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창수의 딴생각] ‘진짜 토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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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창수의 딴생각] ‘진짜 토론’을 해야 한다

    • 입력 2021.08.29 00:00
    • 수정 2021.08.30 00:04
    • 기자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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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창수 소설가
    하창수 소설가

    외국어를 처음 공부할 때나 처음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을 가르치다 보면, 우리말과 외국어가 충돌하고 어긋나는 지점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런 충돌과 어긋남은 대부분 두 언어의 문화적 차이에서 생겨나는데, 외국어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방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이런 차이는 곰곰이 따져보면 그다지 심각하지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완전한 이해에 이르지 못하게 될 때, 우리가 흔히 취하는 방법은 “무조건 외우기”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머릿속에 욱여넣어라!”는 비효율적인 명령을 고분고분 따라가는 게 초보 외국어 학습자들이 가진 일종의 슬픈 운명이다.

    문화적 차이는 거칠게 환언하면 ‘습성의 차이’다. 습성은 일정부분 타고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어떤 방식의 교육을 받았느냐가 결정한다.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사람, 남의 얘기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 자신의 의견을 일방적 강요가 아니라 대화를 통해 관철시키는 사람의 시간을 되짚어가면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환경’과 ‘교육’이다. 그들이 자랐던 환경과 그들이 받았던 교육 자체가 자유, 강요하지 않음, 귀 기울임, 대화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과 만났을 때 무조건 외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낯설게 느껴지는 ‘차이’를 놓고 교사와 학생이, 부모와 자식이, 친구끼리, 얘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돌파하고 극복하는 게 그들의 환경이고 교육이었던 것이다.
     
    연전,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해 폴란드에 머무는 동안 만난 브로츠와프대학 한국학과의 한 교수는 하버드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할 때 ‘토론식 수업’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한 분이었는데, 케임브리지대학으로 가서 더욱 심화된 연구를 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근 그 분이 보내준 유튜브 동영상(Oracy in the Classroom: Strategies for Effective Talk) 하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전 과목을 토론식으로 진행하고 있는 영국의 어느 초등학교 수업현장과 학생들의 인터뷰가 담겼는데, 6분 남짓한 짧은 영상이었지만 학생들의 표정과 사용하는 표현을 통해 토론식 수업의 효과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선생님이 진행자가 되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대해 학생들이 발표하고, 그 발표에 대해 다른 학생들이 의견을 제시하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이즈음 우리 대선주자들의 토론회와 겹쳐졌다. 정연한 논리를 펼쳐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상대의 얘기를 경청하는 것과 상대를 설득시키는 것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 이 물음들에 대한 지혜로운 답이 진흙밭을 뒹굴며 남의 험담이나 붙잡고 늘어지는 대선토론회가 아니라 반짝이는 두 눈으로 상대의 말을 경청하다가 차례가 되었을 때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드러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고 상대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만드는 초등학교 토론식 수업현장에서 찾아진다는 건, 우리의 입장에선 매우 슬픈 일이다. 서로 다른 논리들이 충돌하며 더 나은 지혜를 찾아내는 방식보다는 머릿속에 욱여넣은 지식들로 지금의 ‘자리’에 오른 ‘어른’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건 빤하기 때문이다.

    전체주의를 준엄하게 비판한 《열린사회와 그 적들》로 잘 알려진 영국의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토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이었다. 그의 사상에는 “인간은 항상 틀릴 수 있다”는 대전제가 놓여 있었다. 그가 토론을 중요시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상존한다면 주장은 무의미하며, 토론을 통해 ‘과오의 가능성’을 줄여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전제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효과를 끌어내는 위대한 명제다. 그래서 칼 포퍼는 “토론을 할 때는 상대의 약점이 아니라 강점에 대해 얘기하라”고 말한 것이다. 상대가 무엇을 잘 하고 있는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무엇을 잘 하겠다고 말하는지를 놓고 얘기할 때에야 비로소 ‘윈-윈’이 이루어진다. 이게 ‘진짜 토론’이다. 이걸 볼 수 있다면, 정말이지 여한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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