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일기] 바나나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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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일기] 바나나우유

    • 입력 2023.09.01 00:00
    • 수정 2023.09.02 00:10
    • 기자명 최정혜 춘천일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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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혜 춘천일기 대표
    최정혜 춘천일기 대표

    올해로 춘천일기를 연 지 5년이 되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일단은 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에 손뼉을 쳐 주고 싶다.

    2021년까지 여러 정부 지원사업과 용역사업으로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낸 반면, 작년과 올해는 많은 일을 벌이지 않았다.

    어떤 일을 그냥 무작정 일단 시작하고 보는 내 성향과 달리 사업을 어느 정도 진행해나가면서, 이거 해봤자 뭐 되겠어? 그동안 나를 움직여 온 재미와 행복, 의미보다는 실질적인 이득과 수익을 더 따져가며 보수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결국은 모두 다 내 선택이었으니까.

    지난 5년간 평생 다 만나지 못할 사람들을 만났다. 춘천에 찾아오는 손님들도 만났고, 공주, 지리산, 제주 다양한 곳들을 다니면서 그곳의 사람들도 만났다. 그중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바로 스토어팜 고객들.

    결론부터 말하면, 스토어팜을 닫아버렸다.

    주문 숫자를 잘못 보고, 4개 보내야 할 제품을 2개 보낸 게 실수였다. 매장 전화 연결이 잘되지 않자 구매자는 한밤중에 메시지로 온갖 저주를 퍼부었다. 제품 반품에 따른 환불은 물론, 두 개만 받은 택배비가 아까우니 택배비까지 돌려달라는 황당한 요청에도 그냥 따랐다.

    9900원짜리 자석, 그거 두 개 팔다가 생긴 일이다. 사실 별거 아닌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일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상당한 회의감을 갖게 했다. 춘천이 좋아서,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만들고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소소한 기쁨으로 살아왔는데, 더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로 스토어팜을 닫았고, 계약 기간이 만료된 육림고개 매장도 닫았다. 제품을 사고 싶다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도, 매장 이전 준비 중이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최대한 마주치는 걸 피했다. 도대체 자석이 뭐라고, 전화와 디엠, 온갖 문의가 쏟아졌다. 더는 택배 판매는 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각오로 지내던 중 다른 번호로 자석을 사고 싶단 전화가 왔다. 쌓아둔 재고도 마음이 무겁던 차라 그날은 그냥 택배 판매를 진행했다. 그분이 어딘가에 마그넷을 득템했다고 올리셨는지, 그걸 보고 다른 분이 또 연락을 주셨다.

    다른 곳에 가는 길에 춘천에 들러 마그넷을 사고 싶다는 문의였는데, 그냥 그럴 바엔 차라리 택배로 보내드리는 게 낫겠다 싶어 안내 메시지를 보냈다.

    “5만3500원 입금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받은 메시지….

    “5만5000원 보냈습니다. 마그넷 사러 다니는 게 쉽지 않은데 직접 보내주신다니 너무 감사드려요. 날도 더운데 편의점에서 음료수 꼭 드세요.”

     

    나는 택배를 보내고, 바나나우유를 하나 사 먹었다. (사진=최정혜)
    나는 택배를 보내고, 바나나우유를 하나 사 먹었다. (사진=최정혜)

    나는 택배를 보내고, 바나나우유를 하나 사 먹었다. 나를 오랫동안 멈추게 만든 미움이, 누군가의 다정함으로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택배 포장을 하며, 다른 자석도 하나 더 담고 손편지도 썼다. 다음에 꼭 춘천에 놀러 오시라고. 그땐 우리가 만든 토마토 맥주도 한 잔 꼭 대접해드리겠다고.

    사랑은 연약하고, 미움은 힘이 세다고들 한다. 아니, 틀렸다. 사랑은 결코 미움에 지지 않는다. 우리를 일으키는 건 결국, 다정함이다.

    우리가 10년 후에도 살아남게 된다면, 이 바나나우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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