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 임대⋯‘ 육림고개 청년몰,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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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대, 임대⋯‘ 육림고개 청년몰,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핫플’의 몰락] 상. 육림고개 청년몰, 그 이후
    청년 상인의 무책임, 손 놓은 춘천시
    문 여는 식당 손에 꼽아, 인적 드물어
    젠트리피케이션 심화, ‘임대’ 현수막

    • 입력 2024.02.15 00:09
    • 수정 2024.02.16 08:42
    • 기자명 권소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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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육림고개 상가 십여 곳에 ‘임대’ 현수막이 붙었다. 한때 ‘청년창업의 신화’ ‘춘천의 핫플(핫플레이스)’로 불렸던 곳이지만 최근엔 저녁 시간에 인적을 찾기도 어렵다. 춘천시가 예산을 투입해 청년몰을 육성하고 인프라를 개선했지만 결국 상권은 몰락했다. 상인들의 실질적인 요구와는 동떨어진 행정, 무책임한 일부 청년몰 상인들에 대한 관리 부재가 이어지면서다. 수십억원의 혈세는 허공으로 사라졌다. 육림고개의 현주소를 2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여기가 육림고개 맞아? 사람도 하나도 없고 문은 다 닫았는데?”

    6일 오후 6시30분 춘천시 죽림동 일대. 서울에서 온 20대 여성 관광객 3명이 몇년만에 다시 찾은 육림고개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대부분 가게가 문을 닫은 상태였고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몇 없었다. 이날 작은 점포 건물 30여 동이 들어선 육림고개 상권에서 문을 연 식당은 6곳뿐이었다. 이들은 결국 “유령이 나올 것 같아 무섭다”고 중얼거리고는 택시를 불러 유명 닭갈빗집으로 향했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청년몰의 모범사례’이자 전국적 핫플레이스로 꼽혔던 육림고개 상권이 급격히 쇠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성기 20곳 가까운 청년몰 창업자들로 활력이 넘쳤던 거리는 이날 현재 절반 이상이 공실이다. 물리적으로 사업장을 유지하고 있는 곳 중에서도 다수는 사실상 휴업 중이다. 춘천시가 청년몰 조성과 임대료 지원, 인프라 구축 등에 쏟아부은 예산 수십억원은 흔적도 찾기 어렵다.

     

    2010년대 후반 육림고개의 모습. 당시 육림고개는 청년 상인들의 점포를 중심으로 상권이 부흥하며 전국적인 핫플레이스로 꼽혔다. (사진=춘천시)
    2010년대 후반 육림고개의 모습. 당시 육림고개는 청년 상인들의 점포를 중심으로 상권이 부흥하며 전국적인 핫플레이스로 꼽혔다. (사진=춘천시)

     

    ▶‘춘천의 경리단길’에서 ‘유령 상권’으로

    춘천의 원도심 상권인 육림고개는 1980년대 전성기 이후 오랫동안 쇠퇴해 가던 곳이다. 그러다 2010년대 후반부터 춘천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저렴한 임대료에다 춘천시 지원까지 더해져 청년 창업자들이 모여든 덕이었다. 골목길 특유의 감성에 경양식·전집·공방·브런치 카페가 인기를 끌며 ‘춘천의 경리단길’이란 별명도 붙었다. 당시에는 도시재생과 청년몰의 선도 사례로 전국에 이름을 알렸다. 2018년 공영방송의 유명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육림고개를 조명하기도 했다. 2019년 당시 춘천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육림고개 상권의 주말 일평균 방문객은 2000명, 점포당 일 매출액은 55만~80만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2024년 현재 육림고개는 오히려 ‘몰락한 골목 상권’의 대표 사례로 남을 판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2020년 8월 당시 육림고개 청년몰 점포는 18곳이었다. 하지만 2024년 2월 현재 같은 주소에서 동일한 업체명으로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곳은 8곳뿐이다. 나머지 10곳은 폐업하거나 다른 상권으로 이전했다. 

     

    수년 전 그려진 육림고개 상권의 그림 지도. 지도에 소개된 대부분의 업체가 현재 폐업하거나 다른 상권으로 이전했다. 안내판 위 행인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사진=권소담 기자)
    수년 전 그려진 육림고개 상권의 그림 지도. 지도에 소개된 대부분의 업체가 현재 폐업하거나 다른 상권으로 이전했다. 안내판 위 행인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사진=권소담 기자)

    남아있는 점포들도 오래 버티기 어려워 보인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상권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육림고개 상권 내 요리주점 업종 3곳의 지난해 11월 월평균 매출액은 645만원으로 춘천 내 같은 업종 평균(1689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핫플을 상징하는 업종인 ‘카페’는 지난해 8월까진 7곳을 유지했으나, 11월 들어 5곳으로 줄었다. 매출(1193만원) 역시 지역 평균(1777만원)을 밑도는 수준이다.

