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센터장의 작은 도시] 커먼즈필드의 사람들 : 나풀나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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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급 센터장의 작은 도시] 커먼즈필드의 사람들 : 나풀나풀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 입력 2023.11.13 00:00
    • 기자명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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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어린 아들과 산을 오르던 아버지가 나무밑 그늘에 나지막히 서있는 버섯들 중에 하나를 가리키면서 경고했다. “아들아, 이건 독버섯이니 절대 먹으면 안된다!” 독버섯이라고 지목된 버섯이 충격을 받고 쓰러진다. ‘내가 저렇게 예쁜 아이를 죽일 수도 있는 존재라니!’ 옆에 나란히 있던 다른 버섯이 깊게 상심한 이웃을 위로한다. “네가 함께 있어서 버티기 어려운 비와 더위와 바람도 견딜 수 있었어. 저건 순전히 인간들의 논리야. 넌 누구를 죽이기 위해 태어난 독버섯이 아니란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친구로 태어난 거라구!”

    프레데리크 반 에덴의 「어린 요하네스」에 나오는 버섯의 우화라는데, 나는 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강연에서 얻어 들었다. 절대 먹으면 안되는 ‘독버섯’은 ‘인간의 이유’로 만든 의미이고 모진 환경을 같이 겪어내는 ‘친구’는 ‘자연의 이유’로 만든 의미이다. 노(老) 교수는 모든 존재는 스스로의 이유와 의미를 다시 발견할 수 있고 그래야 자유로울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이유와 의미를 잘 찾지 못하는 가까운 존재를 꼽자면 풀(grass)도 그렇다고 한다.

    사전은 풀을 뿌리와 연결된 줄기가 나무질이 아닌 초본식물이라고 정의하는 데 우리는 모든 초본식물을 풀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인삼이나 토마토는 목재로 구성되지 않는 식물이지만 풀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무엇보다 풀은 돌보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야 한다. 담장 밑에서 보도블럭 틈에서 논밭 작물 사이에서 저절로 자라 경관을 망치고 작물의 생장을 방해하고 벌레를 끌어들이는 존재로 인식된다. 그래서 풀을 잡초라 부르기도 하는데 인간의 이유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리 보면 저절로 나온 작은 풀들이 덮인 땅은 토양을 비옥하게 하게 물을 머금어 큰 비나 홍수에도 땅이 무너지지 않게 한다. 우리가 호흡하는 산소를 만들어 공기를 정화하고 우리가 배출하는 탄소의 3분의 1을 머금는다고 한다. 풀은 자연의 이유를 따른다.

    커먼즈필드에는 춘천의 청년 농부들이 만든 비영리스타트업 ‘나풀나풀’이 있다. 작물의 수확량을 늘리고 재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현대 농업과 대다수 농부들의 과제일 것이다. 나풀나풀은 수확량보다 다양성에 주목하고 효율성보다는 의미와 관계를 들여다 본다. 데이, 도라 서로 세 명의 나풀나풀 농부는 풀의 가치와 의미 그리고 아름다움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자신들의 사명이라고 말한다. 나는 구분하기도 어려운 녹색 줄기들을 꺼내놓고 소리쟁이, 꽃마리, 광대나물, 쑥부쟁이, 명이주, 강아지풀, 민들레, 얼치기완두 생소한 이름으로 꿰어준다. 신기하다. 이름을 알게되면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제는 그냥 녹색이 아니라 각자의 색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풀들의 이야기로 담아낸 만든 들풀 타로카드도 재밌다. 풀들이 어떻게 삶을 끈질기게 유지하는지, 풀들이 어떻게 불운을 피하기 위해 위장하는지, 풀들이 어떻게 사랑하고 질투하는지 아는가, 오늘의 운세를 작은 풀들에게 맡겨보자. 절대로! 절대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다시 결혼식을 해야 한다면 풀웨딩을 하겠다. 서면에서 나온 풀로 만든 드레스를 입고 북산면에서 나온 밀랍 담금초로 화촉을 밝히고 덕두원에서 나온 꽃으로 부케를 만든 결혼식을 나풀나풀은 기획한다.

    우리는 풀에 무심했고 무정하다. 기후변화를 막겠다고 나무를 심으면서도 풀은 뽑아내고 일회용 플라스틱을 재생한다면서 풀을 짖밟는데는 주저하지 않는다. 누구가는 존재의 이유가 없어 걷어내는 잡초들에게 그들은 이름을 불러 이유를 만들어 준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우리에게로 와서 풀이 된단다. 나풀나풀은 시인인가?

     

    ■ 박정환 필진 소개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전) 행정안전부 정부혁신추진협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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