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여행기] 피오르에서 만난 투머치토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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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여행기] 피오르에서 만난 투머치토커

    • 입력 2024.01.05 00:00
    • 수정 2024.01.06 17:26
    • 기자명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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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베르겐에서 시작한 피오르 여행은 중간 지점 플롬 역에서 잠시 쉬어간다. 여기에서 피오르의 종착점 미르달역으로 가는 산악열차를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이 노르웨이까지 미친 걸까? 산 중턱인데도 너무 더웠다. 목이 말라서 평소에는 잘 찾지 않지만, 여행할 때만 그렇게 당기는 콜라를 먹을지 말지 한참을 고민했다. 베르겐에서는 만원이었던 콜라가 여기에서는 이만원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노르웨이도 관광지는 비싸다. 결국, 한 모금에 3000원 정도 할 것 같은 콜라를 마셨다.

    고풍스러운 녹색 산악열차는 천천히 가파른 철길을 올랐다. 경사가 가팔라지는 만큼 경치는 더 아름다웠고, 열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감탄사도 점점 켜졌다. 감탄사를 내뱉는 사람 중 유독 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조지 클루니를 닮은 이 남자의 이름은 알랭. 그는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리액션과 과도한 손짓으로 자연의 위대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보며 ‘평소 나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의 눈 에게는 저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자아 성찰을 했다. 역시 ‘여행은 생각의 산파’라고 말한 알랭 드 보통의 말은 진리다.

     

    고풍스러운 녹색 산악열차는 가파른 철길을 올랐다. 사진=강이석
    고풍스러운 녹색 산악열차는 가파른 철길을 올랐다. 사진=강이석

    알랭은 브라질에서 온 사회학과 교수란다. 그렇게 브라질과 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 둘은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친해졌다. 알랭은 영어를 아주 잘 하진 않았지만, 라틴 특유의 빠른 말과 영어와 유사한 표현이 많은 포르투갈어를 바탕으로 속사포처럼 내뱉는다. 반면 나는 영어 말하기의 핵심은 대화의 주제를 자신에게 가장 친숙한 것으로 유도하고 그 안에서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이렇게 라틴의 피가 흐르는 이 두 수다쟁이는 산 정상에 도착할 때까지 마치 10년 만에 만난 친구들처럼 온갖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르달역에 도착하니 오슬로행 기차에서 테러가 발생하여 기차 운행을 무기한 중단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산 정상의 그 조그만 역에는 이미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이걸 왜 여기 도착해서 알려주냐?”, “미리 아래에서 표를 팔지 말았어야 했던 거 아니냐?”며 관광객들이 노르웨이 철도청 직원들에게 화를 내며 항의하고 있었다.

     

    산 정상의 그 조그만 미르달역에는 이미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사진=강이석
    산 정상의 그 조그만 미르달역에는 이미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사진=강이석

    하지만 역시나 낙천적인 라틴의 후예들은 이왕에 이렇게 된 거 술이나 마시자며, 알랭은 브라질의 국민 술 까사샤, 나는 한국의 국민 술 소주를 꺼냈다. 테러가 나서 기차가 멈춘 마당에 무엇을 위한 축하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축배를 들었다. 그리고 노르웨이 철도청 직원에게 축배를 들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서로의 술을 입이 마르게 칭찬하면서 술이 점점 얼큰해졌다.

    알랭은 막둥이 딸 사진을 나에게 보여줬다. 요즘 이 딸이 자기 삶의 이유라고 한다. 나는 “이렇게 사랑하는 딸과 가족들을 브라질에 두고 혼자 노르웨이로 여행을 왔어?”라고 물었더니 그는, “네가 아직 결혼을 안 해서 이해 못 하겠지만, 나는 가족을 정말 사랑하지만, 사랑한다고 항상 함께하고 싶은 것은 아니야. 혼자 여행하는 이 자유로움도 나는 무척 사랑해.”라고 답했다. 알랭의 그 말을 그때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두 남자는 그렇게 각자 나라의 교육, 경제, 그리고 여행과 사랑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어느새 오슬로행 기차가 곧 운행할 것이라는 방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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