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림고개 살리려는 몸부림⋯춘천시는 자책골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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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림고개 살리려는 몸부림⋯춘천시는 자책골로 답했다

    [‘핫플’의 몰락] 하. 방치된 청년창업공간
    20억원 들이고도 원래 목적과 달리 사용
    원치 않은 인프라 공사에 개점 휴업
    상권에 부족한 콘텐츠 육성 고민해야

    • 입력 2024.02.22 00:09
    • 수정 2024.02.22 08:06
    • 기자명 권소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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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육림고개 상가 십여 곳에 ‘임대’ 현수막이 붙었다. 한때 ‘청년창업의 신화’ ‘춘천의 핫플(핫플레이스)’로 불렸던 곳이지만 최근엔 저녁 시간에 인적을 찾기도 어렵다. 춘천시가 예산을 투입해 청년몰을 육성하고 인프라를 개선했지만 결국 상권은 몰락했다. 상인들의 실질적인 요구와는 동떨어진 행정, 무책임한 일부 청년몰 상인들에 대한 관리 부재가 이어지면서다. 수십억원의 혈세는 허공으로 사라졌다. 육림고개의 현주소를 2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춘천 육림고개 상권이 급속도로 위축되는 과정에서 춘천시의 행정력 부족이 여실히 드러났다. 춘천시는 창업 지원금(28억원)만 받고 장사는 하지 않는 청년 상인들을 방치했을 뿐 아니라<‘핫플’의 몰락 상. 참조>, 청년창업공간 신축(20억원), 전선 지중화 공사(14억원) 과정에서도 연이은 자책골을 넣어 상권이 무너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결과 62억원이 넘는 시민 혈세가 허공에 흩어졌고, 전국적인 ‘핫플’이 될 수 있었던 육림고개 상권 위축으로 생긴 경제적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상권을 지키는 상인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춘천시의 무관심과 무대책에 속이 타들어 간다.

    청년몰 조성 사업 당시 그려진 육림고개 벽화. 2020년 당시 운영 중이던 가게의 절반 이상은 육림고개를 떠나거나 폐업했지만, 춘천시가 파악하고 있는 현황 자료는 전무하다. (사진=권소담 기자) 
    청년몰 조성 사업 당시 그려진 육림고개 벽화. 2020년 당시 운영 중이던 가게의 절반 이상은 육림고개를 떠나거나 폐업했지만, 춘천시가 파악하고 있는 현황 자료는 전무하다. (사진=권소담 기자) 

    ▶한산한 카페거리 중심엔 취업센터가 

    16일 오후 육림고개 정상부에는 ‘카페거리’라는 표지판 뒤로 ‘춘천시일자리지원센터’ 현수막이 걸린 3층짜리 신축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이 건물은 춘천시가 약사명동 도시재생뉴딜사업의 하나로 약 20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3층(연면적 552㎡)으로 2022년 9월 준공했다. 당초에는 육림고개 거리를 청년 기업가 육성 거점으로 삼는다는 계획이었다. 2020년 춘천시 도시재생과는 춘천시의회에 지역 청년들에게 소규모 창업 공간을 제공하고 창업 관련 교육, 컨설팅, 포럼을 열겠다고 보고했다. 기자재 구축과 프로그램 운영 등에도 10억원의 예산을 마련했다.

     

    육림고개 카페거리 조형물 뒤로 ‘춘천시일자리지원센터’ 현수막이 붙어있다. 센터는 지난해 12월부터 3층 공간을 사용하고 있지만, 당초 청년창업공간으로 기획된 2층 공간은 활용법을 찾지 못해 여전히 비어있는 상태다. (사진=권소담 기자)
    육림고개 카페거리 조형물 뒤로 ‘춘천시일자리지원센터’ 현수막이 붙어있다. 센터는 지난해 12월부터 3층 공간을 사용하고 있지만, 당초 청년창업공간으로 기획된 2층 공간은 활용법을 찾지 못해 여전히 비어있는 상태다. (사진=권소담 기자)

    하지만 이 건물은 당초 계획과 정반대로 현재 육림고개 상권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물이 됐다. 신축 공사가 시작될 때쯤부터 코로나 여파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며 당초 목적대로 건물을 사용하기 어려워졌다. 이 건물은 준공 이후에도 1년 이상 빈 상태로 방치됐다. 청년창업공간을 위탁 운영할 예정이었던 춘천시청년청은 지난해 운영비 예산이 전액 삭감되고 사무국이 운영을 종료하면서 사실상 해체됐다.

