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창수의 딴생각] 부모의 사랑이라는 절대적이고도 상대적인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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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수의 딴생각] 부모의 사랑이라는 절대적이고도 상대적인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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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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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수 소설가
하창수 소설가

부모의 학대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거나 사망에 이르는, 비극이라는 단어조차 수식하기 버거운 온갖 일들이 일상처럼 보도된다. 특히 친부나 양부에 의한 성적학대는 그 자체로 믿어지기 힘든 사안인데 그걸 여느 성범죄와 다를 바 없이 다루는 사법부의 행태를 접하면 아예 말문이 닫혀버린다. “어떻게 부모가, 어떻게 아버지란 사람이, 엄마가 도대체 어떻게…” 같은 넋두리나 흘려놓으며 자괴감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일도 덩달아 일상이 되어간다. 실로 끔찍한 비극은 이런 일들에 대한 무감각과 분노하고 슬퍼하는 기능의 상실이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르다는 사실이다. 학창시절의 도덕시간에 배워서 뇌리에 깊이 박힌 ‘아가페(무조건적 사랑)’가 참담하고 속절없이 붕괴되어가는 모습을 목도할 때면 18세기를 수놓았던 두 철학자, 칸트와 루소가 깊은 밤의 달처럼 떠오른다. 

“하늘엔 별들이, 내 마음엔 도덕률”이란 말에 담긴 칸트의 정신적 엄격함은 그의 생활에도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그는 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았고,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5시에 일어났고, 두 잔의 차와 파이프 담배로 아침식사를 대신했고, 면밀하게 짠 시간표에 따라 강의를 했고, 오후 3:30이 되면 보리수가 도열한 길을 여덟 번 왕복했다. 마을주민들이 시계를 맞추었다는 저 유명한 그의 오후 산책을 며칠 동안 중지시킨 것이 있었으니, 바로 루소의 <에밀>이었다. 칸트는 <에밀>을 읽는 데 빠져 산책을 빠트려먹은 것이다. 루소는 잘 알려져 있듯 다섯 명의 자식을 모두 고아원에 보내버린 비정한 아비이면서도 <에밀>이라는,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교육철학적 소설을 쓴, 아이러니한 인물이다. 한 면만을 부각해 비교하면 루소와 칸트는 대척에 있는 인물이라 해도 과장은 아니다. 그 ‘한 면’은 바로 여성과 관련된 두 사람의 생각과 삶이다.

칸트는 평생 독신을 유지했다. 결혼을 할 수 있는 두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두 번 모두 고백에 주저했던 그는, 한 여인은 먼 곳으로 이사를 가게 만들었고 다른 한 여인은 자신보다 고백에 빨랐던 다른 남성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는 제자들에게, “결혼할 여자를 고를 땐 정열적인 애정보다는 냉철한 이성에 따르고, 미모보다는 지참금을 먼저 생각하라”고 꽤나 쪼잔하게 충고했다. 이런 칸트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던 루소는 평생 자위행위와 음부노출증에 시달렸고, 자신을 낳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환영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어머니와 같은’ 여성을 찾아 헤맸다. 이런 가슴 아픈 성적 방랑은 그의 <고백록>을 한 위대한 철학자의 ‘성적 일탈기’로 읽히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루소의 <고백록>은 내가 읽은 가장 뛰어난 자서전이다.)

칸트와 루소, 두 위대한 철학자의 기묘한 어긋남에는 한 가지 또렷한 공통의 질료가 있는데, 바로 어머니였다. 어머니에 대한 두 철학자의 언설이 이를 잘 드러낸다. “나는 어머니를 결코 잊을 수 없다. 어머니는 내 마음에 최초로 선의 씨앗을 심어준 분이었다”라고 칸트는 말했다. 반면에 루소는 “나는 허약하고 아픈 아이로 태어났다. 나로 인해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내가 태어난 것은 나의 여러 불행들 가운데 최초의 불행이었다”고 토로했다. 어머니의 부재에 겹쳐 함께 밤을 새워가며 책을 읽기도 했던 자상한 아버지마저 예기치 못한 일로 어린 루소의 곁을 떠나버린 상황에서 그를 키워주었던 고모(쉬잔 루소)에게 루소가 한 “사랑하는 고모, 당신이 저를 살려주신 것을 용서합니다”라는 말은, <고백록>에 나와 있으니 ‘고백’이라 하지 않을 수 없지만, 기이한 페이소스를 던지는 ‘독설’이라 해야 옳다.

부모란 자식들에게, 적어도 성인이 되기 전까지의 그들에게,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우월하고 크고 깊은 존재다. 부모로부터 받는 사랑은 가족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타인에게로 확산된다는 사실은 수많은 데이터들이 말해준다. 이 데이터들은 결국 부모로부터 받은 학대 또한 타인을 향한 학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온 힘을 다해 사랑하고 보호해주어야 대상까지 학대의 대상으로, 희생양으로 삼는 행위는 결코 ‘보통의 폭력’이라 할 수 없다. 가장 가혹한 지옥에 떨어져야 할 폭력이 보통의 폭력으로 평가절하(!)되는 것은 그 자체로 지금의 이곳을 지옥으로 만드는 일이다. 태생적인 도덕론자였던 칸트도, 폐덕의 절정에서 교육의 덕성을 펼친 루소도, 우리에겐 지극한 예외다. 이 지극한 예외가 양쪽의 극을 이룬 진폭 안에 우리가 있다. 사는 것이 힘들면 맨 먼저 무너지는 것이 도덕이지만, 이 회복하기 힘든 도덕의 추락에 대한 책임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 어떤 교묘한 상대성으로도 변명될 수 없는, 죽음으로만이 갚아지는 절대성이 이 ‘책임’ 안에 있다. 또한 이 안에 우리가 진정 사랑의 인간임을 입증할 수 있는 가엾고 처절한 안간힘이 숨 쉬고 있다. 돌아가자,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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