    육림고개에 대한 관광객들의 관심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네이버 데이터랩을 통해 ‘육림고개’ 검색어 통계를 분석한 결과, 2018년 11월 당시 100 수준이었던 검색량은 2024년 1월 기준 3으로 급락했다. 코로나19 이전 육림고개 상인회에 속한 이들만 50명이 넘을 정도로 상권이 번성했지만, 현재 상인회 구성원으로 남아있는 이들은 20명 남짓이다.

     

    육림고개 상권의 업종별 월 매출 현황. 지역 평균 매출액과 비교해 한참 못 미치는 액수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육림고개 상권의 업종별 월 매출 현황. 지역 평균 매출액과 비교해 한참 못 미치는 액수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지원금 헌터’ 청년 사장님들부터 내뺐다

    시로부터 지원금 받은 청년몰의 젊은 사장님들이 지속해서 영업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일부 상인들의 임시 휴업이 반복되면서 언젠가부터 온라인상에 ‘육림고개에는 문 닫은 가게가 많다’는 후기가 늘었고, 외부 관광객의 발길이 점점 끊겼다. 청년몰 상인은 자치 규약에 따라 ‘일 9시간 운영, 주 1회 정기 휴일, 임시 휴무 시 3일 전까지 운영위원회와 협의’ 등을 지켜야 했다. 예산으로 임대료를 지원받는 대신 실천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였다. 어길 시 벌점을 부과하고 상벌 기준에 미달하면 퇴출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강제성 없는 규약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일부 점포가 ‘지각 오픈’과 빈번한 휴업을 반복하자 다른 상인들이 항의해 봤지만, 춘천시는 “규약을 지키지 않아도 실질적으로 제재할 수단이 없다”며 방치했다. 코로나 시기와 겹치면서 육림고개를 찾는 발길은 급격히 줄었고, 코로나가 끝난 이후로도 전혀 회복되지 않았다. 쇠퇴하는 상권에서 가장 먼저 발을 뺀 이들은 낮은 비용으로 창업에 도전했던 ‘청년몰’ 소상공인이었다. 2022년 청년몰 사업이 끝나면서 마침내 육림고개는 성장 동력을 완전히 잃었다.

     

    육림고개의 한 빈 상가에 ‘임대 문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권소담 기자)
    육림고개의 한 빈 상가에 ‘임대 문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권소담 기자)

    육림고개에 진지하게 청춘을 걸었던 창업주들은 ‘지원금 사냥꾼’도 문제지만 이를 방치한 춘천시가 더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임대료 지원이 끝난 이후에도 육림고개에서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A씨는 “특정 업체가 지원금만 챙기고 책임감 없이 영업해도, 춘천시가 실질적으로 이들을 제재할 근거도, 의지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춘천시는 문제를 일으킨 업체는 지원 기간 종료 후 다른 지원사업에 선정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청년몰을 나간 이후에도 춘천시 산하 기관의 다른 창업 지원사업에 선정된 곳이 있다”고 말했다.

    육림고개에서 공방을 창업했으나 1년 전 춘천 내 다른 상권으로 옮겨간 청년 창업가 B씨는 청년몰 사업 지원 이후 건물 임차 문제로 춘천시와 건물주 간 소통이 되지 않자, 결국 이전을 택했다. B씨는 “임대료가 저렴하긴 했지만, 상권에 장점이 없고 공간도 협소했던 육림고개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춘천시도 ‘육림고개 청년몰 지원 사업’에 대해 사실상 실패를 인정하지만, 실패 원인을 건물주들의 임대료 인상 탓으로 돌린다. 지난해 5월 홍문숙 춘천시 경제진흥국장은 시청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손님이 몰리자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려받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으로 결국 청년들이 육림고개를 떠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기적인 계획도 없이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혈세를 낭비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육림고개에 청년몰을 유치하고 청년 창업을 중심으로 상권을 키워보겠다던 춘천시가 관련 사업에 쏟아부은 예산은 28억원에 달한다.

    ※하편 예고 : MS투데이는 육림고개 상권 활성화 사업에 투입된 예산 내역에 대해 보도할 예정입니다. 관련 제보를 기다립니다. ksodamk@mstoday.co.kr

    권소담 기자 ksodamk@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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