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들이 처음 사람들을 만나고 알아갈 때 주로 혈액형을 물어봤다면, 요즘 MZ 세대들은 MBTI를 묻는 게 필수인 것 같다. too much information이지만 나의 MBTI는 ENTP, 격렬한 논쟁을 즐기는 변론가, 발명가 형이다. 남들은 기분이나 컨디션에 따라 가끔 바뀌기도 한다던데 같은 테스트를 몇십 번을 해보아도 결과가 바뀐 적은 한 번도 없다.
MBTI는 과학이라고들 한다. MBTI 유형은 일이나 인생, 여러 가지 선택의 갈림길에서 다양한 영향을 미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여행이다. 특히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떠날 때는 MBTI 궁합도 중요하다.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여행을 함께 즐기는 꿀 조합이 있지만 결국엔 서로 싸우고 여행을 망치는 것뿐만 아니라 나아가 관계를 망치는 최악의 조합도 있다.
MBTI의 4가지 요소 중 첫 번째 지표는 심리적 에너지와 관심의 방향, 태도에 따라 E와 I로 나뉘는데, 외향형은 외부의 자극을 내향형은 자기 내면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흔히들 말하는 ‘핵인싸’,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리더십이 있는 외향적인 타입이 E라면, 소수의 사람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맺고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호하는 내향형 타입이 I이다.
스테이를 운영하며 깨달은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 부부가 모두 외향형, 대문자 E인 데 반해 우리 숙소를 찾아오는 게스트들은 대부분 I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우리 숙소에는 더블룸, 트윈룸, 이층침대 방, 싱글룸 등 여러 타입의 객실이 있다. 이 중 혼자서 머무는 싱글룸이 가장 예약률이 높다.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자 숙소를 예약하고 찾아오는 분들이 많은데 대부분 춘천에 와서 꼭 무언가를 하고 가야 한다는 뚜렷한 목표가 없다. 어떤 특별한 경험을 하기보다 숙소에 머물면서 여기저기 놓여있는 책을 읽거나 틈틈이 동네 산책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극 I인 손님들과는 주로 직접적인 대화보다 메시지를 통해 소통하는 편인데, 가끔은 손편지를 남기기도 한다. 손님들의 회신도 I스러울 때가 많다. 객실의 방명록 한쪽에 수줍게 메시지를 써 두시거나, 한참 지난 뒤 예약사이트에 장문의 리뷰를 정성스럽게 남기시는 분들도 많고, 간식이나 선물을 슬쩍 전해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E호스트가 운영하는 I들의 아지트 숙소, 아이러니하지만 지금 우리 숙소의 현재 상황은 그렇다. I 타입의 게스트 중에서도 춘천일기와의 꿀 조합 게스트는 P 타입. 계획형인 J보다, 즉흥적인, 아니 좀 더 느낌 있게 표현해 보자면 ‘마음이 이끄는 대로’ 그때그때 날씨나 계절, 기분이나 상황에 맞는 여행을 하는 게스트를 위해 한 사람 한 사람 어떤 여행을 원하는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 다음 거기에 맞춰 딱 맞는 장소나 일정을 추천하는 일, 어떻게 생각하면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고 처방전을 써내는 일과도 비슷한 것 같다.
그렇게 추천한 여행코스를 게스트가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 하고 그곳에서 보낸 시간을, 춘천이라는 도시를 행복하게 떠올리는 거야말로 우리가 이 일을 시작하고 계속해서 이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