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 가만 안 둬, XX”⋯학부모 4명에게 괴롭힘 당한 춘천 교사
  • 스크롤 이동 상태바

    “내가 너 가만 안 둬, XX”⋯학부모 4명에게 괴롭힘 당한 춘천 교사

    [교권 추락] (상) 벼랑 끝 교사들
    춘천 A 초등교사, 1년째 학부모 4명에 ‘괴롭힘’
    “내가 너 가만 안 둬, XX” “경찰에 고소해줘?”
    계속된 악성 민원에 결국 ‘정신과 치료’까지

    • 입력 2023.07.28 00:02
    • 수정 2023.08.01 00:00
    • 기자명 최민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 서이초 교사의 사망을 계기로 수면 아래에 있던 교권 침해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춘천도 예외가 아니다. 악성민원과 욕설로도 모자라 협박에 경찰 고소까지 교사를 향한 폭력적 행위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춘천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김모(28) 교사는 올해 초부터 학부모 4명으로부터 욕설과 협박 등 악성민원에 시달렸다. 이들은 학교에서 일어난 왕따 사건 당사자들의 부모다.

    고통의 시작은 올해 초 김씨가 담임을 맡은 학생 A양이 눈물을 흘리며 교무실을 찾아오면서부터다. A양은 친구 3~4명이 자신을 따돌렸다고 주장했다. 반면, 친구들은 A양이 먼저 자신들의 외모를 비하하고, 따돌린 게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양쪽 모두 잘못이 있다고 판단한 김씨는 학생들을 모아 화해시켰고, 서로 사과하며 별 문제 없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된 A양의 부모가 교사에게 전화를 걸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 부모는 “우리 아이는 단지 장난을 친 것뿐인데 동급생들이 한 일은 살인행위지 않느냐”며 교사에게 따졌다.

     

    학생들 사이를 중재하던 초등학교 교사 김모씨는 학부모들의 민원에 정신과 진료까지 받아야 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학생들 사이를 중재하던 초등학교 교사 김모씨는 학부모들의 민원에 정신과 진료까지 받아야 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이에 김씨는 “A양이 평소 친구들과 종종 갈등을 빚었고, 그 과정에서 따돌림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A양 역시 이전에 상대 학생을 따돌리려 한 전례가 있어 서로 화해하는 선에서 마무리하면 좋을 것 같다”고 설명해줬다.

    그런데도 이 부모는 “왜 우리 아이 잘못만 얘기하냐. 어느 부모가 자식의 잘못을 인정하겠냐”며 막무가내로 김씨를 몰아붙였다. “말귀를 못 알아먹는다” “내가 당신보다 살아온 인생이 길다”는 식으로 인격을 모독하는 폭언까지 퍼부었고, 급기야 “내가 너 가만 안 둬, XX”이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아동학대로 경찰에 고소하거나 민원을 넣겠다는 협박도 수시로 일삼았다.

    결국 이 일은 학교폭력 사건으로 확대됐고, A양과 관련 당사자 전원이 조사를 받았다.

    그러자, 이번엔 최초 왕따를 가한 학생들의 학부모까지 김씨를 공격했다. 이들은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없는 말도 안되는 문제로 교사를 걸고 넘어졌다.

    B 학부모는 “우리 아들이 공부를 잘하는데 터무니없이 낮은 점수를 받았다. (당신이) 성적 조작한 거 아니냐. 평가 기준과 아이의 시험지를 가져오라”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교사를 괴롭혔다. C 학부모도 수업 도중 떠드는 학생에게 조용하라며 주의를 준 행위를 ‘아동 학대’라며 걸고넘어지기도 했다.

    결국 김씨는 학부모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정신과 진료까지 받고 있다. 그는 취재진에게 “당시 학교가 너무 가기 싫었고 방학만 기다렸다. 학생들을 교육하려 해도 학부모가 아동학대로 신고할까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정당한 교육 활동을 해도 학부모가 꼬투리를 잡으면 교사는 자신을 보호할 힘이 없다”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지역에서 교권 침해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래픽=이정욱 기자)

    이 같은 교권 침해 사례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학교 곳곳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강원지역에서 개최된 ‘학교교권보호위원회’ 건수는 모두 490건으로 연평균 120여건에 이른다. 올해는 7개월 만에 90건을 넘어섰다. 학교교권보호위원회는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에 불응해 의도적으로 교육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심의하는 기구다.

    강원특별자치도교원단체총연합회(강원교총)에 접수된 교권 침해 사례도 △2019년 24건 △2020년 11건 △2021년 16건 △2022년 22건으로 코로나19 유행으로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던 2020년 이후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는 7월 기준 7건의 교권 침해 사례가 접수됐다.

    춘천에서 근무하는 또 다른 초등학교 교사 이모씨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사람에게 욕하거나, 성희롱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면 처벌받지 않냐. 그런데 교사는 아니다. 학부모와의 관계에 있어 만약 부모가 아동학대라는 말을 꺼내면 한없이 약해진다. 그런 무기이자 방패를 갖고 있다보니 교사가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대처하기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일방적인 교권 조정으로 지금 같은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말한다. 한 지역 교육권 관계자는 “교권이라고 하면 체벌 등 과거 강압적인 모습을 많이 떠올린다”며 “현재 교사들에겐 그런 게 아니라 ‘정당하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원 한국인권진흥원 원장은 “15년 전만 해도 교권이 너무 강력해 학생들의 인권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고, 한 쪽에만 치중했다”며 “한쪽 권한을 눌러 다른 쪽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 교사와 학생 모두 상생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민준 기자 chmj0317@mstoday.co.kr

    [확인=김성권 데스크]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78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