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뒤적뒤적] 중요한 것과 소중한 것은 다르다고?
  • 스크롤 이동 상태바

    [김성희의 뒤적뒤적] 중요한 것과 소중한 것은 다르다고?

    • 입력 2021.09.06 00:00
    • 수정 2021.09.07 00:09
    • 기자명 칼럼니스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모처럼 한참 묵은 책을 소개하렵니다. 아내와의 이야기에서 불현듯 떠올린 책입니다. 

    얼마 전 아내가 묻더군요. “나는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이에요, 소중한 사람이에요?”라고요. 가만 생각하니 ‘중요’와 ‘소중’의 미묘한 차이를 알긴 하겠는데 질문의 의도가 어째 심상치 않은 듯하더군요. 그래서 짐짓 되물었습니다. “중요한 사람과 소중한 사람이 뭐가 다른데?”

    아내 왈, “나는 삼시 세끼를 차려주니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인 건 분명하지만 당신은 나를 소중하게 대해주지 않는 것, 그런 차이지”라 했습니다. 그때서야 ‘아, 이 사람이 내게 뭔가 싫은 소리를 하고 싶구나’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이후 이야기가 어디로 튀었는지 상세히 이야기할 것은 없지만 아무튼 궁금했습니다. 아내가 이런 심오한(?) 질문을 하게 된 데는 연유가 있으리라 봤거든요.

    『마음사전』(김소연 지음, 마음산책) 탓이었습니다. 문제의 대화 며칠 전에 아내가 인터넷서점에서 구매해 읽었거든요. 슬며시 그 책을 보니 거기 그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심코 지나쳤던 언어의 결을 파고든 이 책 쉽사리 놓기 힘들었습니다.

    책을 쓴 이는 시인입니다. 시인이란 사회의 흐름, 사람의 마음, 자연의 아름다움을 남다른 감각으로 잡아채 이를 리듬감이 있으면서 압축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인 글로 표현해내는 이들입니다. 고운 글을 쓰는 ‘기술’보다 색다른 감수성이 더욱 빛나는 이들이죠.

    지은이는 그렇게 말에 관심을 쏟았답니다. 칠 백 가지가 넘는 낱말들을 모으고, 미세한 차이를 지닌 낱말들까지 치면 천 가지나 훌쩍 넘은 말들을 모아 그에 얽힌 사연, 담긴 생각들을 정리한 것이 이 책입니다. 이 표현 관련 에세이집을 읽다 보면 ‘아, 그렇지’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대목이 수두룩합니다.

    “사랑의 시작을 여는 필수조건에는 ‘실수’가 있다. 그 실수를 우리는 ‘운명’이라고도 말하고, ‘필연’이라고도 말하지만, 그것은 우연히 일어난 실수일 뿐이다…그 실수는 이후, 가장 특별한 것, 가장 현명한 것, 가장 필연적인 것으로 미화된다. 미화하는 힘 자체가 사랑의 힘인 셈이다.”
    이런 구절은 잠언집 같아 잠시 멈춰 곱씹어보게 만듭니다. 어쩌면 이제는 남루해진 혹은 버릇이 되어버린 사랑을 짚어보면서 말이죠.

    지은이는 유리창에 달라붙은 매미의 배를 바라보면서 “사람에게 마음이 없었더라면 유리 같은 것은 만들어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차단되고 싶으면서도 완전하게는 차단되기 싫은 마음, 그것이 유리를 존재하게 한 것”이라면서 “그러기 싫은 마음의 미묘함을 유리처럼 간단하게 전달하고 있는 물체는 없는 것 같다”고 짚어냅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유리’를 두고 이처럼 별나다 싶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시인이 아니면 어렵습니다.

    ‘평안하다’와 ‘편안하다’의 뉘앙스를 파고든 글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조용한 시골로 가족이 여행을 떠났을 때 모두가 평안을 느끼는 반면, 집에서 느끼던 나의 편안함에 누군가의 수발이 전제될 때가 많은 것처럼. 나의 편안함은 누군가의 불편함을 대가로 치르지만, 나의 평안함은 누군가와 함께 누리는 공동의 가치가 될 수 있다.” 편안을 구하는 것은 욕심일 수 있지만 평안은 오로지 스스로의 마음가짐으로 얻을 수 있다는 뜻일까요.

    한가한 이야기만 담은 것은 아닙니다. 드물지만 ‘집단, 정의, 마녀사냥’ 같은 글도 있습니다.

    “집단은 ‘축제’를 만들기도 하고, ‘광란’을 만들기도 한다…독재와 학살을 일삼는 권력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개인이 취하는 이성의 목소리를 외톨이로 만드는 일이다” “같은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에게 우리는 은근히 배타적이다…존경은 오로지, 같은 판단을 하고 같은 노선을 걸었던 군중 안에서 가장 탁월한 결과를 낳은 자에게 돌아간다.” 이런 글은 요즘 정치 사회 이슈를 다룬 시사 칼럼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 책은 2008년 처음 나왔으니 10년도 더 넘은 ‘낡은’ 책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후 일상의 낱말을 화두로 삼은 에세이집이 쏟아져나온 계기가 되었고 그간 40쇄를 넘게 찍은 스테디셀러입니다. 그만큼 시간을 이긴 가치가 있는 책이라 하겠죠.

    그나저나 아내에게 일침을 맞은 후, 그림으로 보는 독서의 역사를 담은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슈테판 볼만, 웅진지식하우스)가 떠오른 저는 영락없는 ‘꼰대’지 싶어 반성 중입니다.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