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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익의 교육만평] 외로움의 시대

    • 입력 2022.10.18 00:00
    • 수정 2022.10.18 15:31
    • 기자명 책읽는춘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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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익 책읽는춘천 대표
    최광익 책읽는춘천 대표

    로버트 퍼트넘 하버드대 교수의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은 혼자서 볼링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현상을 통해 미국 사회의 공동체 붕괴와 고립된 개인의 모습을 보여준 좋은 책이다. 그는 25년 동안 50만건의 인터뷰 자료를 바탕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이웃과의 교류가 줄고 친구와 덜 만나며 심지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줄고 있는 미국인의 삶을 우려했다. 그도 예상했듯이, 이러한 흐름의 끝은 외로움이 만연된 사회다.

    외로움은 문자 그대로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이다. 외로움의 특징은 상실감과 고립감이다. 상실감은 공동체의 상실 즉, 사회에 자기 자리가 없다는 감정이다. 고립감은 일터, 사회, 각종 모임, 정부로부터 소외되어 외톨이가 된 느낌이다. 외로움은 수면 장애, 정신적 괴로움, 고통을 수반하며, 우울증, 뇌졸중, 치매, 고혈압 등 다양한 질환과 관련될 뿐 아니라 공감 능력을 감소시키고 공격성을 증가시킨다고 한다. 외로움이 종종 고독사나 자살과 같은 사회 문제로 연결되면서, 이제 세계는 외로움을 개인의 감정이 아닌 사회적 질병으로 보기 시작했다.

    외로움은 기본적으로 만남이나 상호작용의 부재로 시작된다. 그동안 인간이 만든 만남과 상호작용을 막는 방법과 제도는 다양하다. 울타리, 성 주변의 해자(垓子), 고대 도시의 방벽은 낯선 사람이나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떤 일방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다. ‘캠던 벤치(Camden Bench·벤치에 등이나 팔걸이를 없애고 표면에 각을 주어 사람들이 오래 머무를 수 없도록 한 벤치)로 대표되는 최근의 ‘적대적 건축물(Hostile Architecture)’ 역시 사람 간의 만남을 막기는 마찬가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미국의 짐 크로법(Jim Crow Laws·공공장소에서 백인과 흑인의 분리와 차별을 규정한 법), 호주의 백호주의(White Australia Policy)와 같은 국가 수준의 법이나 정책에서 사립 학교, 사유지, 전용 리무진, 일등석, 전용구역, VIP룸, 놀이공원의 ‘프리패스’ 식당까지 배제의 제도 역시 길고도 집요하다. 

    만남과 상호작용을 방해하는 원인으로 디지털 기기 과다 사용도 빼놓을 수 없다. 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하루에 휴대폰을 확인하는 평균 횟수는 221번이라고 한다. 시간으로 보면 매일 평균 3시간 15분에 달하고 1년에 거의 1200시간에 달한다. 무인 상점, 요가·골프·피트니스 유튜버, 로봇 종업원, 가상 비서, AI 의사가 증가하는 경제 현실도 사람 간의 접촉을 막는다. 코로나로 인한 봉쇄 조치, 자가 격리,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고립은 말할 필요도 없다.

    외로움의 시대를 맞아 뜨고 있는 새로운 경제 영역도 있다. 소위 ‘외로움 경제(Loneliness Economy)’는 배달 앱에서 친구를 빌려주거나 돈을 받고 포옹하는 서비스까지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미국에서 뜨고 있는 ‘렌트어프렌드(Rent-a-Friend)’라는 앱은 시간당 40달러에 식사, 술자리, 콘서트를 함께할 친구를 빌려준다. ‘커들러(Cuddler)’라는 새로운 직업은 시간당 80달러를 받고 전문적으로 안아주는 일을 한다. 물론 이것은 매춘이나 성 산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외로움 극복을 위해 다양한 처방들이 제시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영국은 2018년부터 외로움부(Ministry of Loneliness)를 신설해 외로움 문제를 국가적 과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또 온라인 쇼핑으로의 급격한 이동을 막고 사람들이 모이는 도심 상점을 살리기 위해 영업세를 감면하고 있다. 스페인 바로셀로나 시정부는 도시 내 일부 지역을 차량 통행 금지 구역으로 지정하고, 이 구역에 놀이터, 공원, 노천극장 등 만남이 이뤄지는 공간을 조성하는 ‘슈퍼 블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여러 기관에서 외로움 극복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경상북도는 올해 9월부터 ‘외로움 극복 및 예방지원을 위한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외로움을 극복하는 기본은 만남과 상호작용을 유도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먼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도서관, 박물관, 공원, 노천극장 등과 같은 공공시설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디지털 기기 사용을 줄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특히 아이들의 디지털 기기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스티브 잡스는 자녀의 디지털 기기 사용을 엄격히 제한했고, 빌 게이츠는 자녀가 14세가 되기 전까지 휴대폰을 주지 않았다. 실리콘밸리 부모들은 디지털 기기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지만 정작 그들의 자녀는 직접 경험을 중시하는 발도르프(Waldorf) 학교와 같은 스크린 없는 학교에 보낸다. 

    무엇보다도 이런저런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친구와 더 자주 만나야 한다. 온라인 쇼핑보다 지역 상점을 더 많이 이용하자. 봉사단체에 등록해 활동하는 것도 만남을 늘리는 좋은 방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외로움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친구’를 처방했다는 의사는 명의(名醫)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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