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립극단 최고령 배우 화제⋯ “무대 찾는 하이에나의 청개구리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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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립극단 최고령 배우 화제⋯ “무대 찾는 하이에나의 청개구리 인생”

    [인터뷰] 강원도립극단 최고령 배우단원 류창우 씨
    33년 경력의 베테랑, 대학 학과장과 유명 작품 경험
    첫 배우 생활 시작한 강원도, 말년도 강원도민으로
    “무대 위에 올라야 배우죠, 연극은 애증의 관계 같아”

    • 입력 2024.03.10 00:04
    • 수정 2024.03.12 08:43
    • 기자명 한승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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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립극단이 최근 5기 배우 단원을 공개한 가운데 최고령 단원 류창우(사진 오른쪽 세번 째) 씨가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강원도립극단)
    강원도립극단이 최근 5기 배우 단원을 공개한 가운데 최고령 단원 류창우(사진 오른쪽 세번 째) 씨가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강원도립극단)

    강원도립극단은 최근 5기 배우단원 7명을 선발했다. 배우 단원은 도립극단에 상근하는 직원과 같은 개념으로 12월 말까지 극단이 발표하는 모든 작품에 배우로 참여하게 된다. 극단은 현재까지 25명의 단원을 배출했다. 지난해 4기 단원의 평균 나이는 27세로 모두 젊은 배우들이었는데 올해는 평균 나이가 36세로 훌쩍 올랐다. 바로 최고령 배우단원 류창우(57·서울) 씨가 등장하면서다. 본지는 지난 7일 도립극단 연습실에서 만난 류 씨를 만났다. 최고령 단원이 된 소감을 묻자 “남녀노소, 경력의 많고 적음이 뭐가 중요하냐”며 “과거에 잘나가고 못 나간 것도 아무 상관없다. 우리는 모두 연극 동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류 씨는 33년째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베테랑 배우다. 세계적인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등에 출연하고 국립극장 무대에도 오른 성공한 직업 배우다. 서울 토박이로 활동 대부분을 서울에서 했지만 그가 연극을 처음 접하고 시작한 곳은 강원이다. 

     

    본지는 지난 7일 춘천 강원도립극단 연습실에서 류창우 씨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한승미 기자)
    본지는 지난 7일 춘천 강원도립극단 연습실에서 류창우 씨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한승미 기자)

    직업군인이던 류 씨가 배우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89년 부임했던 평창 횡계에서다. 젊은이는 횡계에서 놀거리가 없다는 말에 강릉에 집을 얻은 그는 매일 저녁 한 카페를 찾아 시간을 보냈다. ‘카페 사람과 사람들’이라는 이 카페는 DJ가 음악을 틀고 연극도 공연하는 살롱이었는데 류 씨가 연일 다섯 잔씩 술을 비우는 바람에 ‘진토닉 아저씨’로 유명했다. 카페를 운영하던 강릉 극단 ‘사람들’ 관계자가 제대를 앞둔 그에게 “할 일 없으면 같이 놀아보자”고 제안해 첫 배우 생활을 시작하고 4년간 극단 생활을 하다 서울로 돌아갔다. 

    이후 배우로 활발히 활동한 그는 연극 교육자로도 나섰다. 명지대 사회교육원 뮤지컬과 강사에 이어 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에서도 단상에 서게 됐다. 이후 학교에서 학과장(계열장)을 맡게 됐는데 노년을 맞은 배우가 가는 교과서 같은 길이었다. 이맘때 코로나19가 터졌다. 전국의 모든 공연장이 강제로 문을 닫게 되면서 연극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류 씨는 안정적인 직장에 있는 만큼 ‘다행’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돌연 학교를 그만뒀다. 류 씨는 “제 인생의 목표가 교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학교 연봉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살아있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며 “사라지는 무대가 오히려 연극적 갈등과 고민을 숙성시키는 기회가 됐다”고 했다. 

