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죽어서도 혼자였다”⋯현실 된 ‘고독사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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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은 죽어서도 혼자였다”⋯현실 된 ‘고독사 사회’

    고독사 등 춘천 특수청소업체 ‘비움마스터’ 안현일 대표 인터뷰
    1인 가구·사회적 고립 증가에 젊은 층 고독사 늘어⋯통계는 無
    “고인의 삶을 향한 희망과 의지, 좌절과 체념의 공존 느껴”
    춘천시, 복지부 ‘고독사 예방 및 관리 시범사업’ 도시 선정

    • 입력 2022.08.10 00:01
    • 수정 2022.08.12 09:05
    • 기자명 진광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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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특수청소업체 '비움마스터'가 청소 의뢰를 받은 춘천의 한 고독사 현장 모습. 고독사한 고인들 중에는 저장강박증에 시달려 집안에 온갖 생필품과 음식들을 쌓아 놓는 경우가 많다. (사진=비움마스터 제공)
    최근 특수청소업체 '비움마스터'가 청소 의뢰를 받은 춘천의 한 고독사 현장 모습. 고독사한 고인들 중에는 저장강박증에 시달려 집안에 온갖 생필품과 음식들을 쌓아 놓는 경우가 많다. (사진=비움마스터 제공)

    한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역한 냄새가 방독면을 뚫고 들어왔다. 집안은 온갖 잡동사니와 쓰레기가 뒤섞여 난장판이었다. 싱크대는 먹다 남은 배달 음식과 술이 어지럽게 쌓여 벌레들의 아지트로 변했다. 집 주인이었던 사람의 건강을 말해주듯 약봉지도 발견됐다. 화장실 문을 열자 널브러진 소주병 옆 담요에는 혈흔이 퍼져 있었다. 그런 집을 비집고 들어간 한 남성은 흰 가운을 입은 채 묵념한 뒤 덤덤히 청소했다.

    고독사(孤獨死)는 물리적 고립 상태에서 홀로 살던 자가 사망한 후 시간이 지나 발견되는 경우를 말한다. 특수청소업체 ‘비움마스터’의 안현일(46) 대표는 이렇게 고독사한 후 부패한 상태로 발견된 시신을 거둘 사람 없는 유품과 함께 정리하는 일을 한다. 안 대표는 “가족 모임은 연중행사가 됐고, 옆집에는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시대다. 고독사 청소 현장에 나서면 홀로 고립된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닫는다”고 말했다.

    ▶“난장판이 된 집안 한구석엔, 자녀에게 줄 학용품이”

    안 대표의 업체는 춘천, 제천, 용인 등에서 의뢰가 들어온 고독사 현장 청소를 한달에 2~3건 정도 맡는다. 팬데믹 이후 고독사 청소 의뢰는 더 늘었다. 특히 최근에는 춘천시에서 고독사 사례가 많아졌다고 한다. 춘천시에 따르면 지역 내 1인 가구는 전체 11만8030가구 중 3만9825가구(약 33%)로 가구 유형 중 가장 많다. 특히 1인 가구 중에서도 60대 이상 노년층 가구가 34%를 차지한다. 

    고독사 현장을 수없이 마주한 안 대표에게도 잊히지 않는 기억들이 있다. 춘천의 한 아파트에서 홀로 숨진 40대 여성을 방문했을 때다. “고인의 집은 온갖 쓰레기와 약 봉투, 술병이 널브러져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쪽 구석에 가지런히 정리된 물품들이 보였습니다. 알고 보니 남편이 키우는 자식들에게 선물할 교재와 용품들이더군요.“ 안 대표는 “고독사 현장을 청소하다 보면 좌절·체념과 함께 고인의 삶을 향한 희망과 의지를 보여주는 물건이 반드시 나온다”고 했다.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 살아가던 이 여성처럼 주변과 단절한 채 살며 우울증과 저장강박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 그나마 간간이 연락하던 시누이가 연락이 끊긴지 한달 반 만에 집을 찾았으나 늦은 상태였다. 우편함에는 6개월 치 관리비 고지서가 쌓여있었으나 이웃 중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안 대표는 “최근에는 고령층보다 40~50대, 심지어 20대의 고독사 현장을 방문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실직이나 경제적 능력 탓인 중장년 남성 고독사가 많았다. 하지만 점차 독신자가 늘고 개인주의가 만연하면서 경제력, 나이대와 상관없이 고독사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특수청소업체 '비움마스터' 안현일 대표(46)가 청소 의뢰를 받은 춘천의 한 고독사 현장을 정리하는 모습. (사진=비움마스터 제공)
    특수청소업체 '비움마스터' 안현일 대표(46)가 청소 의뢰를 받은 춘천의 한 고독사 현장을 정리하는 모습. (사진=비움마스터 제공)

    ▶ 우리 주위에서 몇명이나 고독사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고독사 사망자는 ‘죽어서도 외로운 사람들’이라고 불린다. 현재 춘천시를 포함한 강원도의 공식적인 고독사 통계가 없어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몰라서다. 고독사와 큰 연관이 없는 ‘무연고사’ 시신 처리 현황으로 그 규모를 유추하는 수준에 그친다. 무연고사는 사망한 장소나 원인 등과 무관하게 사망자의 시신 인수자가 없거나 가족이 인수를 거부한 경우다.

    강원도 무연고사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조사 결과 지난해 도내 무연고 사망자는 114명이다. 2018년 88명, 2019년 90명이었으나 3년 만에 20.5% 증가한 수치다. 무연고사가 늘어나고 있어 고독사도 증가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안 대표는 “고독사 현장을 보면 대부분 고인의 집은 월세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자리를 정리한 후 집주인은 다시 그 집에 세를 놓을 것”이라며 “누군가 고독사 한 집이라는 소문이 나면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 일대가 쉬쉬하니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대표는 “고독사는 가족, 친척과 단절돼 홀로 살아가는 사람이 맞이하는 죽음이다. 그나마 ‘냄새’가 아니라면 시신마저도 고독한 죽음이 될 수 있다”며 “외로움이 가득 찬 사회에서 간단한 안부 인사가 사람 한 명을 살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수청소업체 '비움마스터'가 의뢰받은 춘천 한 고독사 현장 청소를 마친 모습. (사진=비움마스터 제공)
    특수청소업체 '비움마스터'가 의뢰받은 춘천 한 고독사 현장 청소를 마친 모습. (사진=비움마스터 제공)

    ▶ 춘천시 ‘고독사 예방 및 관리 시범사업’ 도시 선정

    춘천시는 이 같은 무연고사 및 고독사 증가세를 우려해 위험자를 조기에 찾아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시는 보건복지부 주관 ’고독사 예방 및 관리 시범사업‘ 도시로 선정됐다. 시는 2023년까지 1억9500만원을 투입해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나선다.

    사업 대상은 사회적 교류가 적고 우울감이 높으며, 홀로 거주해 고독사 위험이 큰 1인 가구다. 시는 이들과 상담해 생활환경을 파악한 뒤 위험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이후 고독사 위험자에게 주 2회 AI 안부 확인, 이웃 돌봄, 심리상담, 춘천형 노인통합돌봄 서비스 연계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다만 본지가 시 관계자에게 문의한 결과 이번 사업에도 고독사 통계 작성 계획은 포함돼 있지 않다.

    [서충식 기자·진광찬 인턴기자 seo90@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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