    이 건물은 결국 지난해 12월에서야 춘천시일자리지원센터 직원 4명이 3층에 입주하며 주인을 찾았다. 그러나 이 센터는 취업·구직 지원 기관으로 육림고개 상권을 중심으로 청년 기업가를 육성한다는 당초 목적과는 거리가 멀다. 안 그래도 한산한 카페거리 한가운데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 들어서면서 상권의 맥을 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민 다목적실 등으로 쓰일 예정이던 2층은 아직도 공간의 사용 용도를 확정하지 못해 비어있다. 춘천시 기업지원과 관계자는 “청년창업공간을 통해 취업과 창업이 한 번에 이어질 수 있어 육림고개에도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육림고개 중심 상권에서 청년창업공간으로 연결되는 지하 1층 출입구가 막혀있다. 이 건물의 지하 1층에는 상인들과 함께 쓰기 위한 화장실 공간이 넓게 마련돼있지만, 취재진이 방문한 지난 16일 오후에는 사용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사진=권소담 기자)  
    육림고개 중심 상권에서 청년창업공간으로 연결되는 지하 1층 출입구가 막혀있다. 이 건물의 지하 1층에는 상인들과 함께 쓰기 위한 화장실 공간이 넓게 마련돼있지만, 취재진이 방문한 지난 16일 오후에는 사용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사진=권소담 기자)  

    육림고개 상인들은 처음부터 상권의 알짜배기 자리에 춘천시가 관용 건물을 지은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비판한다. 육림고개가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전 음식점을 창업한 C씨는 “상권에 주차 공간이 부족하니 주차타워를 짓거나 아예 ‘차 없는 거리’를 조성해 달라고 건의했는데, 이 건물이 생기고 오히려 주차 공간도 줄었다”며 “춘천시가 보여주기식 성과를 내는 데만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상권 골든타임에 전선 지중화 공사로 ‘개점휴업’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6개월 가까이 이어진 전선 지중화 작업이 두 번째 자책골이었다. 춘천시가 한국전력과 업무협약을 맺고, 예산 14억원을 들여 육림고개 500m 구간에 관로를 매설하고 전신주를 뽑았다. 이 시기는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육림고개를 다시 부흥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 공사 근로자와 차량으로 거리가 막히며 남아있던 점포들이 사실상 개점휴업 할 수밖에 없었다.

     

    지중화 공사 당시 육림고개 상권 모습. 좁은 도로에서 장기간 공사가 이어지면서 이 기간 상점들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사진=독자 제공)
    지중화 공사 당시 육림고개 상권 모습. 좁은 도로에서 장기간 공사가 이어지면서 이 기간 상점들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사진=독자 제공)

    2016년 창업 이후 육림고개의 터줏대감 역할을 해온 어쩌다농부의 경우, 지중화 공사 이후 주말에 찾아오는 외지 손님이 크게 줄었다. 어쩌다농부를 운영하는 김은희 더티파머스 이사는 “공사 기간 예고 없이 전기가 끊겨 냉장고에 보관했던 식재료를 버린 일도 있다”고 말했다.

    육림고개의 상인들은 춘천의 경리단길이 될 수 있었던 이곳에 춘천시가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무너뜨린 데 대한 원망이 높다. 그러나 춘천시는 육림고개의 상황을 나 몰라라 하는 중이다. 춘천시는 청년몰 사업으로 지원금을 받은 후 현재 남아있는 상인들 수와 휴‧폐업률, 공실률 등을 묻는 본지 질문에 “모른다”고 답했다. 

     

    춘천시가 육림고개에 투자한 굵직한 사업 예산만 62억원에 달한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춘천시가 육림고개에 투자한 굵직한 사업 예산만 62억원에 달한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이런 상황에서도 상인들은 육림고개 상권을 되살리기 위해 피땀을 흘리고 있다. 주차 공간 부족 등의 불편은 옛 춘천교육지원청 부지를 이용하면 된다며 ‘육림고개 알리기’에도 나섰다. 소매상점을 운영하는 D씨는 “각자의 노력이 상권을 다시 살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밤늦게까지 일하고 있다”며 “일부 청년 상인들의 일탈과 지자체의 관리 부재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남아있는 상인들이 상권 부활을 위해 고심하고 있으니 지역 소비자분들이 많이 찾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육림고개를 찾은 관광객과 소비자들이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은희 더티파머스 이사는 “유동 인구가 모이면 자영업자들은 자연스럽게 상권으로 몰려든다. 지자체의 역할은 주말에 춘천을 찾은 관광객들이 육림고개에서 먹고, 놀고,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MS투데이는 앞으로도 육림고개 상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상권을 살리기 위한 방안과 이를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 보도하겠습니다. 관련 제보를 기다립니다. ksodamk@mstoday.co.kr

    권소담 기자 ksodamk@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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