     

    33년간 배우 생활을 이어온 베테랑 배우 류창우(사진 맨 오른쪽) 씨는 흔히 말하는 성공한 직업배우의 길을 걸어왔다. 사진은 류 씨가 2022년 연극 '남해달빛'에 이순신 역으로 열연하는 모습. (사진=류창우 씨 제공) 
    33년간 배우 생활을 이어온 베테랑 배우 류창우(사진 맨 오른쪽) 씨는 흔히 말하는 성공한 직업배우의 길을 걸어왔다. 사진은 류 씨가 2022년 연극 '남해달빛'에 이순신 역으로 열연하는 모습. (사진=류창우 씨 제공) 

    “무대를 찾아 하이에나처럼 찾아다녔어요. 그러다 사막의 오아시스를 발견했죠.”

    코로나19가 익숙해질 무렵 경남도립극단의 배우단원 모집 공고를 보게 됐다. 극단 창단과 함께 모집하는 경우라 작품을 무대에 올릴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 여기에 ‘토지’ 공연에 오를 기회가 주어진다는 소식에 그는 집에서 4시간 거리인 진주에서 홀로살이를 시작했다. 

    경남도립극단 배우단원은 50대 이상의 배우가 30% 정도 될 정도로 연령대가 고르게 분포됐다. 류 씨보다 연장자도 있었다. 배우단원 대부분이 경남 연극인이라 ‘서울 이방인’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역시 배우는 무대에 올라야 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이후 서울에서 강원도립극단의 ‘월화전’ 공연 관람을 계기로 강원도를 대표하는 국공립극단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강릉에서 공연된 같은 무대에 배우로 오르면서 수십년만에 강원도 무대에 다시 섰다. 이후 지역에 활발히 활동하는 청년 배우와 극단들이 있어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이번 단원 모집에 신청하게 됐다. 

    강원도립극단은 경남도립극단과 달리 그를 제외한 모든 단원이 20~30대다. 자식뻘 동기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무색하게 그는 이틀만에 단원들의 아버지로 등극했다. 류 씨 자녀가 29세인데 단원 중 막내의 나이가 27세다. 단원들은 벌써 그를 위한 애칭을 만들고 있다. ‘아빠’와 발음이 비슷한 ‘빠빠’가 유력하다.  

    “첫 날에는 혼자 도시락을 먹었는데요. 오늘은 넷이 먹고 내일은 여덟 명이 같이 먹을 것 같아요. 친근하게들 다가와주니까 너무 고맙죠”

     

    류창우 씨는 연극과는 애증의 관계라며 어떤 청년 배우보다 연극에 대한 사랑이 크다고 자부했다. 사진은 2019년 뮤지컬 ‘아이언 마스크’ 공연을 앞둔 류 씨의 연습 모습. (사진=류창우 씨 제공)
    류창우 씨는 연극과는 애증의 관계라며 어떤 청년 배우보다 연극에 대한 사랑이 크다고 자부했다. 사진은 2019년 뮤지컬 ‘아이언 마스크’ 공연을 앞둔 류 씨의 연습 모습. (사진=류창우 씨 제공)

    류 씨를 비롯한 배우단원들은 강원문화재단 창립 25주년 기념 공연 ‘가객 박인환’ 연습에 한창이다. 강원을 대표하는 청춘시인 박인환의 시 세계와 삶을 다룬 음악극이다. 그는 자신의 연극 사랑이 그 어떤 청년 배우보다 크다고 말한다. 류 씨는 “수십년을 했는데 청년배우들보다 그만큼 연극을 사랑한 기간이 길지 않겠냐”며 “때로는 상처를 입고 분노하면서도 절대 떠날 수 없는, 산전수전 다 겪은 애증의 관계”라고 했다. 

    류 씨는 강원도립극단 활동을 시작으로 강원도민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미 강릉에 살 집도 구해놨다. 배우단원 활동과 함께 또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예술은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잖아요. 남이 가지 않는 비포장 도로를 개간하는 것이 재미있어요. 무엇보다 배우가 무대에 안 서면 좀 그렇잖아요.”

    한승미 기자 singme@mstoday.co.kr

    (확인=한재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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