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있어야 아이를 낳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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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자리가 있어야 아이를 낳죠

    ■ [칼럼] 권소담 경제팀 기자

    • 입력 2023.06.22 00:00
    • 수정 2023.06.22 13:10
    • 기자명 권소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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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소담 경제팀 기자
    권소담 경제팀 기자

    지난해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결혼 인식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이상적인 배우자의 연 소득은 남편 6237만원, 아내 4292만원이었다. 연말정산 자료로 추산한 춘천지역 근로자의 평균 연봉(세전 3613만원)은 결혼 적령기 청년들이 바라는 소득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자산으로는 남편 3억1047만원, 아내 1억9483만원을 기대했는데, 남성 기준으로 월급을 하나도 쓰지 않고 꼬박 9년을 모아야 하는 액수다. 남녀 모두 배우자의 직업으로는 ‘일반 사무직’을 선호했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경제적 여유가 결혼을 위한 선제 조건이라는 뜻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이상적인 배우자의 조건. (자료=듀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이상적인 배우자의 조건. (자료=듀오)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20대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쉬었다’고 응답한 청년이 ‘정규교육 기관 통학’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구직 활동도, 취업 준비도 하지 않고 그냥 쉬는 20대 인구가 전국적으로 35만7000명에 달한다.

    취업 의사가 있는 20대 비경제활동인구 중 대다수는 ‘원하는 임금 수준이나 근로 조건이 맞는 일거리가 없을 것 같아서’ 구직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괜찮은 일자리가 없으니 취업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한 것이다. 청년층이 실무를 경험할 기회가 부족하고, 기대 수준에 맞는 일자리가 없는 취약한 고용 시장 상황이 드러났다.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통계 결과가 이러하니,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강원지역으로 범위를 좁히면 학교도 다니지 않고 구직도 하지 않는 20대 청년의 비중은 더 클 것으로 추측된다. 첫 직장을 갖는 시기가 늦어질수록 자산을 모을 기회가 줄어들고 결혼과 출산 시기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춘천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은 지역을 떠나 수도권으로 유출되고 있다. 고령화로 인해 전체 인구에서 20대 청년이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만, 강원지역 밖으로 향하는 청년 인구는 20년 전보다 훨씬 늘어났다. 지난해 강원지역 외부로 전출한 춘천의 20~24세 청년은 2142명으로 2000년(1616명) 대비 526명(32.5%) 증가했다.

    그사이 춘천에서 태어나는 신생아의 수는 급감했다. 통계청이 추산한 지난해 춘천지역 출생아 수 잠정치는 1500명으로 2000년(3258명)의 절반도 안 된다. 같은 기간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가임기간 동안 낳을 것으로 기대하는 평균 출생아 수)은 1.5명에서 0.9명으로 감소했다. 인구 유지를 위한 마지노선인 합계출산율 2.1명은 먼 이야기다.

    고전 심리학의 이론 중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설’이 있다. 인간의 행동은 각자의 필요와 욕구에 바탕을 둔 동기(motive)에 의해 유발되고, 하위 단계의 욕구가 먼저 충족된 이후에야 상위 단계의 욕구로 이동하며 차례대로 만족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가장 아래에 있는 1단계 욕구가 의식주에 해당하는 ‘생리적 욕구’다. 따뜻한 집과 경제적 안정은 청년들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우선해서 해결해야 하는 과제다. 소속감과 애정에 대한 욕구는 3단계에 해당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가족을 만들고자 하는 행동은 의식주에 대한 욕구가 충족된 이후에야 나오는, 더 큰 차원의 동기가 필요한 일이다.

    혹자는 “돈이 없어도 아이와 함께하는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1980~1990년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고도성장기에 태어나 양질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음에도 성인이 된 이후 무한 경쟁의 취업난을 겪고, 현재는 소득 양극화에 내몰린 지금의 30대 결혼 적령기 청년들에게 이런 ‘행복 담론’이 과연 설득력 있을까.

    가정을 이루고 2세를 낳고자 하는 마음은 의식주에 대한 고민이 해결된 안정된 상태에서 나올 수 있다. “요즘 애들은 자기밖에 모른다”는 비난에 앞서, 청년들이 먼저 양질의 직장을 갖고, 저축하고,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발굴하고 경제를 부양하는 실질적인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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