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편한’ 빵 만들기 위한 고집⋯석사동 수제빵집 ‘정든 베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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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 편한’ 빵 만들기 위한 고집⋯석사동 수제빵집 ‘정든 베이글’

    [동네 사장님] 20. 정든 베이글
    천연발효종 ‘르방’ 배양 후 3일 걸쳐 정성 들여 제조
    중국 칭하이성에서 한국 빵 만들어 사업
    연고 없던 춘천에 자리 잡아 “건강한 빵 함께 나누고파”

    • 입력 2024.04.14 00:05
    • 수정 2024.04.18 10:08
    • 기자명 오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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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S투데이는 지역 경제의 뿌리인 소상공인을 집중 조명합니다. 저마다 사연을 가진 우리 이웃의 가게를 발굴하고 ‘동네 사장님’이 가진 철학을 지면으로 전합니다. <편집자 주>

    “음식이 주는 치유의 힘을 믿거든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건강한 빵을 만들 거에요”

    지난 11일 오전 춘천 석사동의 골목길에 위치한 한 가게의 문이 열리자 고소한 빵 냄새가 퍼져 나왔다. ‘빵 덕후’라면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이곳은 정진(51)·정지연(52) 부부대표가 함께 운영하는 ‘정든 베이글’이다. 대학 시절 만난 부부는 각각 경제학과, 통계학과를 졸업해 제빵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듯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 ‘재밌게 즐기며 일할 방법은 없을까?’를 함께 고민했고, 정진 대표는 “커피를 내리고 싶다” 정지은 대표는 “빵을 만들고 싶다”는 결론을 냈다.

    중국의 관광지 칭하이(靑海, 청해)성 시닝(西宁)시에서 처음 빵집을 차린 뒤 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했지만, 여전히 낯선 문화와 사람들 속에서 힘든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힘들 때 같이 울어주고, 기쁠 때는 웃어주는 동료가 생겼고, 많은 기술과 노하우가 쌓였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춘천으로 자리를 옮긴 지 딱 1년이 됐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이곳에 어떤 이유로 정착하게 됐는지,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든 베이글의 정진(51·왼쪽), 정지연(52) 부부대표가 베이글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오현경 기자)
    정든 베이글의 정진(51·왼쪽), 정지연(52) 부부대표가 베이글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오현경 기자)

     

    정든 베이글의 대표 메뉴 4종.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에브리띵, 블루베리, 치즈, 버터소금 베이글이다. (사진=오현경 기자)
    정든 베이글의 대표 메뉴 4종.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에브리띵, 블루베리, 치즈, 버터소금 베이글이다. (사진=오현경 기자)

     

    Q. ‘정든 베이글’ 무슨 뜻인가요?

    지인분이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우리가 베이글 집을 연다고 하니 대표 이름을 따서 <‘정’지연이 만‘든’ 베이글>이라는 이름을 추천해주더라고요. ‘정’이라는 단어는 “깨끗하다” “정직하다” 그리고 “따뜻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어요. 저희 가게에 오시는 분들께 정직한 마음으로 깨끗하고 따뜻한 빵을 대접하겠다는 마음도 이름에 담았습니다.

    Q. 대표 메뉴를 소개해 주세요.

    저희 가게에서는 오리지날, 에브리띵, 어니언, 블루베리, 치즈, 버터소금 등 6가지 종류의 베이글과 커피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으시는 건 오리지날이고 버터소금이나 블루베리는 주기적으로 찾으시는 마니아층이 있습니다. 그 외에 베이글에 발라먹는 스프레드도 베이컨쪽파와 바질앤토마토, 메이플월넛, 베리베리, 플레인 등 5종류를 판매하죠.

    정지연 대표와 정 대표의 아들 정희민(21)씨가 블루베리 베이글을 만들고 있다. (사진=오현경 기자)
    정지연 대표와 정 대표의 아들 정희민(21)씨가 블루베리 베이글을 만들고 있다. (사진=오현경 기자)

     

    Q. 빵집을 열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15년 전쯤 중국 티베트 여행을 갔다가 푹 빠져 근처 지역인 칭하이성 시닝시에 자리를 잡고 살았어요. 낯선 장소, 낯선 곳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예전에 배워둔 ‘빵 만들기’였죠. 8평 남짓한 작은 곳에서 단팥빵, 소보루빵 등 한국 빵을 팔며 사람들과 소통하기 시작했어요.

    Q. 춘천에는 어떻게 오게 되셨나요?

    시닝에서 한 2년간 영업을 하던 중 제(정지연 대표)가 갑자기 몸에 이상을 느꼈어요. 2주에 6kg이 빠질 정도였어요. 검사사를 받아보니 폐암이었어요. 치료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집이 없어 고민하던 중 지인이 춘천에 지낼 곳이 있다고 도움을 주셨어요. 그래서 전혀 연고가 없는 춘천에 자리를 잡게 됐어요. 지금은 공기도 좋고 호수가 아름다운 춘천에 사는 게 너무 만족스러워요.

    부부가 중국에서 운영했던 빵집 ‘상수인’. (사진=정진 대표 제공)
    부부가 중국에서 운영했던 빵집 ‘상수인’. (사진=정진 대표 제공)

     

    Q. 빵을 직접 만들고 발효종도 키우신다고요?

    천연발효종 ‘르방’을 직접 키우고, 그것으로 빵을 직접 반죽·숙성·성형하고 있어요. 르방을 만들고 16~20시간의 발효를 거친 뒤 다음날 밀가루·물 등을 넣고 반죽을 합니다. 그 반죽을 또 하루 동안 숙성시킨 뒤 3일 차 아침에 구워 빵을 만들어요.

    총 3일의 시간이 걸려 매일 제한된 수량만 만들기 때문에 오후 1~2시에도 빵이 다 팔려 빈손으로 돌아가시는 손님도 계시죠. 하지만, 오래 걸리는 만큼 다양한 맛과 식감을 낼 수 있어 고집하는 방식이에요. 그래서 저희 가게 제품은 다 같은 빵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다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이렇게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서 베이글을 만드는 이유는요?

    중국에 거주할 때 다른 빵집에서 빵을 사갖고 잠깐 한국에 다녀온 적이 있었어요. 한 달 뒤에 중국으로 돌아갔는데, 사둔 빵이 썩지도 않고 그대로였어요. 그걸 보고는 빵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방부제나 화학물질을 많이 사용한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어요. 저희는 오래 걸리더라도, 속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건강한 빵을 만들자고 다짐하고 매번 이런 과정을 거치고 있어요.

    정든 베이글 가게 내부 모습. (사진=오현경 기자)
    정든 베이글 가게 내부 모습. (사진=오현경 기자)

     

    Q. 가게를 운영하면서 특별한 가치관도 있다고 들었어요.

    저희는 음식이 사람을 살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거든요.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지인이 정성을 담아 준비해준 한 접시의 음식을 보고 “난 정말 사랑받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그 마음을 춘천 지역민과 주변 분들께 나누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우동착을 통해 10% 할인 혜택도 제공하고 있어요. 저희가 살 곳을 마련해준 춘천이라는 도시에서 더 많은 사람과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요?

    경기가 어려운 만큼 저희 가게도 여러 힘든 점이 있습니다. 큰 소원보다는 잘 살아남아서 하루하루 정든 베이글을 찾아주시는 분들께 행복을 주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오현경 기자 hk@mstoday.co.kr

    (확인=김성권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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