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뒤적뒤적] 시대의 거울, 대중가요 노랫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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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뒤적뒤적] 시대의 거울, 대중가요 노랫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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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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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북칼럼니스트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트로트 열풍이 뜨겁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거의 모든 방송에서 오디션과 트로트를 연계한 프로그램이 하나쯤은 있었을 정도입니다. 지금은 한풀 꺾인 듯하지만 ‘왜색 가요’니 ‘뽕짝’이니 하던 분위기와는 영 딴판입니다.

이를 두고 코로나 탓에 집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노래방에 가기 힘들어지면서 여러 가지 이유를 들지만 역시 가슴에 호소하는 트로트의 힘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중에서도 트로트의 힘은 노랫말이 아닐까 합니다. 꺾기니 뭐니 해서 트로트 특유의 창법이 가진 간드러짐도 있겠지만 ‘유치 뽕짝’이란 말이 있을 만큼 심금을 울리는 노랫말이 트로트의 묘미이니까요.

비단 트로트만이 아니라 대중가요의 힘은 노랫말에 크게 빚지고 있으니 이를 다룬 책이 한 권쯤 있을 법합니다. <노래의 언어>(한성우 지음, 어크로스)가 바로 그런 책입니다.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인 지은이가 무려 2만6000여곡의 노랫말을 채집해 요모조모 분석한 내용이거든요.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우리는 흔히 대중가요는 ‘사랑타령’이 중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에선 이를 통계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말 중 명사 중에는 ‘사람’이란 말이 가장 많답니다. ‘사랑’의 등장 빈도는 그보다 한참 뒤인 104번째에 자리 잡고 있는데 노랫말에서 이게 역전된다네요. ‘사랑’이 등장하는 노랫말은 4만5000여곡으로 1위인데 ‘사람’은 비록 2위로 등장하긴 하지만 1만9000여곡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뜻밖의 사실도 나옵니다. 일상어 중 가장 많이 나타나는 직업은 ‘대통령’이랍니다. 직업을 떠나 살펴봐도 명사 전체 순위 중 23위라니 과연 우리는 정치적 국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노랫말에서는 ‘대통령’의 명사 순위 3000등 밖으로, 거의 ‘꼰대’와 같은 빈도입니다. 실은 대중가요 중에 대통령이나 꼰대란 말이 쓰인 것이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리송합니다.

그럼 노랫말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직업은 뭘까요? 이게 웃기는 것이 ‘선생님’과 ‘마도로스’랍니다. ‘선생님’이야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을 비롯해 숱한 노래가 있으니 그렇다 쳐도 ‘마도로스’가 노래 제목에 8회, 노랫말에 54회나 등장한다니 의외 아닌가요? 

지은이에 따르면 배의 갑판원을 뜻하는 네덜란드 말 ‘마트로스matroos’가 일본을 거쳐 오면서 마도로스가 됐는데 1960년대 유행가에 집중적으로 등장했다가 이후 자취를 감췄답니다. 당시엔 해외로 나가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기에 외국을 오가는 배를 탈 수 있는 선원들이 선망의 대상이었기에 대중가요에서 이렇게 ‘각광’을 받았던 것으로 풀이합니다.

그러면서 지은이는 한마디 툭 던집니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으니 여객기 기장이나 스튜어디스가 노랫말에 등장할 법 한데 비행기 조종사는 ‘빨간 마후라’에 거의 유일하게 등장하고 스튜어디스는 두 번 정도 등장한다고요.

이런 건 어떤가요? 대중가요에서 아내는 힘이 세고 남편은 힘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는지요? 아내는 제목에서 17회, 가사에서 112회나 보이는데 남편이 제목에 포함된 것은 ‘남편에게 바치는 노래’가 유일하답니다. 그것도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덕분에 등장한 곡이라네요.

1938년에 김해송이 부른 ‘청춘계급’의 노랫말은 어떤지요? “…노래를 부르자 어여쁜 아폴로/ 워카를 마시며…/ 이 밤이 다 새도록 춤이나 추잔다 아 구여운 아팟쉬/ 샴팡을 마시며…”란 노랫말을 보니 들리지도, 이해도 되지 않는 영어 범벅 노래를 부르는 요즘 아이돌들만 뭐라 할 게 아니더라고요. 80년도 더 전에 ‘청춘계급’이 보드카와 샴페인을 뜻하는 워카와 샴팡을 찾는 걸 보면 역시 청춘은 예나 지금이나 시대를 앞서갔던 모양입니다. 

책의 부제는 ‘유행가에서 길어 올린 우리말의 인문학’이지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답니다. 노랫말의 사회적 의미나 배경 또는 문학성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니 부제는 출판사의 희망이라 봐 넘기면 됩니다. 대신 특정 단어의 빈도 등 이런저런 ‘팩트’를 분석한, 자료 중심의 책입니다. 그렇기에 약간은 딱딱한 내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수두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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