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순 절임(竹筍醢), 호남(湖南) 노령(蘆嶺) 아래 지역에서 잘 담그는데 맛이 매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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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순 절임(竹筍醢), 호남(湖南) 노령(蘆嶺) 아래 지역에서 잘 담그는데 맛이 매우 좋다.”

    [도문대작] 22. 노령 지역의 아삭한 죽순 절임

    • 입력 2024.04.20 00:05
    • 기자명 김풍기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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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자랐다고 해서 대나무의 생육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나는 늘 대나무를 보면서 살았지만, 죽순이 어떻게 자라는지, 뿌리는 어떻게 뻗어 나가는지, 옮겨 심는 건 어떻게 하는지, 대나무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는 대나무를 잘 몰랐다. 그런 것에 눈길을 돌리기에는 세상에 재미있는 것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공부하면서 절의의 상징으로서 대나무를 많이 읽었기 때문에 어느 순간 대나무에 대해 편견이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 중고등학교에서 고전문학 작품을 배우면서 대나무는 늘 절의의 상징이었다. 게다가 평생을 고전문학 작품과 함께 살아왔으니, 내 머릿속에서 대나무는 다른 이미지를 구성하기가 쉽지 않았다.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죽순 요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절의의 상징 대나무를 늘 달고 살았지만, 식재료로 소용되는 죽순은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대나무가 흔한 지역에서 살았지만, 강원도 영동 지역에서는 죽순으로 요리를 해 먹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내가 살던 지역에서는 죽순에 신경도 쓰지 않았으니, 당연히 그것을 식재료로 취급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지금은 대나무 생육 상한선이 북쪽으로 많이 올라와 있지만, 예전에는 강원도 강릉 지역이 북방 한계선이었다. 그래서 대나무가 많기는 했지만 굵은 죽순이 왕성하게 올라오면서 대나무의 위세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대체로 남쪽 지역으로 가야 비로소 식재료로 쓸 정도의 죽순을 확보할 수 있다. 전라도 지역만 해도 봄이 되어 솟아 나오는 죽순의 굵기가 강원도 지역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굵직하다.

     

    허균은 전라남도 지역에서 담그는 죽순 절임이 아주 맛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허균은 전라남도 지역에서 담그는 죽순 절임이 아주 맛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허균은 전라도 지역의 과거 시험 감독관으로 왕래한 것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호남 지역을 방문하였다. 게다가 ‘도문대작’을 저술할 무렵 함열에 적소(謫所)를 두고 있으면서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었던 데다 한겨울이었으니 죽순 요리를 접하기는 어려웠겠지만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의 죽순 요리 경험은 ‘도문대작’안에 반영되어 있다. 거기에는 한 종류의 죽순 요리가 기록되어 있다. “죽순절임[竹筍醢] : 호남(湖南) 노령(蘆嶺) 아래 지역에서 잘 담그는데 맛이 매우 좋다.”

     노령은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과 전라남도 장성 사이에 있는 고개 이름이다. 갈대가 많이 자란다고 해서 갈재로도 부르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 갈대라는 뜻을 가진 ‘노(蘆)’를 써서 노령이라고 표기했다. 허균은 전라남도 지역에서 담그는 죽순 절임이 아주 맛있다는 기록을 남긴 것인데, 그것은 조선 팔도 중에서 이 지역이 죽순을 많이 채취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었음을 증언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죽순을 쉽게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나마 전라남도 지역에서는 상당량의 죽순을 채취할 수 있으니 당연히 그것을 보관하고 처리하는 방법을 오랫동안 고민해왔을 것이다. 그것은 조리법에도 영향을 끼쳐서, 다양한 죽순 소재 음식을 즐겼던 것이다.

