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증언으로 보는 근현대 춘천 이야기] 의병과 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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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과 증언으로 보는 근현대 춘천 이야기] 의병과 춘천

    • 입력 2023.04.20 00:00
    • 수정 2023.05.10 09:22
    • 기자명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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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

    “우리는 그저 아무개다. 그 아무개들 모두의 이름이 의병이다. 이름도 얼굴도 없이 살겠지만, 다행히 조선이 훗날까지 살아남아 유구히 흐른다면, 역사에 그 이름 한 줄이면 된다.”
    의병을 소재로 한 어느 드라마의 대사가 말해주듯, 나라가 짓밟히는 고비마다 스스로 일어선 꺼지지 않는 불꽃, 우리는 그들을 ‘의병’이라 부른다. 

    일제가 한반도 침탈을 본격화하기 시작한 1895년은 조선에 있어 치욕스러운 한 해였다. 일본 자객과 낭인이 황제가 거처하는 경복궁에 난입하여 황후를 무참하게 시해하는 만행을 저지르자, 이에 당황한 고종은 황급하게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하는 절박하고 기막힌 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고종은 일제의 강요와 억압에 굴복해 상투를 강제로 자르라는 단발령을 내리고, 고종 스스로 서양 옷을 입고 상투를 자른 채 공식 석상에 등장하는 굴욕의 중심에 섰다. 

    일제가 황제와 그 조정을 능멸하며 조선을 점령해 들어올 때, 춘천 출신의 걸출한 유학자 가운데 십수 명의 의병장이 나와 무명의 의병과 함께 항일투쟁을 벌여나갔다. 이 중 의암 류인석은 강원 충청지역을 거점으로 전국 대표 의병장으로 크게 활약했고, 습재 이소응 또한 춘천 중심의 영서 일대를 거점으로 춘천 의병장에 등단하여 의병투쟁의 선봉에 섰다. 습재 이소응은 봉의산에 올라 의병을 일으킨 까닭을 하늘에 고하는 제를 지낸 후, 머리를 깎고 춘천으로 부임하는 친일 관찰사를 죽림동 개못(犬淵:晴淵)에서 처단하여 의병의 기개를 전국에 떨쳐 의병 봉기를 선도했다. 최초 여성 의병장 윤희순 또한 춘천에서 독립투쟁을 시작하여 전무후무한 삼대에 걸친 항일투쟁을 이어나갔다. 

    의암 류인석은 1898년 집안현 팔왕동에 최초로 해외 의병 기지를 건설했고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1910년엔 대한13도의군 도총재에 추대되어 의병 총대장에 올랐다. 백범 김구와 안중근 의사는 의암 류인석과 동문수학한 고석로(高錫魯)의 제자로 의암과 학맥으로 잇닿아 있으면서도 동지(同志)로 항일 독립투쟁에 함께했다.

     

    사진 왼쪽부터 의암 류인석 선생, 습재 이소응 선생, 윤희순 의사. (사진=춘천디지털기록관)
    사진 왼쪽부터 의암 류인석 선생, 습재 이소응 선생, 윤희순 의사. (사진=춘천디지털기록관)

    1909년 대한제국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사살한 안중근 의사는 법정에서 강원도 출신 김두성이 자신의 상관이라 말했으며, 이 김두성이 의암 류인석으로 밝혀지고 있다. 상해 임시정부 수립을 주도하여 평생을 독립투쟁에 앞장선 백범 김구는 광복 후 국내로 들어와, 가정리 의암 류인석 묘소에 고유(告由)하며 “민족이 나아갈 길을 가르쳐 달라”며 선생에게 예를 갖추어 제자의 도리를 다하였다.

     

    백범 김구 선생(사진 왼쪽)과 안중근 의사. (사진=국가보훈처)
    백범 김구 선생(사진 왼쪽)과 안중근 의사. (사진=국가보훈처)

    풀리지 않은 한·일 간의 갈등이 아직 남아있지만, 우리는 의병들이 꿈꾸던 세상에 살고 있다. 지금도 ‘의병’이란 이름을 들으면 가슴 뜨거워지는 이유는, 소리 없이 사라질지라도 내 나라를 위해 누구보다 큰 함성을 외치며, 화승총과 곡괭이를 들고 뛰쳐 나섰을 불꽃 DNA가 우리 속내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나도 꽃이오, 다만 나는 불꽃이오!” 이 의병의 외침 중심에 춘천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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