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창수의 딴생각] 원하지 않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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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창수의 딴생각] 원하지 않는다는 것

    • 입력 2021.01.31 00:00
    • 기자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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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창수 소설가
    하창수 소설가

    여러 해 전 선배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이(李)씨 성을 가졌고 나보다 서너 살 연상이었다. 세 번인가, 네 번인가의 만남이 전부였다. 만날 때면 술 몇 잔을 가볍게 나누었다.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한 번에 두어 시간쯤 얘기를 나누었다. 키가 그리 크지 않고 몸피가 얇고 다부져 전체적으로 날렵한 인상이었는데 무예를 익힌 사람들에게서 흔히 느껴지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해 가을이 깊었을 때였다. 선배의 카페에 들렀는데 그가 혼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술이 아니라 차를 마시고 있는 게 신기해서 술을 끊은 것이냐, 그럼 몹시 서운하다 식의 농담을 던졌다. 그와 나는 반갑게 손을 그러잡았고 뭔가 또, 주섬주섬 얘기를 시작했다. 얘기가 한 굽이를 지나고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에 그가 문득, 얼마큼의 망설임 끝에 “지난 번 만났을 때 얘기했던 추엽검, 그걸 좀 연구해봤어요.”하고 말했다. 그의 두 볼에 홍조가 드러났다가 사라지는 게 보였다. 그가 말한 ‘추엽검’은 정확히 ‘추엽비월검법(秋葉飛月劍法)’이란 것으로 당시 내가 쓰고 있던 광해군과 관련된 장편소설에서 주인공이 연마하는 검법이었다. 그가 무예를 공부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자문을 구하려고 지난 번 만났을 때 내가 꺼냈던 얘기였는데 그걸 잊지 않은 건 물론 꽤 깊이 연구까지 한 듯했다.

    내가 쓴 소설에는 중국 원(元)나라 때 칭기즈칸의 휘하에 있다가 살생의 삶에 회의가 일어 홀연히 종적을 감추었던 무림의 고수 문전(文篆)이 “가을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이 달을 향해 나르는” 추엽비월의 형상을 검법으로 완성했다고 나온다. 이름만으로는 이미지가 얼른 떠오르지 않는 이 검법은 검서(劍書)에조차 잘 나오지 않는데 나온다고 해봐야 ‘추엽비월검법’이란 명칭과 함께 검법을 설명한 다섯 글자가 덧붙여져 있을 뿐이다. 그 다섯 글자는 무원무불성(無願無不成) - 원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게 없다, 라는 것이다. 사실 이건 난해한 암호문과 같아서 검법에 대한 설명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무원무불성 - “원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게 없다”라는 건 결국 “원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수많은 정복 전쟁을 치르며 자신이 저지른 살생의 죄를 씻기 위해 평생을 초야에 묻혀 살았던 문전이란 검객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 얘기를 나눌 때 그의 표정은 몹시도 진지하고 엄숙했다. 그리고 며칠 뒤 (어쩌면 몇 달 뒤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강릉에 살고 있었는데 대관령을 넘어가던 차가 전복되었다는 거였다. 기이한 것은 차도 그다지 망가지지 않았고 운전자도 멀쩡했는데 동승한 그 사람만 외상도 없이 절명한 거였다. 경추 7번 골절 - 그것이 유일한 원인이었다. 그 후로 나는 한동안 선배의 카페에 가지 못했다. 그가 붓으로 쓴 ‘무원무불성’ 다섯 글자가 카페의 한쪽 창에 붙여져 있었는데 그걸 보는 게 마음이 아팠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무렵 아침에 일어나면 늘 그가 떠올랐다. 꿈에서 자주 그를 보았다. 마침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새벽녘, 오랫동안 꾸지 않았던 그의 꿈을 꾸었다. 낙엽이 한 장 천천히 떨어졌고 그 갈색 표면을 달빛이 비추고 있었다. 그는 얇고 푸른 검객 문전이 사용했다는 전검(篆劍)을 가볍게 쥔 채 검무를 추고 있었다. 그의 이름이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선배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의 이름이 적힌 선배의 제법 긴 답톡이 왔다. “그 친구 간 지가 벌써 십년”이라는 대목을 읽다가 눈시울을 적셨다. 천천히, 마치 가을 나무에서 낙엽 한 장이 떨어지듯 가슴이 아파왔다. 너무 많은 원(願)들이 쌓인 가슴이 무거웠다.

    최근에 개봉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원더우먼 1984’란 영화에는 원하는 것을 말하면 즉시 이루어지는 고대의 신들이 만들어냈다는 전설을 가진 ‘소망의 돌’이 나온다. (히어로 영화에 꼭 등장하는) 천하의 ‘빌런’은 그 돌을 이용해 세상을 지배하려는 야욕을 드러내고 원더우먼은 거기에 맞서 싸운다. 그런데 (여느 히어로 영화와는 다르게) 원더우먼이 그 싸움에 사용하는 것은 그녀가 가진 놀라운 능력이 아니라 “자신이 이룬 소원에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는 당연한 논리와 사람이 본질적으로 가진 ‘양심’이다. 그 양심의 핵심은 바로 ‘원하지 않는 것’으로 수렴된다. ‘소망의 돌’ 그 자체가 된 악당을 향해 사람들이 일제히 “나는 내 소망을 포기한다!”라고 선언하는 순간 파멸로 치닫던 이 행성이 드라마틱하게 구원의 길로 바뀐다.

    원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 ‘무원무불성’의 화두가 절실한 이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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