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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마음풍경] 옥수수에 대한 저마다 다른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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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마음풍경] 옥수수에 대한 저마다 다른 추억
  •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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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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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김유정문학촌에 시 창작과 소설 창작에 대한 문예교실이 열리고 있습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이름있는 기성작가가 강의를 하는데 시 창작교실은 전윤호 시인이, 소설 창작교실은 김도연 작가가 담당합니다. 춘천시에 사는 시인과 소설가들도 강의를 들으며 시와 소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합니다. 열린 교실 형태로 운영되어 시작하자마자부터 인기가 좋습니다.

얼마 전 소설창작 수업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작가들 몇 명이 문학촌 안에 있는 매점 야외 탁자에 앉아 커피를 마셨습니다. 그때 누군가 매점에서 파는, 옥수수 튀밥 한 봉지를 샀습니다. 너도 나도 손이 가는데 유독 거기에 손을 대지 않는 사람이 있었었습니다. 어린 시절 옥수수가 가장 흔한 대관령에서 자란 김도연 선생이었습니다.

“김도연 선생님은 왜 옥수수를 안 드세요?” 누군가 묻자 김도연 작가가 대답했습니다. “어린 시절 밥 대신으로 너무 물리게 먹어서 나는 옥수수가 보기만 해도 싫어요.” 그러자 함께 있던 작가들이 “어, 이거 맛있는데 왜 안 먹지.” “이거 맛있어요. 먹어봐요.” 하고 권했습니다.

김도연 작가는 초등학교 시절 옥수수밥을 도시락으로 싸간 얘기를 했습니다. 솥에 밥을 할 때 불린 옥수수를 넣고 가운데에 쌀을 조금 넣은 다음 밥을 합니다. 쌀이 귀하던 시절의 이야기지요. 밥을 다 지은 다음 어머니가 가운데에 있는 쌀밥을 중학교에 다니는 큰아들의 도시락에 담습니다. 큰아들이 귀해서만이 아니라 중학생쯤 되면 체면을 알 나이가 되었다고 여기는 거지요. 그리고 아래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생은 옥수수밥으로 도시락을 싸줍니다. 그러나 동생도 점심시간에 옥수수밥 도시락을 꺼내놓는 게 굶는 것보다 더 싫습니다. 체면은 어른들만 있는 게 아니라 어린아이들에게도 있지요.

나도 옥수수에 대한 추억이 많습니다. 대학 다닐 때의 일입니다. 여름 방학이 되어 시골집에 내려오면 매일 해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새벽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옥수수밭으로 나가 옥수수를 따옵니다. 껍질을 벗겨 가마솥에 삶습니다. 어머니가 큰 것은 작은 것과 짝을 이루고, 중간 것은 중간 것끼리 짝을 이뤄 옥수수 두 개를 한 묶음으로 묶습니다. 그게 큰 함지 하나 분량입니다. 내가 그걸 지게에 지고 신작로까지 가서 버스에 옥수수 함지를 올려 줍니다. 사람도 운임을 내고 짐도 운임을 냅니다.

그 시절 강릉시내 초입에 주유소가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주유소 앞에 앉아 옥수수를 팔았습니다. 옥수수는 밭에서 완전히 익은 다음 알곡을 발라서 파는 것과 아직 덜 여문 것을 공이 째 쪄서 관광객들에게 파는 것의 가격 차이는 아마 1대 100 정도 됩니다. 관광객들에게 1천원에 파는 옥수수가 밭에서 완전히 익은 다음 알곡이 되었을 때는 10원도 안 된다는 거지요. 그렇게 여름 한 철 어머니가 옥수수를 판 돈이 아들의 가을학기 등록금이었습니다.

한 번은 어머니가 주유소 마당에서 옥수수를 파는데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여동생이 방학을 해서 타고 오는 버스가 주유소에 섰습니다. 동생이 창밖으로 내다보니 어머니가 옥수수를 팔고 있는 것입니다.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 동안 여동생은 얼른 버스에서 내려 옥수수 묶음을 들고 곧 강릉 버스정류장에 도착할 승객들에게 옥수수를 팔았습니다. 승객들도 잠시 전까지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처녀가 어머니 옥수수를 파는 걸 대견하게 여겨 옥수수를 샀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 어머니가 농사를 짓는 것을 한 번도 부끄럽게 여긴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집에서 농사지은 것을 시장에 파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옥수수 함지 지게를 지고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까지 나가는 걸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동생도 그랬고 나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같은 시골아이들이 점심시간에 쌀밥 도시락 뚜껑을 여는 것과 옥수수밥 도시락 뚜껑을 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입니다. 나도 점심시간 동네 친구들 앞에 옥수수밥을 싼 도시락 뚜껑을 연다면 많이 싫고 부끄러웠을 겁니다. 그것은 본질의 차이가 아니라 상황의 차이인 것이지요. 그날 김도연 선생은 끝까지 옥수수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마침 어버이날이라 저는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옥수수 지게 얘기를 했습니다. 제가 어른이 되어 걸어온 길섶에 옥수수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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