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경의 동의보감] 병명은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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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경의 동의보감] 병명은 중요하지 않다

    • 입력 2024.02.06 00:00
    • 수정 2024.02.06 17:28
    • 기자명 김도경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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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경 한의사
    김도경 한의사

    한의원에 찾아오는 환자 대부분은 제게 병명을 말씀해 주십니다. 허리가 아픈 분은 “정형외과에 갔더니 4번, 5번 디스크가 있다고 해요”라며 ‘4번, 5번’을 강조하시는 분들도 있고 내과 갔다 오신 분들은 “검사했더니 역류성 식도염이래요”라고 하시는 등 병명을 콕 짚어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병명이 불편함이나 고통의 원인인 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한의사 입장에서는 크게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병명보다는 오히려 원인이 더 중요합니다. 디스크·식도염 모두 어떤 원인에 의해 나타나는 하나의 증상이기 때문에 그 원인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한의학에도 병명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역류성 식도염은 탄산증 혹은 조잡증이라 부르며 얼굴 여드름은 면포창, 감기는 상풍증, 비염은 비구 혹은 비연, 독감은 온역, 불안증은 심계, 정충증, 공황장애는 단기증 등으로 부릅니다. 하지만 병명이 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으며 왜 그런 증상이 발생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얼굴에 난 여드름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여드름은 지루성 피부염, 모낭염, 아토피 등등 다양한 병명을 가지고 있지요. 직접 짜거나 연고를 바르고 피부관리를 받는 등의 일반적인 치료를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여드름의 원인은 아주 다양합니다.
     

    여드름이라는 한 가지 증상에도 여러가지의 원인이 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여드름이라는 한 가지 증상에도 여러가지의 원인이 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 음주 과다로 생기는 여드름
    술은 열독으로, 열은 상승하는 성질이 있어 얼굴에 열감과 더불어 여드름을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흔히 술을 마시면 술이 오른다고 하는데 열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체내에 열이 오랫동안 쌓였다가 올라오면 화산이 터지듯이 안면 피부가 빨갛게 곪거나 염증이 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짜고 연고를 바르는 등 피부 관리를 받아 임시로 가라앉힐 수는 있지만 술을 끊지 않으면 낫지 않습니다. 황련해독탕이나 승마갈근탕, 대금음자 같은 열독을 푸는 한약으로 원인 치료를 해야 합니다.

    ● 위장에 열이 많아 생기는 여드름
    얼굴 병은 위장병이라는 한의학 이론이 있습니다. 위장에 열이 많으면 얼굴에 여드름이 생길 수 있는데 주로 폭식이나 식탐이 많은 체질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이 체질은 뭐든지 맛있게 잘 먹고, 배가 고플 때는 잠을 못 자기도 합니다. 또 더위를 많이 타고 땀도 많이 흘립니다. 이 경우는 과식, 폭식을 피하고 맵고 기름진 음식, 밀가루 음식을 줄이지 않으면 잘 낫지 않습니다. 위장에 열을 풀어주는 한약을 써서 근본 치료를 해야 합니다. 

    ● 자궁이 나빠 생기는 여드름
    자궁의 문제로 여드름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특히 유산이나 출산 후 뒷마무리를 잘못하면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자궁이 나빠 생기는 여드름은 광대뼈 주변이나 입과 턱 주변에 많이 발생하는데 한의학에서는 여드름이 나타나는 부위도 원인을 찾는 데 참고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가미소요산이나 온경탕 같은 자궁 기능을 도와주는 한약을 처방하여 치료합니다.

    ● 혈허유화(血虛有火)로 인한 여드름
    혈허유화란 체력이 약한 사람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스스로 피를 말리는 경우를 말합니다. 주로 예민하고 늘 근심, 걱정이 많은 체질의 사람들이 해당하지요. 평소 깊은 잠을 못 자는 경우가 많습니다. 배설 기능도 좋지 않아 방광염이나 변비로 고생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럴 때는 사물탕 같은 한약으로 피를 불려주고 열(火)은 식혀줘야 변비도 풀리고 잠도 잘 자서 여드름이 나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여드름이라는 한 가지 증상에도 다양한 원인이 있고 그 원인 만큼 치료법도 여러 가지입니다. 변비가 있고 잠을 못 자고 여드름도 심하면 내과, 신경과, 피부과를 모두 가야 할 것 같지만 한의학적 관점에서는 한가지 원인으로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명에 따라 치료법이 정해지지는 않습니다. 병명보다는 병의 원인을 잘 찾고 그에 따른 올바른 섭생을 잘하는 것이 올바른 치료임을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김도경 필진 소개
    - 희망동의보감 한의원 원장
    -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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