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교는 추억으로 남겨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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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교는 추억으로 남겨야한다

    [칼럼] 김성권 콘텐츠뉴스국 부국장

    • 입력 2023.08.24 00:00
    • 수정 2023.08.25 00:06
    • 기자명 김성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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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8월, 경북 청도에서 계곡을 건너던 차량이 급류에 쓸려 내려가 일가족이 숨지는 사고가 났다. 사고가 발생한 곳은 하천 바닥에서 1m 높이의 콘크리트 다리, 비가 오면 물에 잠기는 이런 시설물을 보통 ‘세월교’라고 부른다.

    다리 이름 ‘세월’은 씻을 세(洗)와 넘을 월(越)을 뜻하는 한자어다. 물이 불어나면 다리를 넘쳐 흐른다는 의미다. 어원을 보면, 정식 명칭은 아니지만 세월교는 이런 형태의 다리를 일컫는 대명사 정도로 쓰인다. 원형관이 콧구멍을 닮았다고 해서 콧구멍 다리, 하천이 범람하면 물에 잠긴다고 해서 잠수교로도 불린다.

    전국에 이런 세월교는 수천 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터넷에 검색만 해봐도 반여동(부산), 오산천(경기), 무심천(청주) 등 전국 곳곳에 세월교가 있다. 워낙 많아 관리가 쉽지 않다보니 장마철이면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대표적인 시설물로도 꼽힌다.

    춘천에서는 세월교가 꽤 유명한 다리다. 1967년 소양감댐 건설 당시 동면 지내리와 신북읍을 연결하기 위해 공사용 임시교량으로 설치됐다. 전국에 비슷한 다리는 많지만, 유명 관광지인 소양강댐 아래에 위치해 인기가 더했다. 댐 수문이 열리면 물이 교량을 넘어 세월교라는 이름을 얻었다.

    춘천시민들에게 세월교는 특별하다. 한여름 밤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강바람을 즐기거나, 돗자리를 깔고 다리 위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던 추억의 공간이다. 겨울에는 빙어 낚시터로, 비가 온 뒤 피어오르는 자욱한 물안개는 사진 촬영의 명소가 될 만큼 관광지로도 사랑받았다.

    그랬던 세월교가 철거될 위기를 맞았다. 5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노후가 진행되면서 콘크리트가 부서지고, 철근이 드러날 정도 낡았기 때문이다. 3년 전 소양강댐이 수문을 개방했을 때는 거센 물살에 난간이 파손되고, 도로 아스콘까지 뜯겨나갔다. 결국 시민 보행이 금지됐고, 2021년 안전진단 결과 D등급을 받았다. 다시 지어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관리 주체인 원주지방환경청과 춘천시는 철거를 결정했다.

    지역 주민들과 정치권에서는 “시민들의 추억이 서린 공간을 그냥 버리기엔 아깝다”며 어떻게든 보존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오래됐다고 무조건 철거할 게 아니라 지역 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자고 한다.

    그러나 추억을 붙잡기엔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 이미 부서질대로 부서진 다리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위험한 상태다. 춘천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의 세월교는 여름 장마철이나 집중호우가 쏟아질 때면 안전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 올해만 해도 울산 남창천과 가평 세월교에서 목숨을 잃는 사고가 났다. 보수하거나 다시 짓는다 해도 시민 안전을 담보하기엔 어려운 구조물이다.

    주민들이 원하는대로 보수를 거친다 해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보수하는 비용이 새로 짓는 비용만큼 든다고 한다. 댐 수문을 개방할 때마다 또다시 보수를 위한 예산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춘천에서 세월교는 다리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시민들도 모르지 않기에 철거된다는 소식에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하지만, 수명이 다한 세월교에게 연명을 바라는 건 어쩌면 인간의 욕심일지 모른다. 보존을 원하는 주민들은 세월교를 살려 지역 발전에 보탬이 되길 바랄 것이다. 그러나 욕심이 과할 때마다 화를 부른다는 걸 우리는 그동안 숱하게 봐왔다. 추억을 얘기하기엔 우리의 안전을 위협할 만큼 세월(歲月)이 오래 흘렀다. 세월교는 이제 추억의 유산으로 남겨야 한다.

     

    세월교(사진=MS투데이 DB)
    세월교(사진=MS투데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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