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만 기억하는 세상은 갔다!··· 지정번호 뗀 문화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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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은 갔다!··· 지정번호 뗀 문화재들

    국가지정·등록문화재 지정번호 폐지··· 19일부터 시행
    춘천, 시도지정문화재도 지정번호 없애기로 가닥 잡아
    “춘천 문화재, 지명·절명 붙여 숫자 떼도 혼란 없을 듯”
    “일제강점기 행정 편의로 붙여온 관습··· 폐지 바람직”

    • 입력 2021.11.27 00:02
    • 수정 2021.11.28 00:04
    • 기자명 조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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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춘천 칠층석탑’. (사진=문화재청)
    ‘보물 춘천 칠층석탑’. (사진=문화재청)

    ‘보물 제77호 춘천 칠층석탑’이 ‘보물 춘천 칠층석탑’으로 바뀌었다. 국보와 보물 앞에 붙여온 지정번호를 없애는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이 시행돼서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지정번호가 문화재를 서열화한다는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국가지정·등록문화재에 지정번호를 사용하지 않기로 하는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을 지난 19일부터 시행했다.

    국가지정문화재는 국보·보물·사적·명승·천연기념물·국가무형문화재·국가민속문화재가 있다.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1962년 이후 59년 만에 지정번호제가 폐지되면서 춘천의 경우 국가지정문화재 12건, 국가등록문화재 5건이 이에 해당한다.

     

    국가지정·등록문화재 지정번호 폐지 전과 후. (그래픽=박지영 기자)
    국가지정·등록문화재 지정번호 폐지 전과 후. (그래픽=박지영 기자)
    춘천의 국가지정·등록문화재 지정번호 폐지 전과 후. (그래픽=박지영 기자)
    춘천의 국가지정·등록문화재 지정번호 폐지 전과 후. (그래픽=박지영 기자)

    이로써 공문서, 보도자료, 교과서, 도로 표지판, 안내판 등에서 국보, 보물 앞 지정번호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지방문화재도 지정번호 사라진다

    지정번호 폐지 요구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우리나라 문화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번호를 붙이기 시작했다는 점과 ‘국보 제1호 숭례문의 자격 논란’과 같이 문화재에 붙은 숫자를 지정 순서가 아닌 가치 순으로 오인하는 인식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유재춘 강원대 사학과 교수는 “격이 같은 문화재들이 행정 편의 때문에 붙여진 지정번호에 따라 지명도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등 숫자가 가치의 척도로 환원돼 왔다”며 “간단한 절차는 아니지만 지금껏 제기된 다양한 논란의 소지를 없애려면 표기 방법을 다시 설정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지정번호 폐지는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춘천시도 국가지정·등록문화재뿐만 아니라 강원도지정문화재와 향토문화유산, 전통사찰 등에 써온 지정번호를 폐지할 예정이다.

    춘천의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호 위봉문’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위봉문’으로, ‘강원도 기념물 제4호 춘천 천전리 지석묘군’은 ‘강원도 기념물 춘천 천전리 지석묘군’으로 표기하는 식이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호 위봉문’. (사진=문화재청)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호 위봉문’. (사진=문화재청)

    성락균 춘천시 문화콘텐츠과 주무관은 “문화재청에서 국가지정·등록문화재와 시도지정·등록문화재 모두 안내판에서 지정번호를 삭제하라는 ‘문화재 안내판 정비 지침’을 내렸다”며 “앞으로 춘천시도 문화재청의 정책 방향을 따라 강원도지정문화재의 지정번호를 없애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성 문화재청 정책총괄과 과장은 “지역마다 재정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지자체에는 협조를 요청해 순차적으로 전국에 적용할 것”이라며 “지금까지는 예산을 이유로 보류해 왔지만 안내판, 표지판 등을 교체할 때가 다가오면서 시기를 맞춰 재정 부담을 줄이는 방법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정번호 없으면 동일 명칭 문화재는 어떻게?

    문화재청은 “모든 문화재가 가치 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리고 문화재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일상적으로 접하는 정보에 지정번호를 노출하지 않을 것”이라며 “유형별, 지역별, 시대 등 문화재를 식별할 수 있는 코드체계를 관련 업무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대외적으로 문화재 번호를 사용하지 않으며 일본, 중국,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 행정상 관리번호를 내부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부 문화재의 경우 지정번호의 공식 표기가 사라지면서 호칭에 혼선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이름이 같은 경우에는 문화재명 뒤에 지정연도를 붙이기로 했다.

     

    왼쪽부터 ‘보물 금동여래입상(1963)‘과 ‘보물 금동여래입상(1964)‘. (사진=문화재청)
    왼쪽부터 ‘보물 금동여래입상(1963)‘과 ‘보물 금동여래입상(1964)‘. (사진=문화재청)

    대표적인 사례로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금동여래입상의 경우 ‘보물 제78호 금동여래입상’은 ‘보물 금동여래입상(1963)’으로, ‘보물 제83호 금동여래입상’은 ‘보물 금동여래입상(1964)‘으로 표기한다.

    성 주무관은 “춘천의 문화재는 지정할 때부터 지역명이나 절명을 이름 앞에 함께 붙여 동일명칭 사례는 없다”며 “지정번호 폐지로 야기될 혼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도 “불상, 석탑, 고서적 등 동산문화재나 공공박물관에서 보관하는 문화재 중 소재지도 붙이지 않은 같은 이름의 문화재가 꽤 많아 지정연도를 표기하는 등 보완책이 필요했다”면서도 “지자체 지정문화재의 경우 국보, 보물과 달리 숫자 자체의 의미가 크게 없었기 때문에 지자체 문화재 지정번호 폐지는 시행한다면 빠르게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아서 기자 chocchoc@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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