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과 소양로성당 그리고 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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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과 소양로성당 그리고 춘천

    [기록과 증언으로 보는 춘천이야기] 한국전쟁과 소양로성당 그리고 춘천

    • 입력 2024.04.25 00:00
    • 수정 2024.04.26 00:17
    • 기자명 허준구 강원문화예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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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구 전 춘천학연구소장
    허준구 강원문화예술연구소장

    1950년 한국전쟁으로 국토는 폐허가 되었고 전쟁의 중심에 있었던 춘천은 더욱 피해가 컸다. 춘천에서 이뤄진 3일간의 방어는 일본 주둔 미군이 전쟁에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어 낙동강 방어선 구축과 연합군이 인천상륙작전을 펼칠 수 있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이는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막고 현재의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춘천 3일간의 방어 기간에 생긴 그 희생이 성스럽기까지 한 소양로성당의 초대 주임신부 앤서니 콜리어(Anthony Collier.)의 살신성인한 이야기다.

    한국전쟁은 북한군의 남침으로 1950년 6월 25일 시작돼 3일 안에 서울을 점령하고 수원에 이르는 전략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춘천에서의 전황은 북한군의 의도대로 전개되지 않았고 중부 전선의 북한군은 수원에 도달해야 하는 6월 27일이 되어서야 춘천 시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

    소양로성당을 사수하던 앤서니 주임신부는 6월 27일 아침에 복사 김가브리엘과 함께 죽림동 주교관으로 가려다 우체국의 바깥(중앙로터리 근처)을 경비하던 북한군에게 체포됐다. 심문을 받던 앤서니 신부와 김가브리엘은 손을 뒤로 결박당한 채 서로에게 묶여 공지천 방향으로 끌려가 강물에 던져질 절명의 상황이었다.

    몇 분을 걷다가 북한군은 이전 심문에서 했던 질문을 재차 던졌고 답변에 변화가 없자, 잠시 걷다 소총을 난사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발사된 탄환은 앤서니 신부를 맞췄고, 신부는 김가브리엘을 붙잡으며 그의 몸 위로 쓰러졌다. 이후 세 번째, 네 번째 발사된 탄환은 김가브리엘의 목과 어깨를 관통했고,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발사된 탄환은 다시 쓰러진 앤서니 신부를 향했다. 앤서니 신부가 복사 김가브리엘을 몸으로 덮었기에 귀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 이후 김가브리엘은 쌀자루 포대에 쌓여 방치되다가 이틀 후 탈출, 치료를 마친 7월 7일이 되어서야 신부의 비장하며 안타까운 죽음을 교구에 알렸다.

     

    앤서니 콜리어 신부. (사진=소양로성타트리치오 본당사)
    앤서니 콜리어 신부. (사진=소양로성타트리치오 본당사)

    1955년 1월 소양로성당 3대 제임스 버클리(James Buckley) 주임신부는 부임하자 앤서니 신부 순교 기념 성당 신축 모금을 추진했다. 버클리 신부는 출신지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아일랜드 본부와 세계 곳곳에 호소하며 신축 성금을 기부받았다. 특히 앤서니 신부의 부모가 아들이 사목하던 본당 신축에 950만 파운드를 보내왔는데, 이는 성당 건축비의 1/9을 충당할 수 있는 큰 금액이었다. 이어 국내외에서 잇따른 도움으로 소양로성당은 1956년 9월 3일 세상에 단 하나인 반원형(반달 모양) 성당으로 준공됐다. 

    소양로성당은 성당 건축 양식에서 매우 독특한 형태인 반원형인데, 봉의산 중턱의 지형 조건에 맞춰 설계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버클리 신부는 로마 여행 중 반원형 모양의 성당을 보고 너무 인상적이어서 이러한 성당을 지어 봉헌하겠다는 결심과 앤서니 신부의 순교를 기념하고자 소양로성당을 짓게 되었다는 회고의 글을 남겨놓았다.

    이 성당의 평면은 반원형(반달 모양)으로 중앙 제단을 중심으로 신도 자리를 부채꼴로 배열하고, 원주면 중앙에 현관과 고해소, 좌우 끝단에 제의실과 유아실을 덧붙인 형태이다. 아치창, 버팀벽 등은 일체 장식을 배제한 단순한 형태와 밝고 기능적인 내부 공간은 근대적인 건축 개념을 적용한 선진적 형태이자 국내 유일한 건축 모형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등록문화재 제161호로 지정됐다.

     

    소양로성당 본당 배치도. (사진=소양로성타트리치오 본당사)
    소양로성당 본당 배치도. (사진=소양로성타트리치오 본당사)

    소양로성당은 1950년 1월 5일 춘천 북서 지역을 관할하는 성당으로 출발하여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초대 앤서니 주임 신부가 성도를 살리며 순교하였고, 이후 부임한 버클리 신부는 앤서니 신부의 순교를 기념하고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반원형 성당으로 완성되었다. 여기에 이 성당 건축에 앤서니 신부 부모가 보내온 기금이 함께 함으로써 그 살신성인의 정신이 더욱 빛나고 그 가치가 더욱 빛나게 되었다. 소양로성당의 본당 건축에는 평화를 사랑했고 실천했던 춘천인의 정신과 봉의산에서 비롯되는 평화 지향 정신이 면면히 내재해 있다. 오늘도 소양로성당의 본당은 소양강 너머에서 비춰오는 석양이 아름답기만 하다.

     

    ■ 허준구 필진 소개
    -전 춘천학연구소장
    -강원도 지명위원회 위원
    -춘천시 교육도시위원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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