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군인·교사·간호사·주부 다 모였다⋯춘천시민극단 창단 첫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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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원·군인·교사·간호사·주부 다 모였다⋯춘천시민극단 창단 첫 공연

    춘천 시민극단 봄내 25일 춘천서 창단 첫 공연
    최고령 76세 등 총 22명, 직업과 나이 다양해
    강원 유일 팀으로 대한민국 시민연극제 참여

    • 입력 2023.08.24 00:00
    • 수정 2023.08.25 08:01
    • 기자명 한승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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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시민극단 봄내가 오는 25일 모텔 판문점 공연을 앞두고 연습에 한창이다. (사진=한승미 기자)
    춘천 시민극단 봄내가 오는 25일 모텔 판문점 공연을 앞두고 연습에 한창이다. (사진=한승미 기자)

     

    지난 20일 오후 4시. 우렁찬 노랫소리가 춘천 옥천동 봄내극장을 흔들었다. 큰 목소리로 열창하는 이들은 흰 머리의 시니어세대부터 젊은이들까지 다양했다. 목이 찢어져라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바닥에 주저앉아 절절한 몸짓을 표현하는 등 각자 진지한 모습이었다. 

    춘천 시민들이 연극 연습을 위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이들은 지난 5월 공식 창단한 시민극단 봄내 단원들이다. 이들은 25일부터 이틀간 진행되는 춘천연극제 초청 공연을 위해 연습에 한창이었다.

    공연작은 ‘모텔 판문점’으로 지난해 극단이 20분 분량으로 선보인 작품을 60분 분량으로 늘렸다. 작품은 판문점을 남북의 젊은 청춘들의 해방구로 설정해 이들이 사랑을 나눈다는 코믹한 내용이다. 군사분계선도 무시한 이들의 사랑이 휴전선까지 해체한다는 전개를 통해 한반도 유일 분단도인 강원특별자치도에서 분단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다. 

     

    시민극단 봄내는 춘천연극제의 지원으로 움직임, 보컬, 화술 등 다양한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한승미 기자)
    시민극단 봄내는 춘천연극제의 지원으로 움직임, 보컬, 화술 등 다양한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한승미 기자)

     

    이들은 공연이 임박한 만큼 매일 3~4시간씩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극단 창단의 모태가 된 춘천아카데미를 운영했던 춘천연극제는 움직임, 보컬, 화술 등 분야별 전문 강사들이 이들을 교육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단원은 모두 22명으로 최고령 단원은 76세, 막내는 31세다. 직업도 다양하다. 언론인, 춘천시 공무원, 군인, 목회자 출신부터 전·현직 사회복지사, 교사, 간호사, 주부 등 다채롭다. 연결고리가 없던 이들은 연극을 매개로 매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작은 규모의 작품에서 22명 전원이 모두 무대에 오르는 것은 보기 드문 경우다. 연출을 맡은 엄윤경 춘천연극제 사무국장은 전원이 모두 한 번씩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신경썼다.

     

    시민극단 봄내 단원들이 움직임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한승미 기자)
    시민극단 봄내 단원들이 움직임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한승미 기자)

     

    각자 다른 인생을 살아온 이들은 극단에 가입한 이유도 제각각이다.

    강원고 교사인 이진만(54) 씨는 학생들 교육을 위해 극단에 들어왔다. 올해 학교의 연극부 지도교사를 맡게 됐는데 연극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가 부족했다.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직접 연극 무대에 서며 훈련 방법까지 공부하고 있다. 

    연극으로 새로운 활력을 얻고 있는 단원도 있다. 작품 주인공인 조현아(42) 씨는 진통제와 영양제를 맞으면서까지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해 암이 재발한 조 씨는 전원주택 계약 직전까지 갔으나 연극을 시작하면서 모두 철회했다. 차라리 하고 싶은 것을 다하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자신에게 더 잘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극은 남편 덕분에 시작했다. 어릴 때 연극이 하고 싶었다는 조 씨의 말을 새겨들은 남편 전해진(43) 씨가 춘천연극아카데미에 신청서를 냈고, 극단 가입까지 이어졌다. 이후 전 씨도 함께 극단에 들어왔고 이번 작품에서 남녀 주인공으로 열연한다.

    조 씨는 “솔직히 ‘연극 때문에 산다’까지는 아니지만 평범한 삶을 위한 불씨가 되고 있다. 오히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연극을 해야 하니 체력을 좀 더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마음을 놓지 않는 계기가 됐다”며 “부담도 되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지만 무대에 섰을 때 직업으로서 얻는 성취감과는 차원이 다른 그 이상의 느낌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영조(사진 왼쪽) 씨를 비롯한 단원들이 무대 동선을 맞춰보고 있다. (사진=한승미 기자)
    김영조(사진 왼쪽) 씨를 비롯한 단원들이 무대 동선을 맞춰보고 있다. (사진=한승미 기자)

     

    무대를 향한 이들의 열정은 프로 못지 않은 모습이다. 

    김영조(76) 씨는 최고령 단원이지만, 단 한 번도 연습에 빠진 적이 없는 유일한 단원이다. 김 씨는 춘천 시니어극단 씨밀레를 운영하고 있는데 단원들에게 교육 내용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 하나도 빠지지 않고 알려주기 위해 매일 수업을 들으며 필기하고 있다. 초등학교 교장 출신답게 단원들이 소란스러우면 호통을 치며, 단속하는가 하면 공연장 청소에도 솔선수범하는 등 극단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김 씨는 “과연 내 나이에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도전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하게 됐다”며 “친구들이 왜 늙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비결이 연극이라고 할 정도로 삶의 활력이 되고 있다”고 했다. 

     

    기자 역할을 맡은 손지민 씨가 직접 제작한 카메라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한승미 기자)
    기자 역할을 맡은 손지민 씨가 직접 제작한 카메라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한승미 기자)

     

    아이 넷 다둥이 엄마 노현진(39) 씨는 공연장에서만큼은 완전한 배우로 분한다. 지난해 12월에 막내 넷째를 출산한 노 씨를 위해 연습 시간에는 남편이 육아를 하고 있다. 

    단원들은 가족, 친구, 지인 등이 노래와 대사를 외울 정도로 연습실 밖에서도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주변인들의 응원도 뜨겁다. 연극 소품을 만들기 위해 친구가 모형 카메라를 제작을 돕고, 군인 남편이 역할에 맞는 군복을 구입해주기까지 한다.

     

    시민극단 봄내 단원들이 공연을 앞두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한승미 기자)
    시민극단 봄내 단원들이 공연을 앞두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한승미 기자)

     

    극단 봄내는 춘천 공연에 이어 제주도에서 열리는 제2회 대한민국 시민연극제에서도 공연에 나선다. 전국 50여개 팀이 예선에 참여, 실연을 펼치는 최종 7개 팀에 포함됐다. 강원특별자치도의 유일한 참가팀으로 내달 3일 오후 7시 30분 제주도문예회관 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신준철 극단 봄내 단장은 “창단 이후 첫 공연에 이어 전국 무대에도 오르게 되면서 더욱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며 “열정이 가득한 단원들로 구성된 시민극단이 춘천에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승미 기자 singme@mstoday.co.kr]

    [확인=김성권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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