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사용설명서]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으면 나도 암 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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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몸 사용설명서]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으면 나도 암 걸릴까?

    • 입력 2022.04.29 00:00
    • 수정 2022.04.29 11:46
    • 기자명 고종관 보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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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관 보건학박사·전 중앙일보의학전문기자
    고종관 보건학박사·전 중앙일보의학전문기자

    자녀에게 계승할 ‘위대한 유산’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자신의 DNA를 통해 다음 세대에 ‘나의 모든 것’을 물려줍니다. 닮은꼴의 외모와 성격, 재능까지 빼닮은 자식을 보면 내리사랑이 더욱 각별해질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유전이란 것이 좋은 것만 이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중 질병이야말로 피하고 싶은 대물림이죠.

    유전상담클리닉에는 ‘린치증후군’(Lynch Syndrome)에 관한 문의가 종종 들어옵니다. 아버지가 대장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얼마 전에 형도 대장 폴립이 생겨 걱정이라는 식입니다. 심지어 대장암 3기인 어떤 분은 자신이 몇 년 전에 유전자검사만 받았어도 이렇게 힘든 투병 생활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후회의 글도 있습니다.

    린치증후군은 대표적인 암 관련 유전질환입니다. 우리 몸은 세포가 손상됐을 때 이를 수리하기 위해 DNA의 유전정보를 이용해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어냅니다. 말하자면 DNA는 집을 지을 때 필요한 설계도면 같은 거지요. 하지만 복제과정이 아무리 정교해도 실수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럴 때 MLH1, MSH2, MSH6 같은 유전자들이 잘못 복제된 부분을 교정해 바로잡아줍니다.

    린치증후군은 바로 수리공 역할을 하는 유전자가 변이를 일으켜 제 기능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유전자에 변이(돌연변이)가 생기면 뜻하지 않게 암은 물론 다양한 질병이 생기는 것이지요.

    린치증후군은 보인자(保因者)의 70~90%에서 대장암이 발생한다고 하니 가볍게 볼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린치증후군을 ‘가족성 비용종성 대장암’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름과는 달리 자궁내막암이나 난소암, 위암과 소장암, 방광암, 피부암, 전립선암 등 각종 암 발생률을 높이기도 합니다. 특히 암 발생 연령도 앞당겨 대장암의 경우 진단 나이가 40대 초반으로 매우 젊습니다.

    유전질환은 2003년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고, 개별 유전자의 기능이 밝혀지면서 서서히 베일을 벗고 있습니다. 예컨대 암이나 알츠하이머, 관절염처럼 노화와 관련된 질환에서부터 고혈압이나 관상동맥질환, 당뇨병 같은 생활습관병, 골다공증, 편두통, 정신질환, 학습장애까지 현재 드러난 것만 무려 7000여 질환이 유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전질환은 선대에서 발생한 DNA의 돌연변이가 후대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DNA의 잘못된 설계도가 대를 이어 같은 질환을 재현시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유전질환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변이된 DNA를 바꿀 수는 없지만 ‘질병 가계도’(Family Health History)를 만들어 조기진단과 치료에 활용하면 대부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가족의 질병 정보를 모아 족보처럼 가계도를 그리는 것이지요. 가족 구성원들이 어떤 질환으로 고생했고, 사망원인은 무엇인지 말입니다. 이른바 ‘가족력’이죠. 3대에 걸쳐 2명 이상에서 같은 질환이 반복되면 가족력을 인정합니다. 조부모와 부모, 그리고 이모와 삼촌 가계 등 3촌까지만 조사해도 어느 정도 빈도 높은 질환이 드러납니다.

    이렇게 질병 가계도가 만들어지면 예방과 조기진단에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예컨대 부모 중 한 분이 린치증후군이면 자녀가 같은 증후군에 걸릴 확률은 50%입니다. 유전자검사를 통해 린치증후군이 밝혀진 보인자는 20~25세부터 1~2년마다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아야겠죠.

    또 자궁내막암은 30~35세부터 1~2년마다 생체검사를, 난소암은 매년 CA-125 혈액검사를, 위암과 소장암 역시 30~35세부터 3~5년마다 상부 내시경 검사를 받는 식이지요. 보통 직계가족이 암 진단을 받은 나이보다 10년 앞당겨 실시할 것을 권합니다.

    당뇨병이나 고혈압, 관상동맥질환, 골다공증 같은 만성질환은 가족력이 있다고 해도 생활을 바꿔줌으로써 발병률을 크게 낮출 수 있습니다. 생활습관, 즉 식단이나 운동, 흡연·음주, 비만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할머니가 골다공증으로 골절을 입어 고생하셨다면 칼슘 섭취와 웨이트 트레이닝 등 젊었을 때부터 뼈 건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임신성 당뇨 경험 또는 과체중이나 비만인 사람은 서둘러 운동과 다이어트를 통해 2형 당뇨병으로 이행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다운증후군이나 터너증후군처럼 선천적이고 희귀한 유전질환은 예방이나 치료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태아 또는 신생아 선별검사를 통해 조기진단하면 적정한 시기에 돌봄을 받아 합병증 예방과 증상 완화, 그리고 재활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계에 유전질환이 없는 사람도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당대에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일어나 자녀에게 유전될 수 있어서입니다. 방사능이나 화학물질, 심지어 흡연이 DNA의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주범이지요. 많은 사람이 담배의 유해물질만 걱정할 뿐 DNA 손상으로 인한 돌연변이가 대물림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간과해요.

    건강한 후손을 위해 현재 건강한 내 유전자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행위도 중요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곧 어린이날과 어버이날도 연이어 오겠지요.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는 바로 가족사이기도 합니다. ‘건강한 가족’이야말로 우리가 계승해 나가야 할 ‘위대한 유산’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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