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언제쯤 ‘춘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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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언제쯤 ‘춘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권소담 콘텐츠뉴스국 경제팀 기자

    • 입력 2023.11.21 00:00
    • 수정 2023.11.22 17:08
    • 기자명 권소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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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달로 춘천에 이사 온 지 꼭 5년이 됐다. 휴대전화 연락처엔 춘천 시민 수천 명의 연락처가 저장돼 있고, 이제는 일터에서뿐 아니라 주말 오후 공지천에서도, 공연을 보러 간 문화예술회관에서도 아는 사람을 마주칠 정도로 지역 사회에 녹아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누군가 춘천 사람이냐고 물으면 대답을 망설이게 된다. 이 질문의 행간에 숨은 뜻을 알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춘천에서 태어나고, 초‧중‧고를 나와 강원대 혹은 한림대를 졸업했느냐”는 질문을 ‘춘천 사람’이냐는 간결한 표현으로 대신한다.

    이런 궁금증이 자신을 만나러 온 취재진에게 보내는 관심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자의 ‘출신 성분’으로는 여기 해당하는 조건이 하나도 없다. 토박이의 시선에서 필자는 ‘춘천 시민’이긴 하지만 ‘춘천 사람’은 아니다. 강원도 바닷가 출신에다 서울을 거쳐 이웃 도시인 춘천에 정착한 ‘J턴’ 청년의 설움이다. J턴은 대도시에 거주하던 사람이 고향 인근의 거점 도시에 정착하는 현상을 말한다.

    일자리를 찾아 주거지를 이동할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태어나고 자란 곳’보단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지금 사는 곳’이 훨씬 중요하다. 당장 GTX 노선 춘천 연장이 언제 확정될지 알아야 부동산 시장에 미칠 영향과 내 집 마련 시기에 대해 고민할 수 있고, 이번 주말 상상마당 춘천에서 어떤 행사가 열리는지 알아야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출신지나 학교보단 어떤 경제 공동체에 속해있는지에 대한 정체성의 확인으로서 ‘춘천 사람’이라는 개념이 정착했으면 한다. 사진은 구봉산에서 내려다 본 춘천시 전경. (사진=MS투데이 DB)
    출신지나 학교보단 어떤 경제 공동체에 속해있는지에 대한 정체성의 확인으로서 ‘춘천 사람’이라는 개념이 정착했으면 한다. 사진은 구봉산에서 내려다 본 춘천시 전경. (사진=MS투데이 DB)

     

    취재하면서 알게 된 청년 창업가, 지역의 자원을 새롭게 바라보고 색깔을 덧입히는 작업을 하는 ‘로컬 크리에이터’ 중엔 춘천 토박이보다는 지역의 가치를 알아보고 스스로 ‘춘천행’을 선택한 이들이 훨씬 많다.

    춘천 토박이는 당연히 여기는 것들이 타지 출신에겐 신선한 탐구의 대상이다. 하물며 해장국집 테이블마다 놓여있는 고추기름, 먹고 나면 속이 얼얼한 ‘매운 짜장’까지도 외지 출신들의 눈엔 새롭다. “춘천은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내륙의 분지 지형이라 중국 쓰촨성처럼 사람들이 매운 걸 좋아하나 보다” 추측하고 흥미로워한다.

    이런 다양한 시선에 기반한 ‘다시 보기’는 춘천에 내재한 자원을 발굴하고 부가가치를 끌어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다. 지역에 너무나도 익숙한 토박이들에겐 오히려 쉽지 않은 과정일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설명하는 말 중에 철학자 데카르트의 인용구를 살짝 바꾼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표현이 있다. 현대사회에서 ‘소비’, 즉 경제 행위는 데카르트가 존재의 의미를 찾은 ‘생각’만큼이나 중요한, 자신을 가장 근원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다. 이런 맥락에서 태어나고 자란 지역보다는, 생산 활동을 하고 소비하는 공간적 기반이 곧 자신이 속한 도시라고 해석하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지난 4일 춘천 서면에서 열렸던 ‘호미장’은 로컬의 생산자가 직접 들고나온 상품으로 가득했다. 이날 호미장에서 구매한 ‘춘천산 방울토마토로 만든 에그인헬 소스’와 ‘신북에서 난 팥으로 만든 페이스트’는 일주일간 일용할 양식이 됐다. 원재료가 어디서 왔고, 누가 만들었는지를 아는 음식에는 단순한 맛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 누구보다 ‘춘천스러운’ 장터였고, ‘춘천 사람’다운 주말이었다.

    출신지나 학교보단 어떤 경제 공동체에 속해있는지에 대한 정체성의 확인으로서 ‘춘천 사람’이라는 개념이 정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말을 맞아 각종 ‘로컬 브랜드’를 소개하는 자리가 많아지는 시기엔 더욱 지역 경제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기는 과정이 필요하다.

    “춘천 사람 다 됐다”는 토박이의 공치사보단 진짜 지역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관계 인구’를 통해 인구 30만명의 도시를 만들겠다는 춘천시의 꿈도 실현 가능한 일이 되지 않을까.

    [권소담 기자 ksodamk@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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