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판자촌 ‘돼지골’ 노인의 소원⋯ “삶이 딱 끊어졌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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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판자촌 ‘돼지골’ 노인의 소원⋯ “삶이 딱 끊어졌으면 좋겠어”

    춘천 마지막 판자촌 ‘돼지골’ 복지 사각지대
    15세대 20명 거주, 고령층에 주거환경 열악
    월 30만원이 생활비 전부, 끼니 해결 어려워
    지원 몰라서 못 받아, 복지제도 접근성 높여야

    • 입력 2024.03.10 00:05
    • 수정 2024.03.10 13:47
    • 기자명 한승미 기자·김용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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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김용진 인턴기자)
    낮게 내려앉은 돼지골의 집과 우뚝 솟은 아파트가 대비된다. (사진=김용진 인턴기자)

    “그냥 돼지골에서 조용히 삶을 마감하는 거, 그게 내 소원이야.”

    춘천 후평동 일대에 높이 솟은 아파트를 지나면 10여 가구 남짓의 판잣집이 등장한다. 택시기사들조차 잘 모르는 곳, 춘천에 마지막 남은 판자촌, 돼지골이다. 새 생명이 움트는 봄이 찾아왔지만 이곳의 3월은 유독 춥고 고통스럽다. 겨울철 반짝 지원하는 난방비나 연탄 후원 같은 도움의 손길이 끊어지는 ‘소외된 계절’이기 때문. 봄의 시작을 알리는 경칩(驚蟄)에도 눈발이 날렸던 6일과 7일, 본지는 꽃샘추위를 온몸으로 버텨내고 있는 돼지골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얇은 창문을 틈타 들어오는 바람을 비닐로 막아보려 했던 흔적과 폐가 사이로 누군가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삶의 공간들이 등장한다. “계십니까? 계세요?” 인적 없는 돼지골에서 연신 외쳐대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포기하며 골목길을 나서는 순간,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집 한 채가 눈에 띄었다. 고무신과 꽃 달린 단화까지 모두 세 켤레. 흙먼지가 가득했지만, 누군가 살고 있는 흔적이었다. 문을 두드리자, 백발의 어르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김용진 인턴기자)
    현재 돼지골에는 15세대 20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80대 이상의 고령인구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사진=김용진 인턴기자)

    올해 아흔이 된 신모 씨는 돼지골에서만 60년 넘게 살았다고 했다. 각종 장사와 막노동 등 궂은일을 자처하며 5남매를 키워냈다. “자식들 먹여 살리려고, 학교 한 번 보내보려고 살았지” 부족한 환경에서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장성한 자녀들을 외지로 보내고 나니 흐른 세월만큼 건강도 잃었다. 몇 해 전 배우자가 떠나고 완전히 혼자가 된 신 씨는 “방금도 다리가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어. 근데 자주는 못 가”라며 한탄했다. 타지에서 자식들이 와야지만 병원에 갈 수 있다고 했다. 병원에 갈 돈이 없어서다. 

    보건복지부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 생계 급여 기준에 따르면 1인 가구 기준 최저생계비는 71만3102원이다. 인간이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금액이다. 정부는 이 기준에 따라 생계 급여 최대 지급액을 정했지만 신 씨는 노령연금 30만 원이 한 달 생활비의 전부라고 말한다. 병원비와 약 값, 전기세 등으로 쓰고 나면 장을 볼 돈조차 없다고 했다. 나라에서 매달 지원하는 쌀 10㎏와 자녀들이 가끔 주는 김치로 간신히 끼니를 때우고 있다.

    현재 돼지골에는 15세대 20명이 거주하고 있다. 연령대는 1933년생부터 1970년대생까지 다양하지만 80대 이상의 고령자가 7명에 달한다. 춘천시는 유일한 판자촌 주민을 위한 복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까? 시는 돼지골을 특별히 관리하고 있다면서도 특정 구역을 중심으로 한 복지는 있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복지정책은 명확한 기준과 정책에 따라 시행된다는 이유에서다. 

    춘천시 후평1동 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돼지골이라고 더 많은 지원을 해줄 순 없다”며 “기준을 충족하시는 분들에게 지원금이나 혜택이 돌아가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사진=김용진 인턴기자)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을 집들이 폐가로 변해있다. (사진=김용진 인턴기자)

    열악한 거주 환경 개선을 위해서라도 이주가 필요한 상황. 하지만 신 씨는 돼지골 주거지가 자가라 임대주택 신청 자격조차 얻지 못한다. 자가를 두고 월세로 이사하면 주거급여 대상에 포함되지만 지원 여부는 평가 이후 결정된다. 

    시 관계자는 “임대주택의 신청 기간이 일정하지 않고 매물이 한정돼 관련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며 “본인이 거부하거나 신청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노인들이 돼지골에 남는다고 해서 강제로 임대주택에 보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춘천형 위기가구 생활 안정지원 사업 지원도 받기 어려운 처지다. 해당 사업은 생계비, 의료비, 간병비 가운데 한 가지를 지원하는 제도인데 실직, 교정 시설 퇴소 등 위기 사유가 있어야 지원이 가능하다. 위기 사유 증명이나 신청을 위해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상담을 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최균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소득 수준과 연령에 따라 지원받을 수 있는 서비스들이 있는데 이들이 접근하지 못해서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복지로’라는 사이트에서 찾고 신청하면 되는데 고령자들이 접근할 수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춘천시는 돼지골을 비롯한 취약계층이 다양한 복지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돼지골에서 만난 이들은 여러 이유로 복지 사각지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81세 김모 씨는 다른 사람의 세금으로 살고 싶지 않다며 직접 밖에 나가 밭일을 하고 83세 신모 씨는 장애인 아들과 지원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아픈 몸과 굶주린 배를 해결할 돈조차 없는 신 씨가 스스로 사각지대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들은 어떤 지원도 바라지 않고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신 씨는 유일한 소원이 “자식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여생을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마지막 말이 돼지골을 떠나는 내내 잊어지지 않았다. 

    “내 삶이 딱 끊어졌으면 좋겠어. 근데 그게 맘대로 되나⋯.”

    한승미 기자·김용진 인턴기자 singme@mstoday.co.kr

    (확인=한재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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