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서림과 광장서적을 아시나요”⋯ 지역 문화 거점 ‘동네 서점’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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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서림과 광장서적을 아시나요”⋯ 지역 문화 거점 ‘동네 서점’의 부활

    9일 문 연 춘천서림, 사회과학 서점과 북카페
    24년 서점 경력 류재량 “춘천서림 유지 이을 것”
    광장서도 폐업 후 재오픈, 새로운 역할 기대
    지역서점 도서정가제 완화 방침 속 우려 남아

    • 입력 2024.03.11 00:09
    • 수정 2024.03.18 09:29
    • 기자명 한승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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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에서 책 사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춘천은 각 동네를 대표하는 서점이 곳곳에 위치해 있던 곳이지만 어느 순간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해 이제는 서점을 찾기 어려운 도시가 됐다. 종이책 독서 인구 감소와 가격 경쟁에 앞서는 온라인 서점과 전자책,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문화 확산까지 겹치면서 지역 서점의 폐업과 부도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문을 닫았던 오랜 역사의 서점들이 다시 문을 열어 눈길을 끌고 있다. 춘천 서점의 종말 위기에서 부활한 이들 서점은 새로운 역할과 형태로 다시 시민 곁에 찾아왔다. 

     

    옛 춘천서림의 유지를 잇는 동명의 ‘춘천서림’이 9일 문을 열었다. (사진=춘천서림)
    옛 춘천서림의 유지를 잇는 동명의 ‘춘천서림’이 9일 문을 열었다. (사진=춘천서림)

    춘천서림은 1980~1990년대 강원대 후문 입구에 위치한 지역 유일의 사회과학 서점이자 춘천 민주화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지역의 ‘사랑방’과 같았지만, 경영난 등을 이유로 1997년 문을 닫았다.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9일. 오래전 사라진 ‘춘천서림’의 이름이 효자동에 다시 등장했다. 

    춘천서림의 새 주인은 춘천의 또 다른 대표 서점이던 광장서적이 문을 연 1999년부터 24년간 함께한 류재량(54) 씨다. 류 대표는 광장서적이 사회 변화에 따른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폐업한 것을 계기로 서점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후 지역에 인문사회과학 서점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고 춘천서림의 유지를 잇겠다는 다짐과 함께 서점 문을 연 것이다. 

    서점은 춘천서림을 한글로 푼 ‘봄내울 책숲’이라는 카페를 겸해 운영한다. 서점도 변신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50평 남짓한 공간은 서점과 카페, 세미나실 등으로 채워졌다. 서점의 책 판매 기능은 약해졌지만 책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책을 읽지 않는 카페 이용객들의 책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목표 중 하나다. 이를 위해 시민 누구나 자신의 서재 속 책을 공유할 수 있는 ‘시민의 서재’ 공간도 마련했다.

     

    류재림 춘천서림 대표는 지역 서점의 새로운 역할을 위해 책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을 조성했다. (사진=춘천서림)
    류재림 춘천서림 대표는 지역 서점의 새로운 역할을 위해 책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을 조성했다. (사진=춘천서림)

    류 씨는 “서점이 좋은 책을 큐레이션하고 시민이 참여하는 공간이 된다면 지역의 문화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춘천의 대형서점들은 단순한 책 판매점 이상의 역할을 해왔다. 명동 입구의 청구서적은 시민들의 약속이 시작되는 ‘만남의 장소’였다. 지하상가의 중앙서적은 눈길을 사로잡는 잡지 등의 볼거리가 펼쳐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이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이처럼 지역 서점은 지역민 대다수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 지역 문화공간의 최일선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규모화된 온라인 서점의 가격 경쟁 등에 밀리면서 지역 서점의 수난시대를 맞아야 했다. 

    2017년 인문학 서점을 표방하며 등장한 데미안이 앞서 사라진 서점의 빈자리를 대신할 것이라 기대됐지만 견디지 못하고 4년 만에 폐업했다. 중앙서적, 춘천문고 만천점, 광장서적도 잇따라 문을 닫았다. 

     

    새롭게 부활한 지역 서점은 단순한 책 판매 역할 외에 문화 사랑방 역할을 겸한 장소로 운영할 계획이다. (사진=춘천서림)
    새롭게 부활한 지역 서점은 단순한 책 판매 역할 외에 문화 사랑방 역할을 겸한 장소로 운영할 계획이다. (사진=춘천서림)

    지난해 7월 광장서적의 폐업은 시민들에게 더 큰 충격을 안겼다. 화재와 건물 부도 등 잇단 위기를 겪으면서도 24년간 지역민과 함께한 서점이 결국 부도로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춘천의 빅3 서점의 소멸로 문화 인프라 소멸 우려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에 공감한 새 주인이 서점을 인수했다.

    추억을 잃은 시민을 위해 서점은 10월 같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시민과 보다 가까워지기 위해 세미나실과 북카페 등을 조성했다. 작가와의 대화, 북토크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시민과 함께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지역에서는 문화 인프라를 되살리기 위한 이들의 자구적인 노력이 계속되는 반면 정부는 지역 서점을 위해 도서정가제를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4일 지역 서점 활성화를 위해 지역서점에 정가의 15% 이상을 할인해 판매할 수 있도록 도서정가제 적용을 완화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점업계에서는 출혈 경쟁을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대형서점에 비해 중소서점은 더 높은 가격으로 책을 매입해 할인 폭을 늘릴수록 적자폭이 커진다는 이유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가까스로 부활한 춘천 서점이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한승미 기자 singme@mstoday.co.kr

    (확인=한재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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