     죽순은 보관이 어렵다. 늦봄에 본격적으로 자라기 시작하는 부드러운 죽순을 잘라서 상온에 보관하면 오래되지 않아 부패한다. 그러므로 죽순은 자르는 즉시 썰어서 볶아먹거나 잘라서 말리는 것이다. 냉장고와 같은 저장시설이 없었던 근대 이전에는 죽순을 오래 보관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정조지(鼎俎志)](권1)에 의하면 죽순을 채취하고 하루가 지나면 시들고(蔫) 이틀이 지나면 맛이 간다(菸)고 했다. ‘순보(筍譜)’의 기록을 인용하면서 서유구는 죽순이 얼마나 다루기 어려운 식재료인지를 말한다. 죽순이 바람을 쐬게 되면 닿은 부분의 뿌리가 단단해지고, 물에 들어가면 물이 스며든 부분의 육질이 딱딱해지며, 껍질을 벗겨 삶으면 맛을 잃고, 날것 상태에서 칼을 대면 부드러움을 잃어버린다고 했다. 그렇지만 중국 남방지역이나 동남아 지역처럼 더운 지역이 아닌 조선에서는 식재료로서의 죽순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다 구하기만 하면 이것을 잘 보관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낼 수밖에 없었다.

     

    대나무가 흔한 지역에서 살았지만, 강원도 영동 지역에서는 죽순으로 요리를 해 먹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대나무가 흔한 지역에서 살았지만, 강원도 영동 지역에서는 죽순으로 요리를 해 먹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죽순은 다양하게 요리할 수 있는 식재료였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산림경제’(권2) [치선(治膳)]편에 보면 여러 조리법이 소개되어 있다. 햇 죽순을 삶을 때에는 팔팔 끓는 물에 삶아야 부드러우며, 만약 조금 시들었다면 박하를 넣어서 삶으라고 했다. 죽순의 껍질을 벗길 때는 소금을 조금 넣어서 삶으면 쉽게 조리할 수 있다. 죽순을 말리는 방법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런 기록들은 대체로 죽순을 오래 보관하려는 방법을 소개한 것인데, 조리 방법으로는 죽순 절임[순자(筍鮓)] 하나만을 소개하였다. 물론 ‘거가필용(居家必用)’ 같은 책에 소개된 것을 인용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방법을 소개한다는 것은 조선에서도 어느 정도 적용이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3월에 채취한 죽순을 조각내서 팔팔 끓는 물에 데쳐서 물기를 뺀다. 거기에 채를 썬 파, 회향(茴香), 분디, 곱게 갈아놓은 붉은 빛 도는 누룩, 소금 등을 골고루 섞어서 죽순을 절였다가 먹으면 된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대체로 남쪽 지역으로 가야 비로소 식재료로 쓸 정도의 죽순을 확보할 수 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우리나라는 대체로 남쪽 지역으로 가야 비로소 식재료로 쓸 정도의 죽순을 확보할 수 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허균이 기록한 죽순 절임은 어떻게 조리했는지 알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소금으로 절였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방식이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에는 담양 지역을 비롯하여 죽순이 많이 생산되는 곳에서 소금을 이용한 죽순 절임뿐 아니라 물엿을 주재료로 하는 당 절임 죽순을 생산하고 있으므로 조리법이 다양해진 것은 사실이다. 허균이 어떤 형태의 죽순 절임을 맛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가 접했던 중국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염장 조리법을 활용했다고 한다면 죽순의 아삭한 식감과 함께 담박함에 스민 짭짤한 맛이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남쪽 지역에서 죽순이 쑥쑥 자라는 시기는 앵두가 꽃을 피우는 때와 딱 맞아떨어진다. 음력 3월이 바로 이때인데, 앵두와 죽순이 시장에 나오는 3월을 일컬을 때 앵순(櫻笋)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무렵이면 봄날의 풍류를 즐기기 위해 문인들은 모여서 시와 술을 즐기면서 아름다운 봄날 한때를 즐기는데, 이 모임을 앵순회(櫻笋會)라고 한다. 마당 가에 대나무는 없지만, 대문 옆에 심어놓은 앵두에 하얀 꽃이 필 때가 되면 벗들을 초대해서 다주(茶酒)와 함께 담소를 나누는 봄날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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