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의 부동산 투시경] 집이 투자 자산화되면 우리 삶도 조마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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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갑의 부동산 투시경] 집이 투자 자산화되면 우리 삶도 조마조마

    • 입력 2023.08.28 00:00
    • 수정 2023.08.28 13:53
    • 기자명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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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서울 아파트시장은 가격이 수시로 출렁이는데, 왜 지방 단독주택 시장은 부침이 거의 없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영국의 애널리스트인 조지 쿠퍼 박사의 견해에 따르면 두 시장 성격이 달라서다. 쿠퍼 박사는 시장을 상품시장과 자산시장으로 분류한다. 주택에서 공간시장과 유사한 특성을 갖는 상품시장에서는 가격이 올라가면 수요는 줄어들고, 가격이 하락하면 수요가 늘어난다. 정상적인 재화가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자산시장에서는 정반대다. 가격이 오르면 추가 상승을 기대한 투자자들이 유입되면서 수요가 늘고, 가격이 하락하면 수요가 줄어든다. 이 경우 자산시장은 기펜재(Giffen Good, 소득효과가 대체효과보다 커 수요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재화) 성격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쿠퍼 박사는 상품시장이 구조적으로 안정을 찾아가는 시스템이지만, 자산시장은 균형 상태에 이르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호황-불황 사이클을 반복하는 경향을 띤다고 본다.

    또 상품시장에서는 거래 과정에서 하나의 가격만 드러난다. 생산자가 가격을 정해 제품 표지에 명기해 놓는다. 물론 소비자들이 장바구니에 담는 가격은 각자 다를 수 있다. 만약 할인점에서 가격이 희망 소비자가격보다 싸다면 그것은 유통업자들이 중간이윤을 줄여 염가에 팔기 때문이다. 애초의 생산자가 원하는 한 가지 가격이 변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소비자(매수자)는 생산자가 일방적으로 제시한 가격이 마음이 들면 사고 그렇지 않으면 안 사면 그만이다.

    하지만 자산시장에서 가격은 일정한 표시가 없다. 매수자와 매도자 간 원하는 가격이 서로 다르므로 브로커가 나서 협상하게 한다. 이 협상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가격은 변동하기 마련이다. 가령 시장 기본가치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도 사려는 사람이 100명이고 팔려는 사람이 1명이면 가격은 급등한다. 반대로 사려는 사람이 1명인데 팔려는 사람이 100명이면 폭락할 것이다. 그래서 자산시장은 잠재적으로 불안정성을 안고 있는 시장구조다.

    상품시장에서 인간의 소유 욕망은 기본적으로 제한적이다. 물건의 가치를 소비 혹은 사용(이용)하는데 두기 때문이다. 쓸 만큼 사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한 비축하려 하지 않는다. 배가 부르면 더는 음식에 입을 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예를 들어 집안에서 쓰는 냉장고가 대표적인 상품에 속하는 것이다. 아무리 큰 부자라도 집안에 냉장고를 서너 대 가진 사람은 드물다. 굳이 냉장할 공간이 작으면 더 큰 냉장고로 교체하거나 김치 냉장고, 와인 냉장고 같은 기능성 냉장고를 살 것이다. 양말이나 속옷 역시 소유 욕망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냉장고와 비슷한 상품시장 성격을 갖는다. 수천억대의 자산가인 재벌 회장도 안방 장롱 속에 넣어둔 양말은 20~30켤레를 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산시장이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인간의 소유 욕망이 무한대가 된다. 필요 이상으로 더 갖고 싶고 쌓아두려고 한다. 적어도 하나 이상 더 갖고 싶은 것이다. 바로 상품시장과 자산시장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하나 더 갖고 싶은 거’로 판가름한다. 자산시장에서는 목적도 그 자체의 소비보다는 가격의 변화율을 기대하고 산다.

    서울 아파트시장이 요동을 치는 것은 그만큼 자산시장 성격이 강한 게 큰 요인이다. 반대로 지방 주택시장 변동성이 크지 않는 것은 상품시장 성격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자산시장 성격이 강하면 상승기에는 쉽게 가격이 부풀려지지만,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흔들린다.

    이번 미국발 고금리 쇼크로 서울‧수도권 아파트값이 지방보다 더 떨어졌다. 집이 자산화되면 가계도 안정적인 관리가 어려워진다. 또 주택시장이 자산시장과 비 자산시장으로 분화되면서 양극화가 가속한다.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간의 계층 갈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대도시를 중심으로 가속하는 주택시장의 자산화를 그리 반길 일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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