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재테크 24시] 우크라이나 전쟁이 소환한 코스톨라니의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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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명수의 재테크 24시] 우크라이나 전쟁이 소환한 코스톨라니의 조언

    헝가리계 유대인으로 2차 대전 직후 채권 투자로 돈방석 올라
    주가는 ‘산책나간 개’···투자, 정보·지식보다 상상력·인내가 중요

    • 입력 2022.07.19 00:00
    • 수정 2022.11.09 14:36
    • 기자명 재테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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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명수 재테크 칼럼니스트
    서명수 재테크 칼럼니스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인 요즘 투자자들 사이에 자주 오르내리는 인물이 있다.

    ‘유럽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앙드레 코스톨라니다. 별명에서 눈치를 챘겠지만 그가 전쟁 공포에 베팅해 큰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언제 끝나고 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코스톨라니를 소환해 조언을 들어본다.

    코스톨라니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인 1906년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주류 도매업을 하던 부친 밑에서 자란 그는 자연스럽게 투자 개념을 익혔고 18세에 파리로 보내져 본격 주식투자 수업을 받는다. 철학과 미술사를 공부한 인문학도가 주식투자를 평생의 업으로 삼게 된 출발점이었다.

    주식중개인으로 활동하던 그를 돈방석에 앉힌 건 채권 투자였다. 히틀러가 채무 불이행을 선언한 1930년대 독일 채권을 사들여 139배의 수익을 남겼던 것. 어떤 이유에서든 채권자에게 상환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국제 자본시장에서 고립을 뜻한다. 독일이 글로벌 금융시장에 다시 합류하려면 채무 불이행이 오래전 일이라도 기존 채권자들과 무슨 수를 쓰든지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코스톨라니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이 외국 투자자에게 발행한 채무 불이행 독일 채권인 이른바 ‘영본드’(Young Bond. 독일의 배상협상을 도왔던 미국 기업가 오웬 영의 이름을 따서 명명)에 투자했다. 이 채권은 1930년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배상금을 지급하기 위해 발행한 것이었다. 히틀러는 이 채권이 ‘불법적 정부’가 만든 것이라며 상환을 거부했다.

    코스톨라니는 전쟁이 끝나 독일이 재건되고 국제 금융계로 복귀하기 위해 자국의 채무 불이행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1946년 250프랑에 매입한 영본드는 채권 상환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폭등하기 시작했고, 1950년 3만5000프랑에 매도해 5년 만에 139배의 차익을 남겼다.

    코스톨라니는 주식으로도 발군의 실력을 뽐냈다. 2차 대전 직후 이탈리아는 패전국이었지만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아 생산 공장들이 대부분 온전히 보전돼 있었다. 그러나 원료 부족으로 인해 공장들은 대부분 가동을 멈춘 상태였다. 코스톨라니는 이탈리아를 주목하며 투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어느 날 신문에 미국의 한 자동차업체가 이탈리아의 한 공장에서 10만개의 엔진을 생산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는 곧장 파산 직전에 있던 이소타 프라치니라는 자동차 회사 주식을 주당 150리라에 사들였다. 결국 코스톨라니는 이 주식을 1500리라에 팔아 1000%의 수익을 올렸다.

    이후에도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증시에서 ‘미스터 셰어(주식)’로 불리며 연평균 25%라는 경이적인 수익률로 유럽 증시를 풍미했다. 1980년대 러시아의 부실 채권인 짜르 채권에 베팅해 100배의 수익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너무 많은 돈을 벌어서인지 50세 즈음해서는 인생의 공허함을 느끼고 우울증까지 얻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지식을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저술에 몰입하면서 독일 금융잡지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199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13권의 책을 남겼다. 또 독일, 오스트리아의 많은 대학에 출강하며 학생들을 가르쳤고, 거리의 커피숍에서 부자는 물론 거지들과도 투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 코스톨라니가 지금 살아있다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어떤 투자 조언을 했을까. ‘주식은 피를 먹고 산다’는 증시 격언이 있다. 전쟁이 나면 당사자들은 불행이지만 전후 복구 사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에는 우호적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실제 역사적으로 전쟁이 일어났던 시기에 주가는 대부분 상승세를 구가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 1990년대 걸프전, 2000년대 이라크 전쟁, 2010년대 크림반도 전쟁 등은 미국 증시에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전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주가가 상승곡선을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코스톨라니는 생전 자신의 저서를 통해 “포성이 울리면 사고 감미로운 바이올린 소리가 들리면 팔아라”라는 오래된 증권가의 금언은 더 이상 오늘날에는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과거 금본위제 아래 별다른 통화정책이 없었던 시절에는 인플레이션이란 곧 주식 가격 상승을 의미했지만 통화정책이 중요해진 지금 인플레이션은 유동성 회수에 따른 주식시장 위축을 가져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코스톨라니의 책을 유심히 살펴보면 보통 투자자들이 지표로 삼는 수치나 기술적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 흔한 PBR(주가순자산비율)이라든가 ROE(자기자본이익률) 같은 용어도 안 보인다. 대신 투자는 과학이 아닌 예술의 영역이므로 지나치게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접근을 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딱딱 떨어지는 계산과 논리를 찾는 투자자일수록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그는 주가를 움직이는 건 유동성과 사람의 심리라고 주장했다. 개와 산책을 나가면 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뛰다가 주인 곁으로 돌아오듯이 주가도 결국은 경제 상황으로 회귀하기 마련인데, 그 과정에서 돈의 양과 투자자의 심리에 따라 부침을 겪는다는 것이다. 주가의 이런 속성을 고려하면 주식투자는 정보나 지식보다는 상상력과 인내가 그 성패를 가른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개인 투자자가 새겨볼 만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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